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유안진
한 오십 년 살고 보니
나는, 나는 구름에 딸이요 바람에 연인이라
눈과 서리와 비와 이슬이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엉이 우는 이 겨울도 한 밤중
뒤뜰 언 밭을 말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에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 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 볼 뿐 대책 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젖갈 맛 나듯이
때 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지보다 죄업에 더 집착하여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워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갈 때 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만한 곳이며
떠돌고 흐르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에 딸이요,
떠도는 바람에 연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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