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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89과)9.

Joyfule 2009. 9. 1. 00:31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89과)9.

시편(5): 제 2 권 (42-72편)


* 제 2권: 시 42-72편

 

<시72편> 솔로몬을 위한 시, "기름부음 받은 왕이 평화로운 통치를 위해 기도함(제왕시)

 

이 시가 (시 71편)의 뒤에 배치된 것은 71편과 72편의 중심 단어가 모두 "주의 의" (찌드카데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시의 표제는 이 시를 "솔로몬의 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 72:19)은 이 시를 다윗의 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시를 솔로몬의 시가 아니라, 다윗이 솔로몬을 위해 쓴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편 중에는 "솔로몬의 시"라고 기록된 것이 두 편이 있다(72편과 127편).

그런데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는 "솔로몬이 쓴 시", 또는 "솔로몬을 위한 시"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은 이 시가 다윗이 소로몬을 위해 쓴 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문제는 이 시에 사용된 문체나 성격이 다윗의 시와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이 시는 2행으로 이어지는 잠언 체로 되어 있고, 인위적이고 회고적이며, 지루할 정도로 형식이 단순하다. 또한 이 시에는 자연에서 따온 비유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욥기와 일치되는 점도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시의 특징과 형식은 다윗 보다는 솔로몬 문학의 형식에 더 가깝다.

  그러면 이 시의 저자를 솔로몬으로 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시를 솔로몬의 시라고 보는 경우에 이 시에 언급된 왕이 누구인지를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시를 솔로몬이라고 주장하는 학자 중에 하나인 힛치그(Hitzig)는 이 시에 묘사된 왕을 수리아의 왕인 프톨레미 필라델푸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유대인도 이방의 왕을 이렇게 찬양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견해를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또 다른 학자들은 이 시에 묘사된 왕을 "메시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시에 기록된 왕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되어 왔다. 70인경은 이 시에 나타난 왕을 솔로몬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탈굼은 이 왕을 메시아로 해석했으며, 초대 기독교 교회는 이 왕을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해석 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이 시에 기록된 왕을 솔로몬으로 보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이 시를 솔로몬을 축복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쓴 시로 보고 있다. 그들은 이 시를 솔로몬이 왕이 된 직후에 교회가 새롭게 왕이 된 솔로몬을 위해 드린 기도였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시는 시 20편과 21편과 함께 왕의 취임 식 때에 왕을 위한 기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시에 나오는 왕을 메시아로 보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이 시에 나오는 이상적인 왕의 길을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솔로몬은 다윗을 좆아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고 자비롭게 통치했다. 그는 왕국을 굳세게 하였으며 또한 영토를 확장했다. 그는 지혜로 백성들을 통치하면서 지혜의 왕으로 불리었으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요한 왕이었다.

 

그가 나라를 다스린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즐거운 시대였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에 나타난 기원들은 모두 솔로몬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는 말기에 접어들면서 그 왕도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그에게 점차적으로 지혜와 의가 사라져 갔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이 시에 나타난 소망은 다윗과 솔로몬에 의해서 성취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다른 왕들은 더욱 더 하나님과 백성들의 마음을 실망시켰다. 비록 그 소망이 히스기야에 이르러 잠시 타오르긴 했지만, 그도 역시 마지막에 가서는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 시에 나타난 이상적인 왕의 기대는 현실적인 왕으로부터 천상적인 존재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상 적인 왕에 대한 기대는 점점 더 초현실적이고 초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결국 경건한 성도들은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습을 현실적인 왕이 아닌 메시아를 통해 실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소망의 근거를 사람이 아닌 여호와만로부터 찾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상적인 토치자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찾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셔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와 자비를 온전하게 이루셨다. 그리스도는 인성을 가지신 동시에 신성을 가진 분으로 하늘과 땅의 통치자가 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자기 몸으로 인류 구원을 완성하셨다.

 

구약의 성도들이 다윗과, 야훼 하나님을 통해서 찾으려고 했던 메시아 상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인 동시에 하나님으로서의 신성을 가진 이상적인 왕이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인 동시에 온 세상의 왕이 되셨다. 이 시에는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성도들이 국가의 통치자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