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는 본질적인 진리와 비본질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구원받습니다"라는 것은 본질적인 진리입니다. 반면에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는 대개 비본질적인 진리에 관한 차이입니다. 비본질적인 진리에는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진리에도 융통성이 많기를 요구하는 것은 진리를 취하는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가끔 어떤 분은 말합니다. "왜 기독교인은 이렇게 융통성이 없습니까?" 기독교인들이 비본질적인 진리에도 융통성이 없는 것은 반성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진리를 고수하면서 그런 말을 돋게 되면 그런 비난은 우리가 기꺼이 감수해야 할 십자가입니다. 성경은 "주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융통성이 없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의 길에도 융통성이 많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은 예수님을 믿는 오직 한 길밖에 없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 인근에 한 지하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건물 3층에는 점치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 점치는 집에 가면 석고상이 다섯 개 있었는데 각각의 석고상 앞에는 각각의 신의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단군신, 동자신, 선녀도사, 정도령신, 그리고 가장 오른쪽 석고상에는 예수신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지하 교회에 있는 전도사가 그 석고상을 우연히 목격하고 위층의 무속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이곳에 왜 예수신을 붙여 놓았습니까?" 그러자 그 무속인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 신을 다 믿으면 천국에 쉽게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들이 합쳐서 도와주니까 기도해도 빨리 들어줍니다."
전도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기도하려면 그냥 하지 왜 이 석고상들을 세워놓고 이름까지 붙였습니까?" 무속인이 대답했습니다. "이 석고상들은 다 살아 있는 것들입니다. 건드리면 큰일납니다. 특별히 제일 왼쪽에 있는 단군신을 건드리면 아주 큰일납니다." 그 말을 듣고 전도사는 아무도 없을 때 슬쩍 그곳에 들어가서 단군신 석고상의 코를 힘껏 잡아뜯어 보았는데 아무 큰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 신을 다 믿으면 천국에 쉽게 갈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융통성 있게 들립니까? 그러나 여러 석고상들이 무슨 구원의 길이 되겠습니까? 자기 자신들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서 각각의 석고상 뒤통수마다 먼지가 파랗게 묻은 것들이 무슨 남을 구원하겠습니까? 우리는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길밖에 없는 줄 믿어야 합니다. 이 본질적인 진리에 대해 융통성을 가지게 하려는 온갖 시도에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믿음이 될 것입니다.
94년 7월 10일 이한규 목사님 설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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