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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 조문자

Joyfule 2012. 11. 22. 11:27

   이슬 - 조문자 
                                                
  주름살 접힌 산자락에 하얀 물꽃 내렸다.  청초하고 청량한 느낌, 물비린내가 스무 살 처녀의 살 냄새 이다.
    고무신 신은 사람처럼 소리 없이 와서 풀잎에 살짝 매달려 바닥으로도 쉬 떨어지지 않는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다 울지 못하고 떠난 자의 눈물 일까.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동그라미를 건드리면 눈물로  변해 버릴 것만 같다. 병든 자식을 둔 어머니의 눈물처럼, 해산하는 여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처럼,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땀방울도 이러했으리라. 어쩌면 나도 이슬 같은  눈물 하나 가슴에 매달고 황량한 벌판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슬을 보는 순간 받는 감동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이다. 갑자기 세포가 모두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깨끗한 곳이 아닌 곳은 삼가기라도 하는 듯 해금이 가라앉은 물속처럼 맑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채색이다. 한 줄로 나란히 매달린 이슬을 보고 있노라면 청순함이란 바로 저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셀롤 로이드로 만든 정교한 구슬을 오블라토로 싼 것 같다. 빙어의 속살처럼 맑고 투명하다. 무거운 짐을 얼마만큼 내려놓으면 저렇게 투명해 질 수 있을까. 화려한 색깔을 가진 것보다 눈부시다. 너무도 청초하여 뚜렷하고 뚜렷하여 외로워 보인다.     


  이슬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한 점의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세속의 온갖 잡동사니로 얼룩진 속내가 이슬에 비추어질 것 만 같아 두렵다. 이토록 맑은 것은 자연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맑은 물속에서 갓 건져 낸 민물고기의 비늘처럼 번뜩거린다. 한 번씩 비늘을 뒤채일 때마다 날카로운 빛살을 쏘고 가까이 보면 유리구슬이 짜그락거리는 것 같다. 실로 꿰매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싶어진다. 


   한때,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환상에 젖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인지 아직도 늙은 줄을 모르고 귀티가 흐르는 세련미와 청초하고 우아함을 지닌 여자가 되는 꿈을 꾸곤 한다. 구약성서 아가서 에 나오는 여자들 가운데서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은 여자이고 싶기도 하지만 눈이 아프도록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이슬 같은 여자가 더 매력 있을 것 같다. 오래 기억에 남는 추억의 여자, 쉽게 가까워질 수 있고 이슬처럼 흔들리는 듯하나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여자, 영원할 것 같은데 영영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 것 같은 이슬 같은 여자가 신선한 충격을 오래도록 지닐지도 모른다.


  아름다울 것일수록 쉽게 깨지거나 부서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돌멩이 같다면 아름다움에 대한 밀도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 속에 비극이 들어 있다면 누가 그 아름다움을 흠모하겠는가마는 신은 공평하다 했다. 아름다움 속에는 처절함도 공존하였다. 순간에 왔다가 순간에 가버리는 신비함 때문에 아름다움은 더 빛이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슬처럼 맑고 무공해 같은 한 여자를 알고 있다. 여자가 보아도 고아서 가까이하기 조심스러울 만큼 아름다웠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어떤 남자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아름다운 것은 슬픈 그림자를 지니고 있으므로 아름다운 것인지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차 한잔하자 고 했다. 우리는 지하 찻집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외도를 하는데 그 여자를 만나러 가야겠어요. 혼자서는 두려워서 갈 수 없으니 함께 가주시겠어요? ”
  이슬 앞에 서면 겸허해진다. 인간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음을 암시라도 하는 듯 한 줌 햇살 앞에서도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다. 한 움큼 집어 들면 주르르 흘러내리다가 허공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리는 허무함, 그럼에도 그 매력에 매료된 까닭은 손에 잡힐 것 같은 착각 때문이다. 


   그 어느 가뭄이 심한 해였다. 해면처럼 물을 빨아들이고 싶은 곡식들이 여기저기 말라죽어 갔다. 논바닥은 쩍쩍 갈라지고 저수지 속으로 사람들은 걸어 다니게 되었다. 구청에서 배급 급수를 주어서 살아가는 현상이 도시나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이 없고 비를 금하기나 하듯이 푸르기만 하였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 텃밭에 다녀오시면 으레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은 가뭄에도 피할 길을 주시는구나. 밤사이 이슬을 많이 내려 곡식이 그나마 숨은 쉴 수 있도록 해 주시니 말이다. “
그날부터 무엇의 끝에 다다랐을 때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이슬이 좋아졌다.
  뜨겁지 않으니 배신도 없을 것이다. 먼데서 바라보고 우러러볼 뿐 함부로 만지지 못하는 위엄이 있다. 특별하여서 누구든 독차지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뿐히 내려앉아 주기를 들판이 되어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나는, 가까이 갈 수 없어 행복하다고 거짓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