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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물어뜯은 침의 공포

Joyfule 2024. 5. 22. 21:55


 

 

침 튀기는 인문학

곽경훈 지음|그여자가웃는다|262쪽|1만5000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 유행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침방울에 대한 두려움을 한껏 끌어올렸다.

 

민얼굴 드러내고 숨만 쉬어도 눈총을 받는 시절에 '비말(飛沫)'은 혐오·공포의 동의어다.

 

하물며 침을 뱉는다고? 용서 못 할 죄인이다. 반면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침은 축복이었다.

 

맥주를 만들 때 그들은 홉(hop) 대신 침을 섞었다. 과학적 이유가 있다. 침에 포함된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당분으로 변환시켰다. 그뿐 아니다. 침 속에 포함된 다양한 미생물이 발효를 촉진하고 풍미를 더했다.

응급의학을 전공한 의사이자 의학 에세이스트로도 활동해 온 저자가 코로나 시대 최고 악당으로 부상한 침을 소재 삼은 책을 냈다.

 

의학사·역사·신화·전설·방역과 예방 분야에 등장하는 침을 두루 섭렵해 침의 인문학을 펼친다.

 

침에 대한 두려움과 기피의 역사는 인간이 개와 함께 살기 시작한 3만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를 인간 영역에 들이면서 광견병도 따라왔다.

 

광견병에 대한 인류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930년 수메르인의 법전 '에슈눈나'에 나온다.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려 사람이 죽으면 은으로 손해를 배상하게 했다.

 

침으로만 전염되는 광견병 바이러스가 살아남으려면 병에 걸린 개가 다른 생명체를 물어야 한다. 핏발 선 눈, 으르렁거리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 극도의 공격성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광견병 이미지와 카리브해에서 시작된 부두교 교리에 나오는 걸어다니는 시체가 결합해 좀비가 탄생했다. 영화에서 침 흘리는 좀비는 단역들이 맡는다.

반면 피를 빠는 뱀파이어 역할은 톰 크루즈, 크리스틴 스튜어트 같은 최고 미남·미녀들 몫이다. 침은 더럽지만 피는 고귀하기 때문이다.

 

 

 

침은 광견병, 황열병, 코로나19 바이러스 등을 옮기는 강력한 매개 물질이다. 사진은 사람을 물어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좀비 영화 ‘반도’의 한 장면. 

 

보불전쟁으로 독일 땅이 된 알자스-로렌에서 9세 아이가 광견병 걸린 개에 물렸다.

독일 의사들은 치료할 수 없다고 포기했지만, 프랑스 세균학자 파스퇴르는 살려 달라며 찾아온 아이에게 광견병으로 죽은 토끼의 신경조직을 말려서 제조한 백신을 투여했다.

 

동료 의사가 "사람에게 시행하기엔 아직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강행했다. 파스퇴르에겐 아이의 안전보다 독일을 향한 복수심, 상처 입은 프랑스의 명예 회복이 더 중요했다.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조건반사를 발견한 파블로프를 좋아했다. 수술로 개의 침샘을 입 밖에 드러내고, 금속성 소리를 내서 침을 흘리게 함으로써 개의 영혼을 지배하는 실험 방식은, 국민을 자기 이름만 들어도 움츠러드는 개로 만들고 싶어 했던 독재자에게 통치의 영감을 줬다.

 

침은 숱한 아이러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 공사를 방해한 최대 난적은 황열병을 옮기는 모기였다.

 

일본이 자랑하는 과학자이자 1000엔 지폐의 주인공인 노구치 히데요는 렙토스피라 세균이 황열병을 옮긴다고 착각했다. 자신의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원숭이 1200마리를 희생시켰지만 단 한 마리에서도 이 세균은 나오지 않았고, 조급해진 노구치는 헛된 실험을 거듭하다 황열병에 걸려 죽었다.

 

백신이 나오기 전, 인류는 숱한 목숨을 전염의 제단에 바치고서야 질병에서 벗어났다.

 

이를 집단면역이라 한다. 오늘날엔 예방접종이 집단면역을 가능케 한다.

 

집단면역 최고의 적은 백신 반대론자들이다. 전체 집단의 10%만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집단면역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유행을 종결하기 위해 성급하게 백신을 만들었다가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나면, 백신 반대론자들이 예방접종을 거부할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그 설명을 읽으며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최초로 승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떠올랐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개에게도 접종할 수 없다는 이 백신을 푸틴은 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 인공위성의 이름을 따 '스푸트니크 V'라고 명명했다.

 

푸틴은 옛 소련의 영광을 자신이 재현했다고 자랑하고 싶어 '질병을 정치화'했다. 이 질병의 유행을 막는 백신은 유권자가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