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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는 인생은 비극 - 엄상익 변호사

Joyfule 2023. 1. 1. 01:35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재미없는 인생은 비극



시민 인권상 시상식에서 ‘백로상’을 받았다. 변호사 생활 삼십년 이상을 그런대로 무난히 마친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마라톤에서 삼십키로미터를 주파했을 때 받는 인증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러나 밋밋하고 단순한 건 아니었다. 길 곳곳에 미끼가 달린 덫이 있었고 지뢰밭도 보였다. 다른 길로 가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변호사인 나는 도착역 가까이 가는 기차가 속도를 줄여 서행하는 것 같이 일을 줄일 뿐 계속 현역이다. 나는 외길인생 사십년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다. 몇몇 직업을 전전하다가 변호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내가 처음부터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천직으로 삼기로 했다. 

사회정의니 인권이니 하는 거창한 의미를 담은 직업이지만 처음 법정을 드나들 때 도대체 재미가 없었다. 지루한 회의실의 구석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들 의미 있는 일을 재미없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재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재미가 있어야 즐겁고 그게 없으면 직업 인생은 비극일 것 같았다. 법정을 가만히 보면 인생을 다루는 가장 극적인 무대였다. 재판은 연극과 비슷한 여러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법정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 같다.​

법정은 최고급의 인테리어를 한 고정적인 무대였다. 법복을 입고 등 높은 의자에 앉은 판사들의 말과 행동은 다분히 연기적인 요소가 있다. 검사나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변호사는 어떤 배역일까. 조역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단순한 연기만은 아니었다. 변론 시나리오를 작성할 때는 작가였다. 더러는 증인을 법정에 내세울 때는 그가 잘 할 수 있도록 연출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일류연출가와 작가 그리고 연기자의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재미가 있어야 즐겁고 즐거움은 놀랄만한 성과로 대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연극에 미친 사람들의 삶을 관찰했다. 연극으로 밥을 벌 수가 없어도 그들은 재미와 즐거움에 빠져 일생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법정에서 어떤 때는 주인공같이 화려한 재판장을 보면서 조역같은 변호사에 불만인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단역과 엑스트라를 맡은 사람들을 만난적이 있다. 한여름 쏟아지는 퇴약볕에 달구어진 버스 안에서 엑스트라로 동원된 그들은 자기 역할이 돌아올 때까지 비지땀을 흘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었다.​

“오늘은 내가 지하철역 직원역을 맡았는데 대사가 있어”​

대사 한마디에 그는 너무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그들은 엑스트라의 역할과 작은 노임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엑스트라만 아니었다. 중견 배우들 역시 무대에 오르고 싶은 열망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면서 무대를 항상 가지고 있는 나는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서 배워 변론 대본을 쓰고 대사를 암기했다.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말 한마디 어조가 단순한 게 아니었다. 변론의 동작과 코디까지 신경을 썼다. 법정무대에서 판사들과 방청객이 나의 말에 빨려드는지 심드렁하게 있는지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그러면서 재미가 생겼고 그 즐거움은 여러 건의 무죄선고와 대법원판결을 만들어냈다. ​

수많은 무대에 서고 수많은 종류의 인간들을 대하면서 사십년이라는 강건너 나루의 이름이 보이는 위치까지 세월의 강을 건넜다. 그 세월의 공간에서 쏟아지는 부산물도 제법 되는 것 같다. 기억의 조각들을 다듬어 나는 수필을 만든다. 내가 섰던 무대를 그대로 글로 형상화하면 변론문학이다. 뛰어난 소설가라도 침범하기 힘든 나만의 영역이다. 그들은 변호사의 예민한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극인이나 변호사란 직업뿐 아니라 모든 ​

인생은 신이 만든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자기의 배역을 수행하는 과정이 아닐까. 화려한 대통령이나 재벌의 역할도 있지만 가난한 소시민의 역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을 인정하고 맡은 부분을 잘 수행해 내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무대에서 시녀역을 맡은 사람이 나는 이런 배역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항의한다면 어떨까. 또 왕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오막짜리 연극에서 이제 삼막까지만 출연했을 뿐입니다라고 불평하면 어떨까. 별로 아름답지 못할 것 같다. 우리의 인생무대에서도 어떤 배역을 주고 언제 그 무대에서 내려오게 하는 연출자는 그분일 것 같다. 그분의 결정에 우리가 상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각자 하는 일들이 그의 배역이자 천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봤다. 그걸 재미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