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유다 단일 왕국 시대(왕하 18장-25장)
아하스 이후 남방 유다는 이스라엘처럼 즉시 멸망하지 않았다. 그러면 왜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더 오래 유지될 수 있었는가? (왕하 18-25장)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유다 왕국이 단독으로 존재했던 약 150년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에 유다는 몇 차례 대대적인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유다는 이스라엘처럼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 종교개혁이 필요했다. 남유다가 이스라엘처럼 멸망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그들은 다윗 시대와 같은 순결을 회복해야만 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남 유다의 종교 개혁은 히스기야 로부터 시작되었다.
히스기야 왕부터 유다 왕국의 멸망까지(왕하 18-25장) |
13. 히스기야 |
주전 729-686년 |
왕하 18-20장 |
선한 왕 |
14. 므낫세 |
주전 697-642년 |
왕하 21: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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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몬 |
주전 642-640년 |
왕하 21:19-26 |
살해됨 |
16. 요시야 |
주전 640-609년 |
왕하 22:1-23:30 |
선한 왕 |
17. 여호아하스 |
주전 609년 |
왕하 23:31-35 |
애굽 포로 |
18. 여호야김 |
주전 609-598년 |
왕하 23:36-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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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여호야긴 |
주전 598-597년 |
왕하 24:8-17 |
바벨론포로 |
20. 시드기야 |
주전 597-586년 |
왕하 24:18-25 |
바벨론포로 |
1.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주전 715-686년)
* 반 앗수르 정책과 개혁운동 히스기야 왕은 부왕 아하스가 남긴 연약한 정권을 인계받은 후에 예루살렘에서 29년을 치리했다(대하 29:1, 왕하 18:2). 역대기 저자는 그를 가리켜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고 사랑한 왕이었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에 신실했다. 그는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반 앗수르적이었으며, 블레셋과 싸워 이겼다. 하나님은 자신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히스기야 왕을 형통하게 해주셨다.
* 종교 개혁 운동(대하 29:3-31:21) 히스기야 왕은 아하스 왕 이후에 개혁의 주자로 등장했다. 그는 이전의 선한 왕들이 행한대로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그는 왕위에 오르게되자, 즉시 부왕 아하스가 폐쇄했던 성전 문을 열고, 성전을 정결케 하는 일에 힘썼다. 또한 그는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일이 끝나게 되자, 모세의 율법을 따라 번제와 화목제의 제사를 드림으로 유다왕국이 하나님 앞에 돌아왔음을 분명히 나타냈다. 그 후에 그는 다시 한 번 더 성대하게 유월절을 지켰다(대하 30:1-27). 이때에 그는 북쪽 이스라엘에도 초청장을 보내어 예루살렘에서 함께 절기를 지키자고 제안했다(대하 30:1). 그리고 그때에 많은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요청에 호응했다(30:18). 그리고 이러한 전국적인 행사로 인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기뻐했다. 이스라엘에서 솔로몬 후에 이러한 기쁨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감격한 나머지 7일의 절기를 지킨 후에, 또 다시 7일간 절기를 지켰다(대하 30:23).
히스기야 왕은 모든 산당들을 훼파했으며, 모세가 만든 놋뱀(민 21:8,9)을 "느후스단" (놋조각)이라고 부르고, 그것과 함께 아세라 목상을 깨뜨리는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감행했다. 그는 철저하게 여호와를 신뢰했으며(왕하 18:5), 하나님께 매달렸고, 모세에게 말씀하신 명령을 준행했다(18:6). 이로 인해 열왕기 기자는 "그의 전후에 유다 여러 왕 중에서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극찬하고 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개혁으로 인해 아하스때에 유다에게 내려진 재앙의 위협은 잠시 유보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경건한 히스기야 왕과 함께 햊셨으며, "앗시리아"와 "블레셋"을 이기게 해주셨다(왕하 18:7-8)."
* 앗수르 왕 사르곤과 히스기야(사 20:1-6) 히스기야는 처음부터 그의 부왕과는 달리 반 앗수르 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마리아를 점령한 사르곤이 살아 있을 때에는 공개적으로 앗수르를 대항하지 않았다. 사르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갔으며, 그 대신에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을 그 곳으로 이주시켜 살게 하였다. 주전 711년에 아스돗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사르곤은 블레셋으로 출병하여 반람을 진압하기도 했다. 그 때에 애굽은 아스돗을 돕기로 약속했지만 돕지 못했다. 그때에 히스기야 왕도 아스돗을 도와야 할 입장에 있었지만 돕지 않았다. 아마도 이러한 조치는 선지자 이사야의 권면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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