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하나님의 인자냐 준엄(엄위)이냐?

Joyfule 2024. 5. 7. 15:27

 

하나님의 인자냐 준엄(엄위)이냐?(롬11:19-24)

 

율법의 행위를 가르치는 주의 종들은 검사와 같이 고발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일꾼은 성령의 뜻을 따라 천국 변호사 노릇을 합니다.

마귀의 고발을 당하는 죄인을 육법전서와 같은 성경을 하나님의 긍휼로

풀어서 변론을 하므로 마귀가 꼼짝하지 못하도록 해서 죄인을 구해 냅니다.

그렇지만 죄인을 죄인으로 보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같은 죄인입니다.

진리 안에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몸도 건사할 수 없기 때문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바울과 같이 자유자만 사도가 됩니다(고전9:1)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이 되어 성령의 약속을

받아내는 믿음의 비밀을 소지한 자만이 죄에 빠진 사람을 건져낼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안팎으로 증거하는 두 증인으로서 천국변호사 면허를 가진 겁니다(행1:8)

 

Q. 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요?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 하라”(롬11:19-20)

 

A.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오직 믿음뿐이기 때문에 높은 마음을 품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기우이지만 만일 참감람나무의 가지가 꺾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돌감람나무 가지인 우리가 참감람나무 밑동에 접붙임을 받았겠는가?

나 같은 사람은 믿음도 경건도 없던 이방인으로 어느 날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께 접붙임을 받았노라고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처음에 주님을 믿기 시작할 때에 설령 주님께서 나를 천국에 데려가시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이신 주님이 나를 찾아 와 주셨다는 사실만 해도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주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엡2:6)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셔서 그 자리로 부르시는 걸 알고는

이건 분명 자다가 벌떡 일어나 볼을 꼬집어 볼만한 일이라고 자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너무 익숙해져서 하나님이 나의 기업이 되어 주체가 된 듯하지만 성경도

교회도 100촌이 넘던 제게 구원을 베푸신 어처구니없는 그 은혜를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 임직을 받고 돌아오는 날 혼잣말로 개가 들어도 웃겠다 였습니다. 

  

유대인이 불신앙으로 꺾이었다는 것을 아는 건 옳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 위해 투자한 것이 있거나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 없이 오직 믿음 하나로 섰으므로 자신을 높이지 말라고 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과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늘 두려워하라고

말하면서 유대인을 너무 얕잡아 보지 말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11:21)

 유대인들은 원 가지 곧 본성적인 가지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토종입니다.

하나님의 신앙과 율법과 성전에 대해 이들은 아주 푹 잠긴 장아찌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일시적으로 잘라내신 하나님이심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도 잘려나갈 염려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은혜로

접붙이셨는지를 알고 그 은혜와 섭리를 늘 경외하므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구원을 붙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Q, 참감람나무에 가지가 잘리고 붙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11:22)

 

A. 인자와 준엄(엄위)에 대한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준엄하신 하나님 곧 엄위의 하나님으로 믿는 유대인들은 잘려 나가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인자하심 안에 거하는 자들은 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준엄하신 하나님이라는 의식의 편으로 넘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이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므로 교만하여 하나님이 반대편에 두시는 경우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처럼 육신의 자랑으로 돌아서면 즉시 준엄하신 하나님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바로 준엄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약2:13)

우리는 그 인자에 거하지 않으면 잘라 버린다는 말씀을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므로 내 사랑 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을 해야 하며 그 계명 안에 계속 거해야 합니다.

요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천국의 상태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지인 주제에 스스로 나요 하고 나오는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가 되고 맙니다.

항상 주님 앞에서 자신을 버리고 주님만 받아들이는 겸손으로 언제나 영의

배고픔을 호소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주님이 공인하신 복 있는 사람입니다(마5:3)

 

Q. 믿음에 있어서 유대인이 유리한 점은 무엇인가요?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롬11:23-24)

 

A. 본성의 차이가 납니다. 이방인은 돌감람나무의 가지로 참감람나무의

밑동에 접붙임을 받아 모양은 여전히 이방인이지만 본성의 진액이 참감람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못 났다는 것이 아니라 불신앙으로 보는 성경의 관점을 유의하세요.

지금까지 그들에게 너희들은 불신자들이라고 하면 그들이 수용을 할까요?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아마 물구나무서기를 해서라도 따라와서 따질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유신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새 언약)을

거역하는 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요일4:2) 만일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앙이요 하면 쉽게 수용할까요?

주님의 칭찬을 받는 열린 문을 둔 빌라델비아 교회에 유대인이라는

사탄의 회당이 섞여 있습니다. 그들이 과연 불신자라고 하면 시인할까요?

놀랍게도 예수는 믿지만 물세례만 알고 성령세례(고전12:13)를 모르는 불신자가 많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가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제들이 스스로 끊어버리므로 접붙임을 스스로 거부한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 불신앙에서 빠져 나오면 하나님이 접붙이십니다.

어떤 존재이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이 붙이시면 붙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면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을 얻고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1:18)

미국이 유대인을 편애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유대인이 접붙임에 유리하다고 말하는데 왜냐하면(가르)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은 본성이 달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동화가 되는데 참 힘이 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처리하는 기간이 매우 깁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데 그 접붙임이 얼마나 원활하겠는가 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