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Joyfule 2014. 12. 12. 10:55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고전 12:8)

 

 

이 시간에는 고전 12장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에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합니다. 이 내용을 몇 가지 방향에서 살펴본다면?


1. 이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 이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주시는 돕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는 설교자도 있고 신학자 교사 선지자 사도 예언자 등이 있습니다. 이 은사의 도움을 받아서 말씀을 전할 때 그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2.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은 어떻게 다른가?


클린턴이라는 학자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은 주어진 상황에서 성령의 마음을 알고 그 상황, 사실, 진리 및 상황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실과 진리의 적용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어떤 능력을 말한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의 안정과 성장에 필요한 지식, 생각들을 알아내고 그것들을 모으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 말씀 들으니 무슨 말인지 감이 잘 오지 않죠? 학문적으로 말하면 알아 듣기도 어렵고 알아 듣는다 해도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간략히 말하면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설교나 예언 등을 수행할 때 그 말씀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의 지혜로서 말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말씀의 지식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욱 확실히 풍성하게 받아서 전하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전해야 할 내용이 지식이라면 전하는 방법은 지혜입니다. 복음 전도에 성령의 도우심이 다각도로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3. 지혜의 은사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어떻게 다른가?


지혜의 은사는 기도하면 누구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건 그냥 지혜나 지식이 아니고 말씀의 지혜, 말씀의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은 설교나 전도에 관계되는 특수한 은사입니다. 일반 성도도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도우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 사역자에게는 더욱 특별히 임하는 은사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보세요. 회중 앞에 가르치시다가, 자세한 것은 제자들에게만 따로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것은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 세 사람만 골라서 가르치시거나 체험시키셨습니다. 모두 주님이 가르치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회중과 12제자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제자와 수제자가 어찌 똑같은 수 있겠습니까? 


4. 이 두 가지 은사를 받으면 말씀에 완전해지는가?


큰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상의 설교자는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확증된 말씀 하나 제대로 깨닫는데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 하나 확실히 깨닫는데 1,45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유대인들을 볼 때 1,450년이 지난 후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당돌하게 나는 교회의 가르침은 필요 없고 혼자서 하나님께 받아서 양식을 먹고 전하겠다고 한다면 일생 수고해도 초보를 면치 못하거나 비뚤어진 이단의 사상을 취하고 말 것입니다.


어떤 누구도 하나님께서 성경과 역사적 교회를 통해서 축적시켜 주신 교리를 외면하고 스스로 계시 받기를 원한다면 그 어리석음과 교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위험한 것이고 이단적인 생각입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라 해서 성경을 대신할 만큼의 그런 은사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독교 교리를 사람이 만들었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교리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수많은 종들을 시켜서 성경을 연구하고 삶에서 확증하고 수없는 토론의 과정을 거쳐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기본교리만큼은 흔들 수 없습니다. 엡3:5에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다른 진리의 터를 닦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씀의 은사를 가졌으니 새로운 성경, 새로운 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한 자요 이단이나 할 수 있는 주장입니다.

  
5. 이 말씀의 은사와 설교와 어떻게 다른가?


두 가지는 상당한 관련을 가지고 있지만 명백히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의 말씀은 설교요, 지식의 말씀은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 이유로 복음은 그 자체가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체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라고 주장합니다.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복음전도 자체를 말씀의 은사로 보는 것은 억지스러운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이 은사는 복음 자체가 아니라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돕는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사들은 전후문맥상 성령의 나타남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은사입니다. 고전 12장에 나오는 9가지 은사들은 모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즉흥성, 일시성, 상황성이 강한 은사들입니다. 그러니까 말씀 전파에 도움이 되도록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영감성 있는 은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문이 높고 복음을 잘 배워 안다고 다 된 것 아닙니다. 더 잘 이해하고 더 잘 전할 수 있도록 이 은사를 항상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바리새인들의 여러 가지 올무를 놓아 시험을 걸려고 하지만 그 순간순간 얼마나 지혜롭게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21:15) 하셨습니다. 핍박을 받아 끌려가도 그때 대답할 말씀의 은사를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성령의 은사 받아 말씀할 때 아무도 그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6. 이 은사를 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지혜의 말씀이 필요한 이유는 듣는 회중의 수준이나 그들의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에게는 어린이에 맞게 지식층은 지식층에, 특수층은 특수층에 맞게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설교는 목회자들 모아놓고 하는 것이 쉽습니다. 그것이 어려울 것 같아도 가장 쉽습니다. 전하는 자나 듣는 자의 코드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평소에 공부하던 그대로 전해도 다 받아들입니다.

 

반면 성경의 배경도 모르고 신학적인 기본이 안 된 사람들이 자기 말이 옳다고 뻑뻑하게 우기면 참 어렵습니다. 특히 불신자들, 이방종교인들, 세상 철학자들에게 전하려고 할 때가 가장 어렵습니다. 땅의 논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하늘의 진리를 말하려고 하니 안 그렇겠습니까? 전해야 할 복음의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전하느냐 그것이 과제입니다. 그 때는 대상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뿐 아니라 준비하고 엎드려 기도 많이 해서 이렇게 전하면 되겠구나 이거다 하는 말씀을 받아서 전해야 합니다. 적당히 그들 비위 맞추며 전도하면  실패요 자신까지 오해 받게 됩니다.

 

혹은 영적진리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3:12에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비유를 많이 활용하셨습니다. 비유나 예화도 잘 사용하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신앙이 어릴수록 비유나 예화가 많이 필요합니다.


혹은 예언사역이나 치유사역할 때 사용법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같은 말씀도, 같은 예언도 지혜로서 잘 전할 때 부작용이 나지 않고 좋은 결실을 맺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식의 말씀 역시 복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가 첫 목회를 할 때 후두염에 걸려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 되어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걱정이 많으시군요.”, “예, 걱정이 많습니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십니까?”, “설교 걱정이지요. 주일설교, 주중설교, 이런설교, 저런설교, 설교, 설교, 설교,,, 그 많은 설교를 어떻게 감당할지 자나 깨나 걱정입니다.”, “목사님, 설교 준비하는 일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그때 노만 빈센트 필 박사가 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설교를 생각하면 한평생 설교를 어찌하나? 라는 생각에 눌리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새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집니다.

 

7. 그럼 이 은사들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먼저 필요할 때 주십니다. 내가 신령해서가 아닙니다. 나의 신령함이 부족해도 필요할 때 주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 다음에는 겸손할 때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구요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의지할 때 주십니다. 그냥 기도만 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준비하고 전할 때 많이 주어집니다.


본문을 읽고 또 읽고, 전후문맥과, 원어적인 부분, 배경적인 부분, 주석적인 부분 등을 살펴가며 본문의 의미를 먼저 잘 파악하면서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성령의 도우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좋은 지식이 열리면 순간순간 메모해야 하고 설교 중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말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떠오르는 샛별과 같아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할수록 더 밝게 열려집니다.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어제 말씀보다 오늘 말씀이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묵상하면 할수록 설교문이 더 완성적입니다. 그래서 벧후1:19에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