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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보러가는 사람들의 심리분석.

Joyfule 2021. 8. 22. 07:08


 

  

   점 보러가는 사람들의 심리분석.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의 첫 범죄는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었다.

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 같이 탐스러운 과실은 하나님의 명령까지도 거역하면서 따먹게 되는 어떤 마력을 발휘하고 말았는데 태초부터 인간은 어쩌면 생존적 차원에서 불안이나 공포로 부터의 행방과 연관된 그 어떤 지혜를 갈구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학과 산업화가 극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 와서도 이 예측하고 싶은 마음, 알고 싶은 마음은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고 문명과 원시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사회현상의 하나인 점, 예언 등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역시 유한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요 결함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가 점 보러가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점과 점하는 사람의 심리를 알지 않으면 안된다.

자물쇠와 열쇠가 한 짝을 이루듯이, 또는 거울 속의 모습과 거울 밖의 실체가 대칭관계를 이루듯이 점하는 사람의 마음의 실상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점이란 이 양자에게 공히 필요하여 생긴 문화현상의 하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원시 인간 모두에게는 그들이 무지한 만큼, 생명의 안전보장이 힘들었던 만큼 그들의 불안 또는 안전욕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것을 보상하기 위한 효과적인 문명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원시적 종교형태인 점 굿에 의존할 필요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이 우주와 밤과 낮의 원리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하는 우리도 아침의 일출과 석양의 낙조는 경이로움울 준다.

천둥과 번개는 과학적 설명 이전에우리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자연과학의 상식을 갖지 못한 원시시대의 우리 조상들이 경험했을 때 어떤 반응을 일으켰을지는 오늘날 우리들의 추측의 범주를 벗어나는지도 모른다. 아마 엄청난 두려움과 경악과 그리고 어쩌면 내 존재가 말살될 것 같은 불안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존재말살의 불안으로부터 살 방법을 찾아나선 것 중의 하나가 점 굿과 유사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점쟁이 무당의 심리상태란 어떤 것인가? 대부분의 무당은 한 맺힌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다. 가정에서 배척받고 결혼하였다든지 부모의 학대, 남편이 학대로부터 시작하여 조실부모하거나 남편을 일찍 여의는 등 소위 기구한 팔자를 타고 난 사람이 많았다. 또한 그들은 무당이 되기 전에 알지 못하는 병으로 오랫동안 투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신병 또는 무병이라 부른다. 이들은 신굿을 하면서 황홀상태에 빠지는데 이때 "신이 내렸다, 신들었다, 신 집혔다"라고 표현하고 이 상태에서 조상신, 다른 신, 역사적 인물 등의 신을 받아들임으로 자신의 병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그 신들의 신탁을 통해, 그리고 굿의 제반과정을 통해 의뢰자의 병도 치유한다고 한다. 이들의 심리는 첫째 성 심리가 미숙하고, 둘째 유아적인 의존성이 크며, 셋째 열등의식이 심한 것이 특징이다(김광일, 1972).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통찰력이 없으며, 둘째 나의 문제를 외부의 잘못으로 투사해 버리므로 책임감을 회피하며, 셋째 이러한 해결은 일시적이어서 재발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최근의 대상관계이론으로 분석해 보자면 우리 마음에는 자신과 대상에 대한 상이 형상화 되어 있는데 무당들은 이러한 내적 대상의 상이 부정적 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슬프고 병든 상태가 된다고 보며 이때 외부의 신을 내 몸에 불러들이므로써 나의 내부의 부정적 대상을 긍정적 대상으로 바꾸어 주게 되어 자신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게 된다고 볼 수 있겠다.

'ㅈ'부인은 60대의 미망인이다. 6.25 때 남편을 여의고 3남2녀를 곱게곱게 잘 길렀다. 이젠 남 부러울 것 없이 잘 살게 되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원인모를 어지러움과 두통이 생긴 이후 검사란 검사는 다 해보고 여러 가지 치료를 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런던 중 유명하다는 점쟁이를 찾게 되었다. 그 점쟁이는 말하기를 "응, 남편 신이 들렸어. 남편이 너무 외로워서 들어왔어. 너무 일찍 죽어 한이 되었어. 남편 혼을 달래야 해. 남편에게 옷을 해주고 그걸 잠자리 밑에 깔고 잔 뒤에 굿을 해 줘야해. 그래야 남편이 한이 풀려 나가게 되고 그러면 병이 깨끗이 나을거야." 남편 옷도 맞추고 하라는 대로 다하고 돈들여 굿도 했으나 병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 경우는 병으로 점하러 가는 한 전형적 예이다. 이 외에도 입학시험, 취직시험,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의 각종 시험을 앞두고 보는 점, 결혼, 득남 등과 같이 가정과 관련된 제반 문제에 임하여 보게 되는 점과 불치병, 난치병, 원인모를 병에 걸려 보게 되는 점 등 인간의 모든 어려운 문제나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여 점을 보게 되는 풍조는 줄지 않고 있다.

이렇게 점 보러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를 살펴보면 첫째, 유아저인 보장심리를 찾을 수 있다. 이 경우는 의존적인 성경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데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를 의지하면 안전하고 행복하듯이 점이나 점괘, 때로는 점괘에 따라 어떤 의식을 거행하므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동기가 숨어있다. 말하자면 무당과 그의 신에게 도움을 구하여 마치 어머니의 탯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안전한 보장을 얻고자 하는 의존심리가 짙게 깔려 있다.

둘째, 미숙한 요행심리를 들 수 있다. 실제 자신이 꿈꾸고 있는 사업이나 시험 등에 현실에 입각하여 실력을 연마하고 합리적인 준비를 하는 것을 성공의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여기기보다는 자신의 지나친 욕심이나 일확천금의 꿈을 가지고 행여나 행운을 잡을 방법이 없을까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일시적으로 성격상 퇴행하였거나 아니면 성격자체가 미숙하여 어린아이 시절의 심리특성인 만능감에 빠져 있을 수고 있다.

셋째는 피하기 어려운 확인심리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성격은 강박적이어서 미래의 결과를 확실하게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들의 결과에 대한 집착과 확실하게 알고 싶어하는 마음은 확실한 근거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충분한 승산이 있는 일에도 또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에도 결과를 알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불안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넷째는 미래가 불행할 것 같은 사람의 예방심리이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늘 나와 내 주변에서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을 느끼며 산다. 이들은 지나치게 양심적이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내가 계획하며 꿈꾸는 일들이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 때문에 무엇가 예방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점쟁이를 찾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매달리게 된다.

다섯째는 언제나 남을 손가락질하는 전가(傳家)심리다. 대부분의 점 보러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심리상태로써 나의 문제점이나 나의 부족함을 살피고 따져서 보완하려는 마음보다는 나의 불행과 곤경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거나 초자연적인 힘의 탓으로 돌리므로써 일시적으로나마 눈가리고 아웅하듯이 자기 위안을 찾으려는 얄팍한 투사(投射)심리하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투사심리가 발달하면 나의 모든 불행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더 나아가서 남들이 나를 해치고 괴롭힌다고 믿게 되는 편집증의 상태까지도 이를 수도 있게 된다.

여섯째 마법적인 치병(治病)심리다. 원인이 밝혀진 암이나 그의 비슷한 난치병 또는 원인을 찾지 못했던 여러 가지 신경증적이거나 정신병적인 질환의 치료를 초자연적인 힘에 의뢰하려는 절망과 무력감에서 나온 좌절심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좌절 앞에서 그 어떤 신비한 힘과 동일화 하거나 마술적인 기대를 하게 되는데 이것도 유아기로 퇴행하는 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구름을 잡는 듯한 예견심리를 꼽을 수 있다. 비근한 예로는 도둑이나 잃어버린 귀중품의 향방을 묻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치판도의 변화, 사업방향과 전망, 각종 운세에 대한 질문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자신의 소원성취와 깊은 관련이 있는 심리다. 누구나 소원을 이루고 싶은 무의식적 동기를 가지고 산다. 그리고 정확한 사리판단과 합리적 근거를 무시하고 꿈 꾸듯이 바람잡듯이 점이나 예언에 매달리게 되는 것은 그만큼 맹목적인 소원성취에 매달리거나 몽상적인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어리석은 그 자체에 다름아님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처럼 점 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심리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된 특징들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현실원칙을 저버리고 본능적인 쾌락원칙에 따르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경우에 일시적으로 또는 오래전부터 심리적으로 어린시절로 퇴행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러기 때문에 환상 속에서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 같은 만능감과 금방 이루어질 것 같은 성취감 속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잘못의 원인은 외부에 있으며 나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현실외면과 면책의 특권을 대책없이 만끽하면서….

점이라는 한 현상이 자발적으로 생겨난 이 사회와 그 사회의 일원인 점쟁이 그리고 점보는 사람, 이 모두는 넓게는 우리 인간의 자화상의 하나이자 우리 시대의 얼굴의 한 단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점이라는 현상을 둘러싸고 있는 스펙트럼 속엔 매혹적인 무지개가 영롱하게 빛을 발하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물론 이 무지개는 외부의 현실이 냉혹하면 냉혹할수록, 부조리하면 부조리할수록, 모순되면 모순될수록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하며 우리를 원시의 세계로 손짓하게 된다. 그리고 속삭인다. 왜 그렇게 어리석게 현실이라는 굴레에 갇혀 고생하고 있느냐고, 모두 다 털어버리고 어머니의 탯자리와 같이 안전하고 행복하며 무엇이든지 가능한 세계로 들어오라고 그러나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에게는 그것은 무지개도 아니며 매혹적이지도 못하다. 그것은 단지 유치하고 허황될 뿐이다. 하지만 이 유혹에 먼저 자기 몸을 던진 사람이 점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는 점복합구조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거나 자신을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법을 알려준다. 그는 자신의 '몸주'인 신의 힘을 간헐적으로 이용하여 자기 회복을 꾀하며 이젠 중간자, 매개자의 입장이 되어 점보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만일 우리 사회가 근원적인 불안을 해소하는 기능을 종교를 통해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면, 다시 말해서 기독교가 살아있다면 이들이 발 붙일 틈새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사회가 합리적이고 건전하며 성숙한 사회라면 점을 포함하여 그 어떤 미숙한 것도 활개칠 수 없을 것이다.

박쥐와 두더지는 어두운 곳에서와 어두운 때에만 활동하는 동물이다. 그들은 밝은 곳이나 밝은 때에는 활동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두움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빛이요 밝음이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교회가 빛 가운데 서는 일, 그래서 서로를 가꾸어 성숙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 그것은 점이 필요없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송경의 / 전남의대 졸. 광주기독병원 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