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주일설교-자유를 얻었으면 굳건하게 서라

Joyfule 2024. 5. 19. 21:14



주일설교-자유를 얻었으면 굳건하게 서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갈5:1절)

 

갈라디아서는 이 시대의 지성적경건주의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는 자리에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간 갈라디아교회입니다.

그만큼 선악과의 독성이 무섭습니다. 이성과 상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으로 가르치면 그렇게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누룩이 퍼지고 맙니다.

그래서 지성적인 경건주의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컨트롤하므로

율법주의로 분류를 합니다. 말하자면 예수 믿는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말씀을 가감 없이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자유가 필요하냐고 예수님께 따지니 예수님이 너희는 마귀의 자녀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8:44)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고전15:56)

사망과 마귀는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죄를 의식하게 해서

후회나 죄의식이나 저주의식을 갖게 하므로 어찌하든지 이를 떨쳐보려고

안간힘을 쓰도록 만들어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도록 합니다. 만약 지금

스스로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그는 사망의 종이 되어 있는 겁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내가 행해야 한다고 낑낑대면 의문의 율법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살리지 못하고 죽이며 저주를 안겨 사망과 음부에 갇히게 합니다.

아무리 예수의 피가 나를 구속했다 십자가를 바라보자고 해도 그 선 자리가

죄와 사망의 자리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사망의 급료가 지급되고 맙니다(롬6:23)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다고 하는 말은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파티처럼

제멋대로 살아도 되는 자유(freedom)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가도록

하는 진리 안에서 자유(liberty)입니다. 성경을 이성과 상식으로 문자적으로 보는

율법주의에서 그리스도에게 가서 그의 영으로 자유를 얻어 주의 형상을 얻고

그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는 자유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자유를 말하는 겁니다. 결국 아버지 앞으로 이끌려 나아가는 자윱니다.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신 것처럼 자유도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하늘에 오르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로 나타내십니다. 진리를 알므로 자유를 얻습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이며 성령 또한 진리(요일5:6)이시므로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유를 주십니다. 선악과를 먹고 죄와 사망의 종이 되어 진선미의 육체의

미학에 찌든 종이었다가(물론 본인은 종인 줄 모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그 지긋지긋한 육체의 미학에서 벗어나는 자유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여론신앙이라면 바로 그게 종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같이 밥을 먹다 유대인이 오니까 슬며시 자리를 떠다가

바울에게 된통 당하고 맙니다(갈2:14) 선악과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 때문에 이 시대에 교훈에 교훈을 더하는 말이

난무하고 무슨 강연인지 토크쇼인지 모를 언어들이 가득하게 날아다닙니다.

한 번 듣고 마취제나 진통제 하나 맞듯 웃고 즐기고 말 것 같지만 그게 누룩이

되어 진리와 멀어지는 생각으로 가득하게 되어 사망과 음부로 끌려들고 맙니다.

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정죄하며 부정적인 마이너스 발상이 바로 그 증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 속에 나타나시므로(갈1:16) 유명한 자들의

눈치나 다른 사도들의 제재를 받지 않는 주관적인 영감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갈1:17)

거침없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담대히 외치며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에 이제 사는 것은

자신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담대히 선언합니다(갈2:20)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명실공이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육체의 연약으로 인해 진리에 대해

약골인 것이 거의 모든 사람의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래서 굳게 서라고 말합니다.

이는 베드로처럼 어영부영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엉거주춤하게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말을 의존하지 말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스스로 자존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의 지휘하래에 들어가기 때문에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와 같이 충분하게 존재가 된 다음에 일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을 하다보면 그 자체가 멍에가 되어 그만 묶이고 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곧 새로 지음을 받은 자로 계산하는(갈6:15)

스티커가 그 안에 새겨져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크를 따라 행하는

자유자에게 평강과 긍휼을 한 없이 주시므로 능히 영을 좇아 행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흔적이 그 몸에 박혀

영의 생각을 늘 하므로 법 아래에 있지 않고 항상 은혜 아래에 머뭅니다.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고 사랑의 종이 되어 그 사랑을 추구하게 됩니다(갈5:13)

죄와 사망의 종이었던 우리를 그 아들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로 옮겨 진리 안에 자유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로 그 영광으로 이끄시고 드디어 사랑에 이르도록 끌어당기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 사랑으로 부르시고 성령은 탄식하며 뒤를 밀므로

드디어 우리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사는 경건의 연습을 하게 됩니다.

죄와 사망에서 얻은 자유의지로 성령을 좇아 살므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성품으로 변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갈5:22-23)

이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이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갈5:24) 그리스도 안에 자유를 얻어 더 이상을 육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영을 좇아 살 수 있는 기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와 지금 세상의 교육의 풍조에 휩쓸려

가는 현대교회를 향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을 좇아 살라고 자유를

주셨으니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멍에를 매는

누룩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또 들어 진리의 성령 안에서 자유를 얻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감을 얻는 믿음을 먼저 확립하십시다.

그리고 그 자유로 사랑을 좇는 종노릇을 하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가는

자유인들이 되기 위해 묵상과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고 항상 반복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