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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꽃 - 이민화

Joyfule 2008. 6. 27. 02:40
 
이팝꽃 - 이민화 별을 칭칭 감고 있던 거미줄이 어둠의 나사를 풀기 시작하면 한 쪽 다리를 저는 할머니의 싱거운 미소가 이팝나무에 번져나요 하얀 국숫발 같은 머리카락을 그녀의 주름진 귀 뒤로 싹싹 빗어 넘기는 봄바람이 이팝나무의 꽃눈을 펑펑 터트려요 최고 시설을 발휘한다는 풍광 좋은 양로원에 할머니가 남겨진 지 벌써 여러 해, 변호사인 큰아들이 보고 싶다는 눈시울을 붉히며 바람의 귀에 그녀의 내력을 쏟아 놓아요 한쪽 배를 움켜쥐고 허기를 달래던 시절, 당신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간장만 담아도 배부르다며 장독간에 퍼질러 앉아 장이 밥인 양, 장독을 휘휘 저으며 장을 찍어 먹던 그 때가 얼씨구 좋았단다 당신의 꽁보리밥 한 그릇까지 저울로 달듯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던 그 때가 지화자 좋았단다 파란 하늘에 할머니의 통증이 자꾸만 부풀어올라요 간장 한 종지의 이야기가 섬진강처럼 흘러흘러 온 가지에 하얀 밥풀로 휘청거려요 할머니의 걸음이 빨라져요 할머니의 가래 끊는 소리가 쉼 없이 번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