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이 비밀을 알아야 한다

Joyfule 2024. 5. 6. 01:15

 

이 비밀을 알아야 한다(롬11:25-29)

 

 이스라엘이 세워진 팔레스타인은 세상의 중앙(겔38:12)입니다.

그 중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모리아, 솔로몬 성전이 정중앙입니다.

그래서 끼고 있는 바다가 지중해이며 우리는 거기서 볼 때에 극동입니다.

세계역사는 주전(Before Christ)과 주후(AD)로 나뉘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중앙에서 시작이 된 주후의 역사가 아시아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태평양을 건너 한국 중국 그리고 인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복음이 세계역사의 흐름의 지하수처럼 따르고 있음을 봅니다.

중국이 오랫동안 군림할 것 같았으나 기독교를 박해하는 정권이 들어서서

스스로 그 수명을 단축하고 있는데 인도의 인구가 중국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지금 역사의 물줄기는 인도로 향하고 있고 중동이 오래 전부터 꿈틀거립니다.

마지막 문명대국인 미국이 최초 문명대국인 이라크(유브라데)를 칠 때부터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이 열려 이란 시리아 레바논이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유대민족들이 본국으로 많이 돌아간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전쟁으로 통해 자신의 백성들을 모으기도 흩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저런 징조와 현상을 볼 때에 다시 세상 중앙으로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역사의 오메가 포인트를 주시해 봅니다.

 

Q. 세계역사 속에 감추어진 비밀이 무엇인가요?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11:25)

 

A. 이방인의 수가 다 차면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방인인 우리는 적어도 유대인에 대해서 스스로 지혜 있는 자가 되지 말아야죠.

롬11장을 모르면서 세계선교 운운 하고 이스라엘을 향한 선교전략을 세우는

부산은 떨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지금도 유대인을 위한 선교전략 운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역사의 이 비밀(신비)을 알아야죠.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수적인 것 보다 질적인 수준을 말씀합니다.

알곡을 곳간에 들일 때의 곡식처럼 완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 때까지 이스라엘은 완악하게 되어 구원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추수를 할 때에 농부들이 먼 밭의 곡식부터 먼저 거두고

난 다음에 텃밭의 곡식을 거두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됩니다.

그럼에도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일부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옛날 IMF직전에

수천 명이 전세기를 동원해서 이스라엘 선교를 갔었습니다. 아마 5,500명이었지요?

한 사람의 여행경비가 200만원 잡아도 엄청난 달러를 뿌린 거죠.

이런 기가 막힌 어처구니없는 쇼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게 바로 성경을

두고도 스스로 지혜 있다고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결국 돈으로 일어난 그쪽 동네가 돈으로 망하고 간 걸 우리는 봤습니다.

 

그러므로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롬11:26)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이 완성되고 난 다음에 온 이스라엘의 구원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돌이키신다는 말씀은 스위치를 돌리는 것으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방인을 향하여 스위치 온했다가 이스라엘을 향해 돌리면 삽시간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스위치 온만 하면 이스라엘의 구원은 금방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구약성경이 있고 성전의 구조에 대해 환하고 제물이 뭔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에 대한 체험담을 그들은 수도 없이 듣고 또 들어왔습니다.

또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 등 여러 선지자들이 계시의 영을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Q. 죄는 언제 없어지나요?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롬11:27)

 

A. 그리스도가 내주 하시는 새 언약에 의해서 죄와 상관이 없는

자리로 옮겨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의롭게 되어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르며 그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는 겁니다. 성령이 임하신 지금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의 농사절기를 따라 속죄일을 지칭하면서 그 때에 속죄가 이루어

진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 지금 죄 아래에 있는 거죠?

그대로 죽으면 큰일이죠.

하나님의 언약은 70이레가 차는 약속인데 지금 한 이레만 남아 있다(단9:27)고 봅니다.

유대인은 아직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새 언약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아직 그리스도의 예표인 성전제사 밖에 모릅니다. 따라서 계시가 그들에게 임해야만

그리스도가 안에 임하시는 새 언약으로 인해 죄를 영속하신 하나님의 인자함을 알게 됩니다.

지금 세계정세는 그 흐름이 중국과 인도를 지나 팔레스타인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쩜 역사가 한 뼘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Q. 유대인의 이중적 존재감이 무엇인가요?

“복음으로 하면 그들이 너희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로 말미암아 사랑을 입은 자라”

 

A. 복음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아직까지 사53장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대한 기사를

거들떠보지 않고 여전히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학수고대하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가 인간들 속에 임하셨다면 펄쩍 뛸 겁니다.

그러나 택하심으로는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2,000년 동안 나라를 잃었다가 옛 이름 그대로 나라를 다시 세우는 걸 보세요.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비록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로 인해 가중처벌이

되어 2,000 동안 온갖 박해와 학살을 당하겠지만 하나님의 택함은 변함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완전히 멸망했던 이스라엘이 옛 이름 그대로 독립이 되어 엄연히

이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음은 하나님의 택하심이 폐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구원을 받을 인간의 잘못에 의해 나중에

하나님께서 아 이거 내가 잘 못했구나 하는 일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학교는 유급은 있어도 퇴학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지 안에 부름은 받은 자들은 달달 볶아서라도 완성시키십니다.

지금 기독교 가운데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들림 받아 혼인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대롱대롱 매달리거나 또 144,000등 안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쪽저쪽이 개글 차이인 듯 해 보여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었고(엡2:6) 주님이 계시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따라가고 있으므로

주님과 나는 공동운명이 되었고 생명나무인 주님과 나이도 같아졌습니다(사65:22)

옥에 갇혀 비몽사몽간에 자고 있는 베드로도 옆구리를 쳐 깨우시는데(행12:7)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회개를 하고 주와 함께 죽어 그의 죽으심에 연합이

되고 또 그의 살으심에 연합이 되어 그 부활과 생명이 내 안에 계심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있으며 진리의 성령 안에서 그 보좌를 향해 주의 이름을 날마다

부르고 있는 나를 그 명단에서 빼 버리신다고요? 그럴 일은 단언하건대 만무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그 부르심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한 치의 착오도 일어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