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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들어간 부자보다 못한 우리의 신앙

Joyfule 2018. 9. 26. 15:45


지옥에 들어간 부자보다 못한 우리의 신앙

 


수년 전에 생생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아파트 현관문을 누가 두드리길래 문을 열고 누구인가 확인했습니다.

누더기에 때가 많이 묻은 냄새 나는 옷을 입고 저에게 하는 말이 배고프니 들어가서 식사 좀 하게 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저는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죄송합니다 하고 그냥 문을 닫아버렸지요.

닫아버리는 순간 문소리에 내가 놀라 꿈에서 깨고 한참을 찝찝한 기분으로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 뭐지..왜 이리 기분이 안 좋지?...개꿈은 아닌듯한데...

 

아침이 되어 식사하면서 집사람에게 그 꿈 이야길 했더니 막 뭐라고 하더군요. 예수님이 찾아오셨는데 당신은 예수님을 내 쫒은 거라고 하면서 눈에선 섬뜩한 레이저광선을 쏘고 입은 속사포를 쏘더군요.

가만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후회가 되고 내 자신에게 짜증이 나던지 하루 종일 저기압 상태로 보냈습니다.

친구가 되고 내가 너 안에 거하고 너가 내 안에 거하여 서로 먹고 마시려고 찾아오신 예수님을 외모만 보고 더러워서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안으로 들이지 않고 문을 닫았으니 이 얼마나 큰 죄인가, 하면서  나중에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고 또 그런 꿈을 꾸길 내심 기대하고 잠을 자는데 그 꿈은 안 꿔지더군요.

 

그리고 시간은 흘러 흘러 머릿속에서 그 꿈이 거의 잊어버릴 시점에 거의 1년이 지나서 또 그 꿈을 꾸게 되었는데 문을 열고 다시 위아래를 흘려 보면서 한참을 망설인 끝에 죄송합니다 하고 또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깨어났습니다. 이번에도 얼마나 후회가 되고 내 자신에게 화가 나던지 진짜 머리카락이 빠지라 흔들면서 주님께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번에는 집사람에게 도저히 꿈 이야길 못하겠더군요. 쫒아낼 것 같아서...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면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여 주님께 보란 듯이 나 좋은 일 하겠습니다. 주님 보세요 하고 거지로 분장한 예수님을 들였을 겁니다. 그러나 꿈은 내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전혀 계산됨이 없이 고스란히 나타남으로 그 꿈에서의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임을 알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 꿈으로 인한 후유증이 일주일은 가더군요.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었어 나는 간사하고 계산적인 속물이었어..그 후

성경 누가복음을 읽는데 거지 나사로와 부자에 대한 부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에도 여러 번 읽어서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기분으로 읽어가는데 중간에 읽다가 성경책을 집어 던졌습니다. 왜냐고요? 지옥에 간 부자가 차라리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란 게 화가 나더군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누가복음 16장19절~21절)

 

그 부자는 분명 지옥 간 악한 자였습니다. 부자인 걸로 보아서 바리새인 급의 기득권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며 그 시대상의 배경으로 유추해보면 율법도 잘 지켰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기록되듯 지옥에 갔고 나사로는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적어도 그 부자는 대문 에 있던 거지 나사로를 쫓아내지 않았으며 그래도 상에서 먹다 남은 음식 부스러기라도 먹으라고 주는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내가 만약에 그 부자였다면 냄새나는 거지 나사로를 바로 멀리 보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귀한 손님들이 들락거리는데 냄새나는 거지가 대문 옆에 누워 있다면 이건 이만저만 걸림돌이 아니거든요.. 이게 솔직한 나의 심정입니다.

 

그러면서 나같은 이런 더러운 영성의 소유자가 교회 가서 가슴을 치면서 주여주여를 외쳤고,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며 자가당착 하며 착각했고, 

겉으로는 박스때기 줍던 할머니 리어카를 밀어드리면서 덕담해 드렸고,

지나가면서 불쌍한 사람이 보이면 주여 저분을 주님의 은혜로 불쌍히 여기어 주시고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라고 가증스러운 혀를 굴렸습니다.

 

내 속사람은 그것이 아닌데 겉사람은 아주 거룩한 듯 포장을 하는 비열함을 보였습니다.

만약 내가 속사람마저 거룩했다면 분명히 꿈속이라도 거지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불쌍히 여기며 안으로 들여서 식사와 차라도 대접해 드렸을 것입니다.

나의 이런 모습이 생생한 꿈과 성경을 통해 확인되자 나 자신에게 얼마나 분노가 치밀던지 아프다는 핑계로 그날 업무을 젖히고 온종일 골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분을 삭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가 성경에 나오는 그 지옥 간 부자를 두고  얼마나 죄를 지었으면  그렇게 되었냐고 할 것이며,

어떻게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주님께 기도하며 내 기도내용을 구하겠습니까..

거지 나사로는 이름을 기억하여 나사로라고 거명되는데 지옥에 들어간 부자는 이름조차 거명이 안되며 그냥 부자라고만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저를 기억해 달라며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천국문 앞에서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름조차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들려주시면서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것은 실로 엄청나게 무서운 사건입니다.

 

또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서 찾아왔을 때 예수님이 물으시길 네가 모든 계명을 지켰느냐 물었을 때 자신 있게 네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아주 자신만만하고 호기 있게 대답하면서 이 정도면 주님을 따르는데 완벽하지 아니할까 착각할 때 예수님은 네가 부족한 게 하나 있는데 너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젊은 부자 관원은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던지라 실망하여 구원을 잃어버리는 슬픈 대목입니다.

 

이 젊은 부자 관원도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켰고 여느 바리새인들 처럼 구제도 하였을 것이고 나름대로 흠 없는 당당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 하는데 주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그 관원을 바라보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을 테지만 주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아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저 지옥에 간 부자와 또는 부자 관원보다 낫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댁의 현관 문앞에서 나사로같은 거지가 냄새나는 몸을 해 가지고 먹을 것 좀 달라고 하면서 드러누워 있으면 내어 쫓지 않고 그냥 두시면서 지옥 간 부자처럼 먹을 것을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젊은 부자 관원처럼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데 그 율법 지킴은 나름대로 엄청난 좁은 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계율을 지켜가면서 살았는데..그 율법을 어기지않고 지키는 게 애들 장난이라고 보십니까? 여기 누가 그 젊은 부자 관원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분이 몇 명이나 될까요?

 

우리는 주변에서 참 많이 봅니다.

교회 열심히 다녀서 사업도 성공하고 물질복도 많이 받았다고 간증하며 주님께 영광 드린다는 사람들이

에쿠스 혹은 벤츠를 끌고 다니면서 이웃을 위해 구제했노라 하며 자기 재산과 비교하면 티도 안 날 정도의 생색으로 이웃을 위해 할 일 다 했다는 돈 많은 장로님들..교회에서 연말연시에 불쌍한 사람들을 돕자고 불우이웃돕기 쌀 헌금을 하자하며 20키로 쌀포대에 교회명칭과 담임목사 이름 크고 잘 보이게 붙여서 생색내듯 동사무소에 기부하며 나눠주라고 목에 힘주고 말하는 목사님들...평소의 온갖 명목으로 제목을 붙여 헌금 탈탈 걷어 교회확장과 담임목사님 명예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던 그 많은 헌금들은 허공으로 날려버리고 티도 않나는 구제헌금 가지고 어깨에 힘 바짝 주고 할 일 다 했다는 생색내는 목사님들이여 그대들이 과연 지옥에 간 부자와 젊은 부자 관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의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용할 의식주만 남기고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라는 게 너무 가혹한 주문입니까?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다 쓰지도 못하는 주체못할 물질을 소유했으면서도 목에 힘주고 복을 받았다는 사람들아~ 지금 당장 그대들의 영혼을 주님께서 데려가신다면 그 많은 물질이 뭔 소용이 있습니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냥 주고받는 농담으로 들리십니까?

이 세상에 헐벗고 굶주려 기아로 죽는 불쌍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데 감당도 못 하여 동녹이 나는 그 많은 물질을 쌓아놓고 교회 가서 주여주여 물질 복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외칠겁니까?

 

사실 저도 만약에 부자라면 어떻게 처신했을지 나 자신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일용할 의식주로 살기에 아무 부담없이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는 부자가 아니라서 물질의 나눔에 대해 큰 부담과 압박이 없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말할 수 없이 악한 죄인이고 지금 당장 죽는다면 천국 간다고 장담도 못 하는 어중이떠중이 교인입니다. 그저 육체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좁은 길, 좁은 문을 찾아 가려고 노력만 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전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꿈속에서 예수님이 세번째로 찾아오셔서 냄새나는 거지의 모습으로 문을 두두린다면 지금 내 속사람의 모습으로 과연 문을 열어드릴지 닫을지 솔직히 겁이 납니다. 이성을 가진 현실에서는 얼마든지 내 속사람을 조작할 수 있으나 꿈은 내 속사람이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에 어찌할지 몹시 걱정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오늘도 기도합니다.

내 속사람을 제발 조작하지 말고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떳떳한 속사람으로 당당하게 영접하는 내 영이 되기를....

부자와 젊은 관원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모두 노력하길 바랍니다. 이들보다 낫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저 천국문은 언감생심 그림의 떡일 것이며, 나름대로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 어설프게나마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은 세상을 확실히 즐기지도 못하고 억울한 모습으로 주님으로부터 이름도 불리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게 억울하면 확실히 주님께 나아갑시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같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할 엄청난 기회를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장 부러워합니다.

이미 멸망당한 그 영혼들에게 그런 기회는 결코 다시는 찾아오지 않거든요.  

지금 여러분이 지옥에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지옥에 가서 후회할 걸 상상해 보십시오..

지옥에 가서 후회할 일을 지금 후회하지 않게 주님의 기준에 맡게 복음의 말씀대로 당당하게 살아보길 간절히 권면합니다.

 

인천방주교회성도-랑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