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진 나를 찾으라

Joyfule 2024. 5. 17. 16:08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진 나를 찾으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3:1-3절)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위위 것을 지향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까지 이르기 위한 여정은 깁니다.

기독교의 사이비나 이단은 계속해서 자신을 찾고 땅의 것을 찾도록 합니다.

우리의 위엣 것이 있는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만일 주님이 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 영안으로 보인다면 참 기도를

터득한 겁니다. 주님을 따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쭉

따라 올라가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묵상과 기도는 바로 다윗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사실 시편기자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시84:5)

묵시의 노래가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계신

보좌를 향해 주의 이름을 부르는 다윗과 같은 실상의 믿음의 복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가정교사와 같이 진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심을 따라

배우며 얻어터지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하다보면 어느덧 빤히 보이게 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거기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님이 나를 붙잡아 가셨으니 이 땅에서는 나는 껍데기 밖에 없습니다.

이방인이며 나그네입니다. 땅에는 근거도 터전도 없이 두루 다닐 뿐입니다.

그래서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가난이 싫지만

두렵지는 않다고 말하기에 당신은 아직 상대적인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해 줬습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보좌에 붙들려 있는 사람은 빈부에 대한

의식자체가 사라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우쭐 댈 일도 없고 비굴해 질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라 하늘의 보화를 찾은 다음에는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보화가 마음을 붙잡지 못하면 그건 보화가 아니지요. 롬8:6의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입니다. 성향이 바뀝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 언제나 육신의 생활을 탁 털어 버릴 수가 있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활은 항상 귀신에게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사로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왜 위엣 것에 붙잡혀 있어야 하느냐 하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가고 없습니다. 끝났습니다. 물론 땅의 젖이 떨어지기 전에 소태맛을

오랫동안 거듭 맛보기는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십자가로 그어진 생명과

사망의 경계선을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시선이 위로 향합니다. 

 

그래서 너희 생명이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이란 삶의 의미와 가치와 같은 말입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인해 우리를 사로잡아 하나님의 보좌로 이끌고 올라가셨기

때문에 나의 삶의 의미와 가치는 당연히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 하십니다. 아니 그런 체질이 되어야죠.

그리스도와 함께 묶여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곧 싸여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이미 나의 존재는 이 땅에서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나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이 땅에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가진 것은 다 반납할 겁니다.

나의 몸뚱어리도 결국을 흙으로 되돌아가 우주의 먼지가 되고 말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 비밀을 언제쯤 깨닫고 옛 사람과 새로 지음을 받은 자와 육신의

자아와 그리스도 안에 하늘에 앉힌 영원한 참 자아가 확실하게 구별이 언제 되느냐

하는 문제는 본인에게 있어서 엄청 중요한 일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평균치로

남자는 20년, 여자는 30년 병 치례 하다가 돌아간다는데 결국 땅과의 싸움이며

사망과 싸우다가 패배자로 시름시름 앓다가 인생이 끝이 난다는 이야깁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약방문이나 하고 병원사냥이나 하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일생이 마무리가 된다면 스스로 불에 타 죽는 승려보다 못하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약 봉지를 쌓아놓고 있다면 당신의 가치관이 어디에 붙잡혀 있는지 점검하세요.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잘 들으세요. 주님이 나를 붙잡아 올라가신 그 길을 답습하세요.

따로 울며불며 회개한다고 부산떨지 말고 말씀을 들으며 아차아차하며 교정하세요.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 안에서 그 거리가 점점 가까워 오다가 드디어 빤히 보이게 될 겁니다.

그 보좌를 향해 간구하고 부르짖고 경배하고 노래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기이한 힘이

나의 전 인생을 감싸고 인도하고 보호하실 겁니다. 그게 바로 생명싸개에 싸인 인생입니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절)

 

오늘은 충만한 은혜에 대해 한 번 말씀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우리가 죽은 이후에 갈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에서 우리가 충만해져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이 되어 완전무결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창조계획대로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으로(창1:28)

우리의 구원의 서정이 계속해서 발전되어야 합니다. 기독교만 유일한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하나님께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심과 동시에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신

그리스도 외에 보내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영이십니다.

누구(who)시냐 하면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시라고 대답하지만 무엇(what)이냐고

물으면 그분은 영(Spirit)이십니다. 그리스도는 그 말씀 곧 가라사대, 이르시되 하시는

그 말씀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아담 안에 있던 인간의 모든 문제를

청산하시고 다시 그 영광 가운데로 돌아가셔서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성령을 보내시므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새 언약을 체결하신 것을

가르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심을 가르치십니다.

인간은 선악과의 독성에 의해 법 정신에 찌들어 있어 육체의 진선미로 끌려가다가

성령의 생각나게 하심(remind)으로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허둥대던 죄에서 빛 가운데로 돌아와 그 피 안에서 깨끗함을 회복합니다.

 

주의 이름을 영접한다 그 이름 안에서 믿는다(요1:12)는 말은 예수를 영접한다

또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다 그래서 영생을 얻었다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접은 그리스도의

존재와 함께 그분이 이룩하신 사역의 전부를 듣고 믿음으로 수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고아와 같이 스스로 믿음의

동기와 동력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분들을 보면 참 딱하게 여겨집니다.

과거에 그런 광야에서 헤매면서 물과 양식을 찾아 애타했던 아픔이 되살아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친근히 사귀라 또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라 등의 주문을 합니다.

진리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통과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닿는 영적인 감각이 없이 성경구절만 내세우기도 합니다.

 

교회는 우선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본질적으로 음부의 아가리가 삼킬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마16:18) 그럼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우울증과 공항장애로 나아가서 암 등의 병으로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망이란 놈의 저격에 쓰러져 음부에 갇힌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충만이신 그리스도께 연결이 안 된 교회이며 그 지체들입니다. 만일 연결이 되면

생수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붙은 지류(rivers)가 된 생수의 강들이 됩니다(요7:38)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수의 강에 우리의 영혼을 연결시키기 위해

성령이 오셨습니다(요3:39) 아마 기독교가 제일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 오늘 날이라는

이 날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형이상학인 카이로스의 시간이

중첩이 되어 존재하면서 그 안에서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충만하신 그리스도와

한 떡 한 몸 한 영이 되어 그 충만하심으로 충만해지는 비밀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기독교의 최대의 비극은 새 언약을 모르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 안에(in the flesh) 오심을 시인하므로 영생을 얻는데(요일4:2)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만을 믿으라고 하므로 그만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적그리스도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겁니다. 예수를 믿느라고 그리스도를 anti하고 마는 우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을 먹은 것이 죄이며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종이

되었다면 하나님께 먹으라고 한 것을 먹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의가 되는 겁니다.

죄의 반대는 율법을 지켜 죄를 짓지 않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겁니다.

그래서 죄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며 의는 받아먹으라고

주신 그 아들을 영접(카타람바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접은 잽싸게 붙잡는 겁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삭개오처럼 앞 뒤 잴 것 없이 용의주도하게 붙잡고 늘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개인의 구주로 모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요한이 증거한 것처럼 태초

안에 계시던 그 말씀이십니다. 그래서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고 증언한 겁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난 세례요한이 그보다 먼저 계신다(요1:15)고 한 그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 안에 계시던 그 말씀이시며 모든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교회의 머리로서 그 몸인 교회를 충만하게 하십니다(엡1:23)

 

중요한 것은 기독교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말씀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심과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그리고 하나님의 우편 영광에 앉으시고

만왕의 왕이 되심과 동시에 우리 가운데 진리의 성령으로 임재하셔서 영광나라

임금이시면서 우리의 개인의 구주가 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성령의 감동 곧 영의 느낌에 의해 진리로 한 영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서 주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 지는 겁니다. 지금의 세계교회의 숙제이며 신자개인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근래에 한국교회에 내로라하는 목사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여겨 기도하면서 그의

영적인 현주소를 지적하며 일깨워주려고 애를 쓰지만 너무 멀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이게 한국교회의 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설교가 정신함양인지

아니면 교양강좌인지 도무지 복음 곧 진리의 말씀하고는 동떨어져 있으니 어찌하여

아담 안에서 붙잡혀 있는 사망과 음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를 할 수 있을까요?

부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세요. 듣고 또 듣고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서서히 느낌이

승화가 되어 들은 바 말씀이 하나님의 형상에 이르는데 합산이 되어 유익이 되게 하세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라는 건 협동하여 선한 사업한다는 뜻도, 인생만사새옹지마라

전화위복이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얻어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러 그의

충만한데서 받고 또 받아 은혜 위에 은혜가 쌓이고 또 쌓이는 믿음의 총소득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