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인터넷성경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5과)5.

Joyfule 2010. 11. 18. 10:21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155과)5.

스가랴(2):  악의 제거 (5-8장)

 

 

3. 금식인가? 경건인가? (7장)

3-1. 금식에 대한 질문(1-3)

  "다리오왕 사년 구월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1).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2),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대로 오월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3)..."

 

  스가랴 7장의 예언은 다른 부분들과는 아주 판이하고 분명하게 구분된다. 스가랴는 스가랴서의 서두(1-6장)에서 이스라엘은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복을 받으라고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그리고 나서 그가 사역하였던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 위에 메시야가 즉위하실 때까지에 대한 일련의 8개의 밤의 환상들이 그에게 제시되었다.

 그 잊지 못할 중요한 날 밤으로부터 약 2년이 경과하여 다리오 왕 4년, 즉 주전 518년이 되었다. 하나님의 영적 지시를 받은 학개와 스가랴의 사역,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격려의 덕택으로 백성들은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다. 예루살렘 성읍에는 새로운 가정들이 세워지는 등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느부갓네살의 침략과 파괴의 흔적과 상처들은 서서히 아물어가고 사라져가고 있었다.

 

  "기슬레월"에 벧엘에서는 두 가지 목적으로 예루살렘 대표단을 파견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간구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국가적 금식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서였다. "벧엘"이란 말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대표단이 벧엘이란 성전에 왔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성전이 "여호와의 집", 또는 "엘로힘의 집"이라 불리우기도 했지만, 결코 "벧엘"이라고 불리워진 일은 없었다.

 

 한 때 우상숭배로 들끓었던 그 유명한 성읍이 이처럼 중요한 사명을 띠고 대표들을 보낸 것이다. 이전에 그 성읍에 살던 사람들 중 다수가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하였다. 대표단원의 명칭이 바벨론 사람들이라고 소개된 것은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문자대로는 "얼굴을 쓰다듬다") 한 태도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희생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당시 성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제단은 세워진 상태였다.

 

  대표들은 제사장들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왔다. 이는 율법의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제사장의 직무였기 때문이다. 이때에 응답을 맡았던 선지자들은 학개와 스가랴였다. 벧엘 사람들은 그들이 "여러해 동안", 즉 포로 시기에 해왔던 제 5월의 금식을 계속해서 해야하는 지를 알고싶어 했다. 이제 성전 건축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과거의 재난들을 기념하는 금식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금식을 한느 것은 그들에게 실증이 나고 짐이 되는 일이었다. 울면서 금식하면서 평소에 하던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지루한 일이었다. 5월 10일의 금식은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불에 탄 것을 회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금식은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금식에 속한다(속죄일에 하는 금식과는 다르다). 이러한 금식의 특징은 (요엘 2:12-13,16)에 언급되어 있다. 그 금식은 국가에 의해 제정된 것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러한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 지, 또는 페지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항상 규칙들을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의 지시 하에ㅓ 그들에게 삶을 영위할 원리들을 주신다.


3-2. 과거를 통해 얻은 교훈(4-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4),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5)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6)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 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7)."

 

  질문들이 1인칭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스가랴를 통한 "나", 즉 하나님의 대답은 모든 백성들에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고, 같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한 마디의 대답은 그들의 태도에서 겉치레와 위선을 산산히 제거하였다. 백성들과 제사장들은(제사장들도 역시 금식을 지루하게 여겼다) 그들이 금식하고 슬퍼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행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나님은 결코 금식을 제정하지 않으셨으며, 그들이 금식을 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슬프게도 그들에게는 생활의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진정한 경건의 마음이 부족했다. 금식의 의미가 시간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하다. 금식은 "언제하느냐?"보다는 "왜 하느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의 금식 행위는 마음과 진실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없었다.

 

  그들의 질문은 5월의 금식에 집중되어 있었다. 스가랴는 7월의 금식에 관한 질문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 추가했다. 이 모든 금식들은 주전 586년의 예루살렘 멸망과 관계가 있었다. 10월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으며, 4월에는 갈대아인들이 성읍을 침략하였고, 5월에는 느부사라단이 성전을 불로 태웠다. 그리고 7월에는 일부 사람들이 바벨론이 세운 유다 총독 그다랴를 죽이고 애굽으로 도망을 쳤다.

지금도 정통 유대교에서는 7월 3일을 그다랴의 금식일로 정해 지키고 있다. 7:5의 질문에 대해 예상되는 대답은 강한 부정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모든 행위는 자기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의 금식 행위 안에 존재하던 이러한 정신이 그들이 먹고 마시는 일에도 침투하게 되었다. 그들의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금식에 대한 스가랴의 질책은 (사 58:3-8)의 유명한 말씀을 기억나게 해준다. 독선과 자기 만족은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스가랴의 어조가 거칠고 냉혹해 보이지 않는가?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인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포로기 이전의 선지자들 역시 이와 비슷한 태도로 예언을 했다. 그들이 금식을 한 원인이 된 재난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에 따른 결과였다. 왜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듭 분명히 명하시는 말씀에 귀를 지울여야 하는 때에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일에 관심을 이울였을까? 그들은 그 땅에 백성들이 정착하여 거주했을 때, 즉 포로기 이전의 시대에 선포된 선지자들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했다.

 

이것이 자진해서 하는 모든 금식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은 금식보다 순종을 더 원하신다. 7:7에 언급된 남방은 유대 산지를 말하며, 평원(세펠라)은 유다 서부 지역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죄악 때문에 임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인해 금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당한 재난 때문에 금식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들은 그들이 범한 죄로 인해 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금식의 원인은 그들의 죄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러한 죄를 제거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금식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순종이 금식보다 낫다고 한 점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