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의 궁극적 목표.
인간다운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학문도 귀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있다.
예술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을 즐기는 사람은 특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다.
교회와 신앙생활도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죽음과 싸워가면서
생명을 유지해야 할 사람들은 삶 자체의 여유가 없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삶의 가치와 행복을 그대로 상실하고 만다.
그들이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학문을 즐기고 예술을 찬양하며
교회에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생의 사치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슈바이처는 자신을 위한 모든 삶의 소유와 자산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목표였던 것이다.
슈바이처는 학문과 종교는 인간을 위한 것이지,
그것들이 삶의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참된 삶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학문과 종교였던 것이다.
학문이 인간보다 귀한 것도 아니며, 종교가 인간적 삶의 목적도 아니다.
예수는 '밀알이 땅에 덜어져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죽음을 거부하고 그대로 남으려 한다면 말라서 사라질 뿐'이라고 가르쳤다.
우리의 생명과 삶도 그렇다.
죽기를 거부하는 밀알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 많은 생명과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이 인생의 순리인 것이다.
그것이 신의 섭리이다.
거부할 수 없는, 거부해서도 안 되는 생명과 삶의 순리인 것이다.
-김형석 著[전 연세대 철학교수 ]"백년을 살아보니" P.201-203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