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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 임병식

Joyfule 2013. 1. 23. 10:51

 

 

 중환자실에서 - 임병식


 

전쟁터에서 최전선이 생사를 넘나드는 지경선이라면  병원의 중환자실은 위중한 환자들의 명운이 판가름나는  곳이다. 그런만큼  숨막히고 긴장감이  흐른다. 그런 곳에서 지금 아내는 뇌졸중이  재발되어  몇달을  의식이  불분명한 채로 가녀린  숨만  내쉬고 있다. 의사의 말로는  일단 위급한 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아직도 안심이 안된다. 말도 자유롭지 못하고  수족도 쓰지  못하니 절망상태다.  이대로 가다간 식물인간이  되고 마는 건  아닌지  방정맞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사정이 이러니  다른 병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신경도 써지지 못한다. 무신경해서가 아니라 내 코가 석자다보니 아예 그런데는 신경을 쓸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곳이 얼마나 절박한 곳인가. 그제밤에는 악성 빈혈로 입원한  김씨라는 환자가 수혈을 받다가 그만  발작을 일으켜   종합병원으로 실려갔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곳으로  실려가기 전, 그는 나에게  무척 신경질을 부리고 갔다.

 

 자기 침상 공간이 좁아졌다는 것이다. 그의 불만을 들으며 사람의 욕심이란  죽는 순간까지도 한정이 업구나  싶어 서글펐다. 5인실 의 침상에서  자기 자리가  침범을 당했으면 얼마나 당하고, 더 차지하면 얼마나  차지 하겠는가. 나는  얼토당토않은 그의 태도에   속을 상하지 않으려고   한 뼘 남짓이나  물러나 양보를 해주었다.  병색이 가득한 얼굴을 보니 이승에 남아있을 시간도 얼마 되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얼마있지 않아 세상을 떴다는 허망한 소식을 남겼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마치 나에게 새상의 온갖 화풀이를  하고간 듯한 생각마져  들어서였다. 어거지도 그런 어거지가 없고 생떼도 그런 생떼가 없었던 것이다. 한데,  어젯밤에는 또 다른 환자 가족으로부터 아주 극단적인  막말을 듣게 되었다.건너편의  뇌졸중 환자  딸인 듯 싶은데,  무슨 심통이 났는지 환자에게 ,
"막말로 콱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지 이렇게 실려 왔는가  엉.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할란가. 죽는게 낫지"하고   막말을  내밽었던 은  것이다.그녀의 항변인 즉슨 형제자매가 여수만 해도 어려명이 있는데, 모든 치료비며 간병 문제를  전적으로 자기에게 떠맡기고 나몰라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얼른  아내의 침상을  가로막고 서서  그 험한 말을 듣지 않도록 가로 막았다. 병실은 조금 과장하면 하루종일 구린내와 지린내로  채워져 있다.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환자들이 무시로 싸놓은 것들을 현장에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그런 곳에서 나는 비위살 좋게도 태연히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지내고 있다.이런 자신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하고 요사스러운것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오후에는 좀 치사한 일로 마음을 상하였다. 아내의 입을 적셔주려고 요구르트를  수저로 떠 먹이다가 그만 환자복을 적셨는데, 마침 옆 병상의  간병인이 환자복을 타오기에  나도 달려가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다 떨어지고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포기 했는데 잠시 후,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보니 다른 병실 사람이 그 간호사한테서 환자복을 받아 나오고 있질 않는가.


 어찌나 화가 나던지 열이 받쳐서  따져 물었더니 하는말이  비상시에 대비하여 한 벌을  여벌로 남겨 두는데, 그 사람이 더 급한 것 같아  내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공평히 대하라구.어찌 차별을 하고 그러냔 말이야"
하고  나무라고 말았는데, 생각할수록 두고 두고 괘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하나, 때마침 아는 간호사가 달려와 아까 화을 낸  얼굴을 보니  무섭더라고 이해해 달라고 해서 그래봤자 나만 속을 상한다는 생각에  제풀에 분을 삼키고 말았다.


 요즘 병상을 지키면서 느끼는 일일지만,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을 떠올릴때마다 누가 지었는지 참으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하루만  같이 지내도 금방 친해지는지  벌써 십년지기가 다 된듯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웃 옆 침상의 아저씨는 60이 가까운데도  아내 간병에 지극정성을 보이고 있다.
"꼭 일어나소잉, 아무런 걱정일랑 말고 내가 옆에 있을테니 불안하게 생각말소 알았는가"

 

그런 말을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내가 하는 간병은 너무나 형식적이고 성의가 없는 것 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는 말뿐만 아니라 수시로 맛있는 음료도 챙겨  먹이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표현도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나는 그저  마음에만  담고 있을 뿐, 정작 표현이나 행동도 살갑게  못해주는 것이다.오늘 아침에는 병원 베란다에 나가  맨손체조를 하다가 건너편 집 마당에 철 지나 피어있는 한떨기의 국화를 보았다. 꽃나무는 아직도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사대육신 멀쩡한 아내가 문득 생각나, 사람의 생명이 저 나약한 화초만도 못하는가 싶어 뜨거운 것이 대변에 목울대을 타고 치밀어 올라왔다.

 

아내의 투병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가짐일  것인데, 언제 까지 버틸 수 있을지 나 자신도 장담하기 여렵다. 같은 병실의 한 남편이 아내의 장기 간병을 하면서 아들과 갈등을 빚고 커텐을 두르고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남의일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흔들리지 말자'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각오를 다지고 있다.(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