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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장. 최고의 법은 사랑 - 사랑의 어려움

Joyfule 2007. 9. 11. 00:00

5. 사랑의 어려움

예수님께서 명하신 [사랑의 법칙]자체에 대해서는 제자들이 진심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그것을 삶에 적용하려고 했을 때 어려움은 일어났다. 언제나 어려움이 시작되는 곳은 여기에서 다 이것에 대해 분명히 알아보자.

우리는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예수님의 말씀(마22:40)에 동의한다. 그러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우리가 신경질을 부린다면 우리의 신앙은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용서에 대해 하신 모든 말씀에 찬동할 수도 있지만 만일 우리가 모모씨가 언젠가 우리를 무시했다거나 우리와 충분히 의논을 하지 않았다거나 우리에 대해 난폭한 말을 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께 가까워 진 것이 아니다.

최초의 제자들 무리가운데서도 때때로 사랑이 무너지곤 했다. 누가 더 우월한가 하는 문제가 그들을 갈라놓았다(마18:1,막9:34,눅 22:24). 그리고 다툼이 일어났다(마20:2124).제자들중 누구도 몸을 굽혀 다른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 하지 않았다.(요13:45).자존심과 개인의 권리를 내세우므로 사랑은 그들 마음속에서 밀려났다.

 

이러한 자주성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아주 명백하다. 예수님의 태도는 세상의 태도와 정반대의 것이다. 세상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해를 끼칠 때 여러분의 권리를 위해 일어나서 받은 해와 동등한 보상을 받아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자주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런 태도야말로 근본적인 자주성의 결핍을 뜻한다고 하신다.

이러한 태도는 여러분이 여러분을 해하는 것들을 초월할 만큼 충분히 자주적이 못된다는 것을 보여준다.여러분은 그것의 노예이지 그것의 주인이 아니다. 이것이 [산상보훈]의 가르침이다(마5:38-48).이것이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신](벧전 2:23,막14:65)그리스도 전생애의 가르침이다. 만일 사랑과 개인적인 자주성이 서로 충분한다면 그 자주성은 거짓된 자주성이다.

또한 우리가 그럴듯 하게 보이는 우리의 자주성과 그리스도의 명령인 사랑중 어느 것에 순종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순의 의심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투쟁이 시작된다. 또한 이것이 사랑에 따르는 어려움 중 하나이다.

 

최초의 제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오늘에 와서도 매우 결실한 또 하나의 다른 어려움은 그 법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서약하게 한대로 사랑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과연 사람들이 그런 모험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만일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아들이기를 동의하고 동시에 그 명령을 실천하기 시작한다면 그 명령의 실현은 용이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명령 실천을 시작할 의시가 전혀 없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먼저 시작할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사랑으로 대하며 그 다른 한 사람이 그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일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사랑을 베풀고 그에 따를지도 모르는 모든 위험을 감수할 각오를 갖는다는 여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랑이었다. 그는 사랑을 받는 자가 어떤 태도로 나올 것인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은 곧바로 뛰어드는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은 모험적인 사랑이었다. 우리가 아직 그의 원수였을 때에 그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롬5:10)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가 온 세상을 위해 용서를 탄원한 것은 세상이 그를 못박아 죽였던 십자가 위에서였다(눅23;34).이것이 기독교적 모험의 주요 부분이다. 이 세상과 같은 곳에서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모험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위험성을 결코 숨기려 하시지 않으셨다(눅21:12). 그는 바로 그 위험성을 특히 젊은이들에 대한 도전으로 삼으셨다. 그는 청년에게 있는 모든 정열과 용기가 그 도전에 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청년들은 그 도전에 응했고 오늘날에도 응하고 있다. 사랑의 어려움은 또한 사랑의 영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