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 제6권]
제자로서의 성장 Growing in Discipleship
제 1 과 제자란 무엇인가?
4. 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수준은 높습니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왜 이러한 수준의 삶을 원하신다고 생각됩니까?
첫째, 제자의 삶이 최고로 가치가 있는 삶이되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최고 가치가 있는 것은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둘째, 제자로써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따르는 자들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능력과 풍성한 삶, 모든 것,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무엇이든지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높은 수준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포기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포기 할 것 포기하며 취할 것은 취하라는 말입니다. 부자 청년은 포기 할 것 포기 하지 못했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포기 할 것 포기해야 되기 때문에 사역이 힘든 것입니다.
포기 할 것 포기하라고 하면 제자의 삶을 포기 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떠날 때는 그냥 떠나지 않고 목회자를 가르치는 자를 비방하고 헐뜯고 떠납니다. 제자 사역에는 이 두 가지를 각오하고 사역을 해야 합니다. 만일의 경우 부자 청년이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따랐다면 주님은 물질에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밀 이삭을 잘라 먹지 않았을 것이며 주님은 잎만 무성한 나무 밑에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포기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 사역에 은사보다 제자의 삶을 철저히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삶이 없는 자가 은사를 받으면 거의 교만하고 교회 안에서 거역을 하는 삶을 삽니다. 먼저 제자의 삶을 배우고 은사를 받아야 교회 유익을 위해 쓰임을 받습니다. 그리고 종노릇 하고 섬기는 삶을 살려고 하고 계속 성장하기 위해 배우는 삶을 삽니다.
내가 포기 할 것과 취할 것을 메모지에 적어보십시오. 아직 버리지 못한 것 적어 보십시오.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하십시오. 그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은 포기하고 아직 취하지 못한 것은 취하여 제자의 삶을 사십시오.
제자는 배우는 자
높은 수준을 이해하고 알았으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범에 대해서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는 동안에 배우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움이라는 모험에 그와 함께 동참하도록 당신을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 가운데는 성전에서 듣기도 하시고 질문도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2:46).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 중에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4:32). 히브리서 기자는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생애에 관하여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히브리서 5:8). 예수님은 일생동안 배우는 자이셨습니다.
5. 어떠한 태도가 배우는 자의 특징이 되어야 합니까? (잠언 12:1, 4:13)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배우는 자의 태도입니다. 훈계를 좋아하고 징계를 좋아해야 합니다. 책망에 대한 태도는 그런 것을 좋아하고 받아 드리는 것을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제 삼자의 입장에서 말을 듣기를 좋아하지만 직접 나에게 책망하고 훈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오늘 세상의 특징이 배우기를 싫어합니다. 세상도 제 삼자의 입장에서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전하는 일에 있어서 아멘과 노멘이 갈라지기 마련입니다. 갈라짐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곳에는 제자가 없습니다. 오늘 시대는 훈계와 책망을 싫어합니다. 이것은 배우기를 싫어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 사역에 순종으로 따라오는 자가 있고 따라오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갈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4장 3~4절에 그 성내에 무리가 나뉘어 졌습니다. 제자 양육에서 갈라지는 것, 두려워서 너도 좋고 나도 좋다 하는 식으로 하면 실패합니다. 양육에 배우는 대로 따라오는 자가 있고 그 반대로 갈라지면서 걸고넘어지는 자도 있습니다.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훈계하고 비판하는 것을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성경 시편 141편 5절에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을 할지라도 머리에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거절치 아니할지라 저희가 재난(災難)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모범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의인인 나를 칠지라도” 영광스럽게 알고 받아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머리에 기름 같이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재난을 당하면” 그 사람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잘됐다”고 하면서 고소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왕이지만 배우려고 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치욕적인 죄를 지적했을 때 내 머리에 기름 같이 실제로 여겼습니다. 즉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여기에서 큰 그릇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격에 조금만 손상이 와도 입이 나옵니다. 다윗은 책망을 듣고 회개 즉 자백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발전하고 성장하고 영적으로 승리했습니다. 훈계와 책망을 싫어하는 것은 그릇이 적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성장과 발전이 없습니다. 아픔 속에서 그 아픔만큼 성장이 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는 훈련에서 맨투맨에서 인격을 터치하여 줄 때 발전이 있습니다. 제 삼자 입장에서 말하고 들으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부자 청년에게 확실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포기 할 것을 포기하고 취할 것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 모두 다 버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사건을 두고 제자들에게 “내가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고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주님은 제자가 떨어질까 봐 갈라질까봐 염려하지 않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사정없이 베드로를 책망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배우려고 하는 자세로 떠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신앙 고백으로 반석이라고 칭찬을 받았지만 태도가 잘못 되었을 때 사정없이 책망을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는 바로 주님의 태도에서 베드로처럼 배워야 합니다. 이런 자세로 도전을 해야 합니다.
6. 우리는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까?
(1) 잠언 4장 1절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대상은 아버지에게 배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내가 말씀으로 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자식은 아버지를 위선으로 봅니다. 권위는 그 삶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영적인 아버지가 자식에게 훈계 하듯이 해야 합니다.
(2) 잠언 27장 17절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상은 친구와 동료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친구와 동료가 서로 부딪쳐 줄 때 책망을 할 때 내가 잘못했을 때 내 인격을 터치하여 줄 수 있는 자가 친구와 동료입니다. 이런 한 관계 속에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철이 철을 갈아야 빛이 나고 녹이 슬지 않습니다. 친구의 인격을 갈아주어야 인격과 그 영혼까지도 녹이 슬지 않습니다. 이런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녹은 갉아먹고 부식하게 합니다. 부딪쳐 줄 때는 육적으로 부딪치지 말고 영적으로 사랑으로 부딪쳐 주어야 합니다.
(3) 마태복음 11장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상은 예수님에게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는 말은 행동으로 주님의 삶을 배우라는 말입니다. 소가 멍에를 메는 것은 밭을 걸거나 논을 갈 때입니다. 즉 일을 하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배워야 산지식이 됩니다. 일하는 현장, 행동하는 현장에서 배우라는 말입니다. 예로서, 주일을 지키라고 배웠으면 온전히 행동으로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않는 것은 무의미 합니다. 말씀은 행동입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4) 요한복음 6장 45절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네게로 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상은 하나님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환경, 주권적으로 주신 환경이 좋은 환경이나 나쁜 환경 속에서도 배울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배울 것이 있었습니다. 40년 생활에 배운 것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배워야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이 주시는 환경에서 배웠습니다. 내가 나쁜 환경에서 배우지 않으면 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역경 속에서 배울 때 그 환경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바울은 고난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욥도 고난 속에서, 말로만 듣던 하나님을 고난 속에서 만났습니다. 다윗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율례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모세도 요셉도 모두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5) 히브리서 13장 7~8절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상은 믿음의 선배, 영적인 지도자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라”고 한 것은 영적 지도자가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가는 것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주의 종은 종말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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