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기원과 본질적 특성
5. 신자의 죄의식과 성결한 삶
5.1. 신자의 죄의식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신자에게 죄가 있을까? 한마디로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되었을 뿐 죄인이란 본질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신자를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고 말했다.29) 칼빈도 성도는 죽을 몸을 벗어버릴 때까지 항상 죄가 있다고 말했다.30) 그는 믿는 자 속에 여전히 죄가 존재하지만, 그 죄가 지배력을 잃었다고 한다. 칼빈은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죄의 법이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서 폐해졌지만 다소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믿는 자들이 유혹되어 넘어지고 범죄하는 것은 바로 그 죄의 흔적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웨슬리의 의견도 일치한다. 신자는 어느 정도 영적인 사람이고, 어느 정도 여전히 육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웨슬리는 중생한 자 안에 존재하는 죄의 흔적들은 마지막 심판 때 재림하신 예수의 발 앞에서 멸망당하기까지는 모든 사람을 여전히 유혹하여 죄 짓게 한다고 말했다.31) 두 사람 모두 기독교인들은 성화의 과정 속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부족한 죄인으로 발견된다고 보았다. 이와 동시에 그 죄의 세력은 중생한 자에게만큼은 지배력을 갖지 못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그러나 신자들도 죄로 멸망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칼빈과 웨슬리의 답은 극명히 갈린다. 칼빈은 중생한 신자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다시 탈락하지 않으며, 탈락한다면 진정으로 중생한 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칼빈은 에서와 같이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결국 용서받지 못하지만, 선택된 자들은 하나님의 선택 자체가 항구적이므로 끝까지 견인(堅靭)되어 영원히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웨슬리는 중생한 자도 구원받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생한 자라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흔들어 깨우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 마음이 악으로 기울어져 어떤 욕망이나 기질에게 길을 내주게 되고, 결국 더 심화되면 믿음을 상실하게 된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림으로써 소극적인 내적 죄에서 외적 죄를 범하기까지 진행된다는 것이다. 결국 칭의를 받은 자일지라도 죄를 이기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상실하고 타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초신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벌코프는 신자들이 죄의식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칭의 시 죄책을 제거하시지만, 죄의 유죄성은 제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32) 다시 말해 하나님은 죄인에 대한 형벌의 가능성은 제거하시지만, 그가 범할 수 있는 여하한 죄의 내재적 죄책성은 제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죄를 고백할 필요를 느끼며 심지어 오래 전의 죄까지도 고백하려는 신자가 존재한다(시 25:7; 51:5-9). 즉, 죄를 고백하여 사죄의 위로적 확신을 얻으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이다.
성경은 칭의가 선행이나 죄의식의 완전한 비움 상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한결같이 가르친다. 우리가 칭의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때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에게는 믿음만 있고 신분은 의로운 자라 하는 인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영역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이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5.2. 성결한 삶
믿음은 행위를 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칭의에도 의로운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골고다 언덕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한 강도에게는 구원을 얻을 어떤 행위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예수를 의롭다고 인정하고 의지했을 뿐이다. 이로써 그는 강도가 아니라 의인이다.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 했다. 우리도 강도와 같다. 그러나 당장 죽지 않았으므로 강도와 같은 마음과 행위를 근절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성화라 한다. 벌코프는 성화를 “칭의 받은 죄인을 죄의 부패로부터 해방하고 그의 본성 전체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며 그가 선행을 할 수 있게 하는 성령의 자비롭고 지속적인 사역”으로 정의하였다.33
성결한 삶은 과정이기에 점진적으로 변화를 창출하며 완전한 거룩함에 이르도록 성경은 권한다(고후 7:1). 칭의는 성결의 기초가 되며 성결보다 앞선다. 칭의 자체는 우리의 내면적 존재에 대한 변화를 야기할 수 없으므로 성결한 삶이 그 보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이 거룩함을 성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안에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를 기초로 성령을 통해 값없이 거룩함을 일으키신다. 어떤 약한 신앙도 가장 완전한 칭의를 중개할 수 있지만, 성결의 정도는 그리스도를 붙잡는 인내의 정도에 비례한다. 이에 대해 김기동은 원죄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해결되고, 본죄는 성령에 의해서 다스려지며, 자범죄는 훈련을 통해 억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34)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이전의 성격과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새로운 성품으로 생활하는 것이 성결한 삶이다. 바울도 마음은 선을 원하나 원치 않는 정욕이 여전히 남아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고 표현했다. 이런 갈등과 정죄를 이기기 위해 성령을 보내주셨다. 예전처럼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했다(롬 8:13).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신다(롬 8:26). 따라서 칭의 받은 신자는 육체의 정욕이 싹트지 않도록 말씀과 능력을 항상 힘입어야 한다.
5.3. 용서 받을 수 없는 죄
성경은 두 가지 죄를 소개한다.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그것이다. 요한은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를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하였다. 사망에 이르는 죄는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고 따라서 용서 받을 수도 없는 죄다. 사망에 이르는 죄, 용서가 되지 않는 죄는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죄,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을 부인하는 죄를 말한다. 적그리스도나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한다.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며,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한다(요일 2:22; 4:2-3).
또 요한은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요일 5:17)라고 하며,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요일 3:6),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의 ‘범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가리키고,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것을 뜻한다. 믿는 자도 죄를 짓지만, 그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신자나 불신자가 다 같이 죄를 짓지만, 불신자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고 있고, 신자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을 뿐이다. 믿는 자가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하는 자다(요일 1:8). 다만 믿는 자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위해 아버지 앞에서 대언자가 있으니 그는 온 세상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요일 2:1-2).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요일 1:9). 그러나 불신자는 불의한 상태로 계속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 신자는 원죄가 사함받고 본죄와 자범죄를 성령의 인도와 훈련을 통해 줄여나간다. 그러나 불신자는 원죄가 해결되지 않은 채 죄를 쌓아가고 있고, 도를 닦으며 본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되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홀로 애를 쓰다 결국 멸망한다. 종교인들이 그 예가 된다.
6. 나가는 글
죄의 기원은 마귀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한 자로, 아담과 하와를 범죄케 함으로써 온 인류 위에 죄로 왕 노릇한 자다. 인간은 원죄로 인해 마귀와 함께 영원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고, 죄로 인해 마음과 생각이 타락함으로써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우리는 더 이상 마귀의 종 노릇할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그의 공로를 힘입는 자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고 죄 사함을 얻기 때문이다. 비록 육체에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죄에 대한 유혹과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지만, 예수의 피를 의지하는 믿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의 죄 때문에 멸망 받지는 않는다. 이는 이미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담당하셨기 때문이며, 우리의 구원 자체가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죄책감으로 두려워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구약에서 도피성을 향해 달려갔던 자들처럼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속히 회개하면 된다. 그러나 습관적이고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갈 6:7-8).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이후에도 마귀는 여전히 죄로 인해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하기 때문이다. 곧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하신 말씀(요일 3:8)대로, 상습적인 죄는 자기 영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마귀의 종이 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롬 6:12-19). 영혼은 예수의 공로로 구원 받지만 육체는 사단에게 내어준 자들에 대한 말씀이 그러한 경우다(고전 5:4-5).
그러므로 우리는 영과 혼과 육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온전히 거룩하게 보존되고(살전 5:23),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날마다 성결한 삶을 사모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해야 한다(딤후 2:20-21). 한 순간이라도 자신 속에 있는 죄로 인해 마귀의 영향력 아래 머물지 않도록 깨어 근신하며, 우리 속 사람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기를 사모하고 온전한 성결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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