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손 - 차윤환
쉽게 밥을 먹고 곧 잊어버려도
한 번도 탓하지는 않으셨지만
내가 쌀알처럼 단단하게 여물기만을 기다리시며
아침저녁으로 무게를 달아오신 아버지.
여든여덟(米) 번을 다 달지 못하시고
장마로 불어난 물살에 떠밀려 발목을 삐셨다.
부어오른 아버지의 발자국을 딛고
나는 낡은 우산을 펴든다.
굽은 살대의 마디가 아버지의 늑골을 닮았다.
구멍 난 천 사이로 빗물 스며
서늘히 젖은 목덜미에 손이 자주 간다.
그래도 아직 쓸만한 모서리 남아
해진 삶 기워주시는 아버지의 처마.
넓고 넓어
발 다 못 디뎌보고 건너는 아버지의 뜰에 서서
휘어 우묵해진 늑골에 기대면
빗소리 바람 소리 고랑에 물 대는 소리.
눈금 희미해진 저울손에 매달리면
나는 아직 타다 남은 왕겨처럼 가벼움만 더해가고,
허락도 없이 훔쳐보는 아버지의 일기장엔
가난이 죄는 아니라는 가훈에 가위 눌린 흔적들이
넘기는 장마다 실밥처럼 딸려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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