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평화선은 역사적 대업적
김남균 평택대 교수 “일본 상대로 해양 주권 방어”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平和線)은 고려시대 서희가 거란과의 담판으로 획득한 강동6주에 버금가는 역사적 업적이다. 두고두고 우리 역사 속에서 이야기 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월 18일 선포한 해양주권선인 '평화선'에 대해 김남균 평택대 교수가 높이 평가했다. 김 교수는 지난 22일 오후 정동교회 아펜셀러홀에서 열린 우남이승만연구회 53차 콜로퀴엄에서 ‘이승만과 평화선 : 해양 주권의 방어’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평화선’을 주창한 지 30년 지난 1982년에 유엔에서 국제해양법으로 ‘EEZ’(Exclusive Economic Zone, 배타적경제수역)라는 개념이 나왔다”라며 “‘평화선’은 국제해양법적에서도 선각적인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6·25전쟁 중이었던 1952년의 상황에서 해양주권이 제기된 것에 대해 “6·25전쟁으로 미국은 일본의 협력이 시급해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일본의 국가 주권을 서둘러 회복시켜줬다”며 “이로 인해 맥아더 라인이 유명무실해졌고 바다에 있던 한·일 간 갈등이 드러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51년 1월 18일 이 대통령은 '평화선'을 선포했고, 이는 '맥아더 라인'이 없어지면 더 이상 기쁠 수 없는 일본에 ‘한 방 먹인’ 역사적 쾌거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6·25전쟁 중이었던 1952년의 상황에서 해양주권이 제기된 것에 대해 “6·25전쟁으로 미국은 일본의 협력이 시급해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일본의 국가 주권을 서둘러 회복시켜줬다”며 “이로 인해 맥아더 라인이 유명무실해졌고 바다에 있던 한·일 간 갈등이 드러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951년 1월 18일 이 대통령은 '평화선'을 선포했고, 이는 '맥아더 라인'이 없어지면 더 이상 기쁠 수 없는 일본에 ‘한 방 먹인’ 역사적 쾌거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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