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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기원과 본질적 특성

Joyfule 2020. 1. 5. 01:50



        죄의 기원과 본질적 특성

    


4. 죄의 전이와 결과


4.1. 대속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에 죄를 묵과하지 않으신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인간의 불의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이 심판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23)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심판을 받게 하셨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며,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만인의 죄를 심판하셨다. 그리스도는 무죄한 분으로서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을 당하셨으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셨다. 바르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자이시다. 심판자이신 그리스도가 심판과 형벌을 당해야 할 인간을 대신하여 오히려 심판과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저주를 의미하므로 모든 저주까지 종식시키셨다는 것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사면해 주신 것이고, 이로 인해 인간은 죄의 책임을 전혀 부담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화해를 이루었다.
하나님은 사람이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죄를 더 이상 죄라 여기지 않고 간과하신다(롬 3:25). 이는 하나님이 믿는 자를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다. 의인(義認)은 하나님 앞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곧 이제는 믿음이 의의 기준이 된다.


칭의(稱義)란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신다는 법적인 뜻이다. 바울은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말했다(롬 4:5). 그러나 칭의가 인간의 본질까지 의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칭의는 인간을 죄 없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전히 있는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위해 흘린 피로 가려지므로 그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뜻이다.24) 따라서 어떤 행위나 경건도 인간을 의롭게 할 수 없다.
칼빈은 칭의를 ‘의의 전가(轉嫁)’라고 말했다. 칭의에는 죄를 씻는 일과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는 일이 포함된다. 우리 영에 있던 죄가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말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선택과 유기(遺棄)를 인정한다. 그러나 칼빈과 달리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구원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담을 대표하는 한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 바깥에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김기동은 하나님의 구원은 선택적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 품속에서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와 하나로서 동등하시지만, 그 동등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죽기까지 겸손하게 낮추려 하셨다. 죽음을 맛보는 육체 곧 인자(人子)가 되려는 데서 인간 창조의 뜻이 수립되고,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신 아들의 모양으로 지으신 것이다. 인류의 탄생은 하나님 아들의 겸손으로 말미암은 결과다.25) 그러므로 순전히 아담은 하와와 더불어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오시는 일을 위해 존재하며, 하나님의 아들의 일에 관련되므로 영적 존재로서 영원히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담이 불순종하여 그 영이 영원히 죽게 되자 하나님은 인자가 되시는 아들에게 그리스도가 되게 하여 피 흘리는 죽음을 명하셨다.26)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인자와 그리스도가 되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대적한, 그리고 아담을 타락하게 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정죄하여 심판하셨다.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일으킬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대속의 형벌을 담당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그를 의롭다 하시고 하늘 보좌에 앉히셨다.
김기동에 의하면, 인간을 구원하신 것은 인자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와 하늘 보좌에 오르시는 과정에 베풀어 주신 은혜다. 인간이 그러한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원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칼빈이 주장한 선택적 예정에 의한 구원 논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오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시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으로 나타난다. 믿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다.

4.2. 칭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는 어디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단지 인간 구원을 가능케 했을 뿐 구원받은 사람들의 구원을 확고하게 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구원을 견고하게 한 것인가. 또한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죄를 범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수많은 신자의 번민은 정상적인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칭의와 성화(聖化)에 대한 혼동이 아직도 산재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선 ‘칭의’는 ‘의롭다고 하다(justify)’라는 말로, ‘어떤 사람의 지위가 율법의 요구와 일치한다고 법적으로 선언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27) 신약성경에서 통상적으로 발견되는 의미는 다른 사람의 의를 그 사람에게 전가함으로써, 즉 그가 내적으로는 의롭지 못하지만 그를 의롭다고 간주함으로써 의의 신분을 야기(惹起)시키는 것을 말한다.


칭의와 성화를 명확히 구분하게 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로, 그 이전에는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조차도 법적인 행동으로서의 칭의를 성화의 도덕적 과정과 혼동하고 있었다. 종교 개혁 이후에야 비로소 칭의란 ‘예수의 의 가 믿는 자에게 전가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 면전에서 의롭다고 인정하는 행위이며, 신앙에 의해 값없이 받는 것이요 순간적이고 완전하며 완성을 위해 죄에 대한 어떠한 추가적 보속 행위에도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리했다.28) 이처럼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기초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충족되었다고 죄인에게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인 행위다. 칭의는 하나님의 법적인 행동 즉 죄인에 대한 선언이지 중생이나 회심과 같은 갱신행위나 과정이 아니다. 칭의는 죄인과 관련되지만, 내면적 삶은 변화시키지 않는다. 칭의는 그의 조건보다는 신분에 영향을 주며, 칭의에는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호의의 회복을 포함한다. 칭의 받은 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롬 5:1-10)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된다(행 26:18).


칭의는 죄책을 제거하고 영원한 기업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내포된 모든 권리를 죄인에게 회복시킨다. 그러나 성화는 죄의 부패를 제거하고 죄인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진적으로 새롭게 한다. 또 칭의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일어나며 하나님의 판결이 주관적으로 적용되지만, 내적인 생활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반면 성화는 인간의 내면적 삶에서 일어나고, 점차 전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칭의는 한 번만 일어난다. 칭의는 반복될 수 없으며, 과정일 수도 없다. 이는 단번에 완성된다. 칭의의 정도 차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완전히 칭의되든지 전혀 칭의받지 못한다. 그러나 성화는 지속적 과정이며 현세에서는 완성될 수 없다. 칭의와 성화가 모두 그리스도의 공로를 요인으로 가지지만, 성부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며, 성령 하나님은 그를 성화시키신다


그러면 칭의의 요소에는 무엇이 있는가? 죄의 용서가 있다(롬 4:5-8; 5:18-19, 갈 2:17). 칭의 시 부여된 용서는 현재, 과거, 미래의 모든 죄를 포함하며, 모든 죄책과 형벌의 제거를 포함한다. 이는 칭의가 반복을 허용치 않는다는 사실과 어느 누구도 칭의된 자를 송사하지 못하며 그가 정죄를 면제받고 영생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말씀에서 연유한다(시 103:12, 사 44:22, 롬 5:21; 8:1, 32-43, 히 10:14).
그런데 신자들은 칭의를 받은 후에도 계속 범죄하여(약 3:2, 요일 1:8) 중죄를 범하기도 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칭의 받은 자는 죄인, 즉 칭의 받은 죄인으로 남아 있다고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도 제자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해 날마다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다(마 6:12). 그러면 오늘날 이처럼 칭의 받은 신자가 법적으로 모든 죄를 사면 받고 죄책을 면제받았음에도 여전히 죄책감과 하나님과의 거리감을 느끼며 회개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