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장. 예수님과 사회문제
4. 국가와 정치
이 문제에 대하여 결정적인 해답을 주는 귀절은 한 바리새인이 세금문제로 예수님께 도전했다가 가이사의 권리와 하나님의 권띵에 대한 예수님의 중대한 선언을 낳게 했떤 사건의 이야기(마22:15이하)라고 할 수 있다.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물었던 질문은 고의적인 함정이었다. 복음서 기자는[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만일 그들이 예수로 하여금 일치하지 않는 대답이나 모순된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궁지에 밀어 넣을 수만 있다만 그들이 예수님의 대의가 전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퍼뜨리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리를 아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상대방을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분명히 아주 쉬울 것 같이 보였다. 결국 예수는 무식한 시골사람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로 하여금 대답할 수 없는 궁지에 몰아넣는 것 쯤 간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함정에 아첨하는 말로 미끼를 달았다.[선생님이여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는 줄 우리가 아니이다]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의 날카로운 눈이 어떠한 위장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문제를 꺼내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즉 민세(民稅)를 바쳐야 합니까? 함정은 교묘하게 고안되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대답을 하시더라도 그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걸려들게 할 수 있을 것같이 보였다.
예수께서 可하다고 대답하신다면 로마의 세금과 전쟁 배상금으로 시달리는 애국적인 유대인들이 즉시 그와 관계를 끊게 될 공산이 컸으며 만일 아니라고 대답하신다면 선동죄로 몰리게 될 것이고 로마 당국이 틀림없이 그를 억압하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았다.
더우기 만일 그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당연히 주위의 백성들은 그 침묵을 예수께서 그 대답을 알지 못하며 따라서 결코 참 선지자가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것이었다. 혹은 그가 만일 머뭇거리거나 생각할 여유가 갖기 위해 백성들에게 다음날 대답을 들으러 오라고 말한다해도 역시 그의 영향럭이 무너지게 될 것이었다. 그 함정은 가장 교묘하게 마련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정확하게 간파하시고 그들의 계획을 깨뜨리셨다.[나에게 셋돈을 보이라'고 명하시었다.그리고 동전을 보시고'이 형상과 글이 뉘것이냐?고 물으셨다 .[가이사의 것이니이다]고 그들은 대답하였따.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즉,가이사에게 속한 것이 가이사에게 하나님에게 속한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예수님의 대답하셨다.
이 중대한 말씀은 여러가지 이상한 해석을 낳았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근거로 왕권신수설(王權神受設)을 창안했으며,다른이는 이와는 정반대로 국가는 진정한 신자에 대해서 전혀 어떠한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주장을 끌어내었다. 또 다른 이는 이 말씀의 의도를 전혀 곡해하며 일시 모면하기 위한 답변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어떤 것이 참된 해석인가?
즉석에서 분명하게 대답할 한 가지가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파정치 논쟁에 있어서 어느 한쪽을 편드는 값싼 해결책을 제공하기를 거절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치계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주는 그의 멧시지에 당파적 색채를 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가 오신 목적인 근본적 혁명이 흐려지게 될 것이었다. 더우기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이지만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영원히 폐기되지 않을 법에 비추어 어떤 정치 질서를 확립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리스도께서 관심을 두신 것은 지침이 되는 원리였기 세부적인 지시가 아니었다.
또한 그가 인간 가운데 오신 것은 정치적 논쟁을 종식시키거나 경제 계획을 결정지우는 일보다 훨씬 높은 목적을 위해서였다. 그가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한 정신을 나누어 주시어서 그 정신의 힘에 의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논쟁을 해결짓고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천에게는 이것이 정치적 경제적 차원에서 참여를 의미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정치적 논쟁에 들어가시는 것을 거절하신 반면"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라"고 하신 그의 말씀은 특권은 항상 그에 따르는 의무를 수반하는데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만일 당신이 국가에 빛을 지고 있다면 다른 빛과 마찬가지로 그 빚을 갚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있다. 그들이 가이사의 돈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가이사 통치에 의한 덕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들이 의무를 인정하고 가이사에게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시민권으로 누리는 특권에는 이에 상응하는 의무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시민의 의무를 거부하는 자에 대해 결코 찬동하지 않으신다. 문제의 쟁점은 예수님의 손길이 순전히 정치적인 것에서부터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것으로 바꾸어졌다. 의무는 그것이 어떤 국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든지 신성한 것이며 또한 그러한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사상은 인간 창조의 개념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창1:7)창조되었다는 위대한 히브리적 사상에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가? [터툴리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즉 가이사의 형상은 동전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영혼에 있었다. 인간이란 동전이 세상에 와서 흘러 다니면서 아무리 낡고 희미해지고 마멸되었을지라도 인간이 속한 하나님이 형상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와간이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또한 모든 시대의 어려움 사회적 정치적 문제의 와중을 꿰뚫고 영원한 사실에 도달해 계신다. 그는 모든 문제를 개인적인 복음의 문제로 환원시키신다.[너는 하나님께 속한다]고 그는 말씀하신다. 너의 몸, 너의 영혼, 너의 마음, 너의 애정,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印)쳐진 것들이라고 말씀하신다. 네 빚진 것을 돌리라!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것을 그에게 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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