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나 신뢰라는 말은 비슷한 뜻의 말이다. 그렇지만 언어의 사회적 성향 때문인지 믿음은 종교적인 틀에 박힌 의미로 해석되고 신뢰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익숙한 반면에 신뢰한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 이치와 같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안락한 삶과 생존에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그것들을 더 많이 얻으려고 애쓰는 이유도 그것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돈이 자리 잡고 있다. 돈이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하기에 돈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그렇다면 돈 대신 하나님으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하나님은 현실적인 삶의 조건들을 제공해주는 공급원으로서 돈보다 신뢰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나님을 단지 종교적인 의미의 절대자로 받아들여진 탓인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돈을 신뢰하게 된다.
교회에 오면 부자가 되며 부유한 삶을 원하기에 모든 사람들의 기도제목에서 빠지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천국에 가면 모를까 이 땅에서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주신다고 믿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면 돈을 주고 사야한다. 물론 그 돈을 공급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이지만 우리는 직업과 노동을 통해 돈을 얻고 있기에 그 말이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개념은 흐릿하고 모호한 반면 돈이 주는 역할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당장 배고픈 현상을 해결하려면 하나님 없이 돈만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이 의식주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우리의 신뢰를 독차지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종교적인 영역에서 존재할 뿐 일상의 삶에서 그분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실감하게 하라.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생사의 외줄을 타는 군인들이 하나님을 만날 확률은 높아진다. 고성능의 무기를 지니고 수적으로 더 많은 병력으로 전투를 치루더라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일상으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생과 사를 가르는 길목에는 막강한 전투력과 전우의 지켜줌보다 불확실성이 더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발생해서 목숨을 잃게 되거나 부상을 입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절대자인 하나님을 찾고 부르기에 그분을 만나고 도우심을 체험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지만 안락하고 평안한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절대 절명의 위험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는 일이 현저하게 적어진다. 그래서 자녀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경험을 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깨달을 수도 없다. 그래서 절대파워를 지닌 돈이 하나님을 제치고 이 세상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유명한 외국의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와서 큰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젊은 목회자와 배운 것은 없지만 고단한 삶의 경험으로 흰머리의 노인 중에서 누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가 견고할 것인가? 믿음은 개인적인 일이므로 외적인 조건들로 가늠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오랜 삶의 역경을 경험한 노인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더 견고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믿음은 관찰과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는 정신적인 영역이기에 많은 학식이 대신하지 못한다. 믿음이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남의 빈도와 깊이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청년들은 청년부나 대학부 시절에 열정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봉사를 하지만 군에 다녀오거나 회사에 취직해서 환경이 바뀌면 신앙의 열정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된다. 한때는 교회나 선교단체의 분위기에 감정이 고조되어 열심을 내었지만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신뢰가 두텁게 형성되지 않았기에 시간이 자나면 점차 사그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그 자리를 자연스레 돈이 차지하게 된다. 돈은 정신적인 영역이 아니라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현실세계에서 막강한 파워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경험이 많고 깊을수록 신앙이 견고해져서 신뢰하는 마음이 튼튼해진 사람만이 돈이 주는 세상의 유혹에서 이겨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자녀들에게 돈보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만들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기회를 많이 겪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 방법만이 돈을 제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되는 유일한 길이다.
돈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경험을 만들어주라.
자녀가 공부하는 학생의 신분이라면 초미의 관심사는 성적일 것이다. 좋은 성적은 명문의 상급학교 진학을 보장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는 토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성적이 형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시절의 탁월한 학습능력은 자녀가 간절히 소원하는 바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막대한 사교육비를 마다하지 않으면 자녀들도 이른 새벽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책과 씨름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학생들이 경쟁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기 때문에 성적이 오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에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믿음이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필자는 같은 동네에 살았으므로 하교 길을 동행하곤 했다. 그때는 수업이 모두 끝나도 도시락을 2개씩 싸가지고 다니며 자율적으로 밤 10시까지 자습하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밤늦은 시간에 버스에서 내려서 교회에 가서 잠시 기도하고 집에 돌아갔다. 그래서 필자도 두어 번 교회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헤어진 그 친구는 최근에 고급관료의 자리에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어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탁월한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승승장구하였던 것이 견고한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참에 필자의 경험을 말해보겠다.
필자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소원하던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원치 않았지만 등록금이 저렴한 지방의 국립대학에 들어간 관계로 대학에 들어간 후에 공부와는 손을 놓았다. 물론 대학 성적은 형편없었다. 그러다가 4학년 무렵에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쉬었던 머리는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R.O.T.C. 출신 장교로 군에 입대하고 비교적 자율시간이 많은 자대에서 근무하여 틈나는 대로 공부를 계속했다. 군을 제대할 무렵에는 영어회화를 비롯해서 생활일본어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외국인회사나 무역회사에 취직할만한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공부하는 동안 하나님이 지혜를 많이 주셔서 탁월한 집중력을 가지고 공부하였음이다.
그때는 눈을 감으면 페이지 속의 내용이 훤히 보일 정도로 강도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며 공부하였다. 지금의 필자가 많은 원고를 집필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어려운 영역의 사역을 지탱하는 능력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에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쉬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집중력을 가지고 공부하면 생산성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부모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학생일 것이고 탁월한 성적으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소원을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는 지혜의 신인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셈이다. 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지혜와 명철함을 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고 하는 습관을 기도도록 하라.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오래지 않아 집중력이 높아지고 창의력이 샘솟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성적보다 더 많은 선물을 가지고 살게 되지 않겠는가?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인생 최대의 역경을 맞닥뜨린다. 경기가 활황인 8,90년대에도 연봉이나 근무조건이 탁월한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지만 끝이 없는 불황속에서 젊은이의 앞날이 불투명한 시대로 들어섰다. 선진국이 경험하는 높은 실업률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생계비도 못 미치는 비정규직과 알바를 해서 장년으로 가는 청년들도 속속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공무원이나 교사 등의 정년이 보장된 직업을 얻으려고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대학생의 60%에 이른다. 물론 채용인원으로 치자면 수백 대 일의 치열한 경쟁률이다. 그래서 대학졸업생의 5%만이 소원하는 직장인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가거나 교사, 공무원이 되고 나머지는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이나 임시직,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제공할 풍부한 재정환경을 준비하셨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녀의 직장도 예비하셨음이 틀림없다. 물론 그 직장에서 요구하는 대학성적이나 자격, 성품 등을 갖추어야겠지만, 충분히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면접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는 것이 다반사이다. 어떤 젊은이는 수백 통의 이력서에 면접통보는 몇 번에 불과하고, 가슴 설레는 면접에서조차 합격통지서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하소연을 한다. 준비가 덜되었거나 실력을 못 갖추었다면 아무리 기도하더라도 언감생심일 것이지만 충분한 실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데도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물론 이 같은 처지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겠지만 중요한 것은 본인의 간절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삶의 갈증이 심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고 계시다. 취직을 간절히 바라는 청년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어려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이런 경험이 평생 믿음의 기초가 될 것이다. 가슴 졸이는 취직을 바라는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하나님을 만나고 신뢰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자녀에게 진지하게 알려주기 바란다.
필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는 계속된 삶의 역경이었다. 풋풋한 첫사랑의 이별에 가슴앓이를 거쳐 애잔한 슬픔이 쌓이고 아버님의 사업실패로 인해 재정상황이 급속도로 기울어져 학자금과 용돈을 스스로 벌어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실망스러운 가정형편도 한몫을 했다. 그렇지만 이런 역경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만든 귀한 기회가 되었다니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필자의 가정은 대를 이어오는 불교 가정이었고 식구 중 누구도 교회에 다니지 않았으며 필자는 친구들의 사소한 전도행위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일정도로 부정적이었다. 그렇지만 영어회화를 배우려고 드나들었던 외국인 선교사의 기도모습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술에 대취해서 밤늦게 집에 들어온 날 절망스런 상황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다. 기대하지 않게 기도응답이 오고 화들짝 놀라서 또 다시 기도를 하게 되는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존재감을 깨닫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절대자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스스로 교회를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자녀들이 학생의 처지인데다 아직 어려서 인생의 고난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역경은 하나님을 만나고 신뢰하게 만드는 아주 좋은 학습장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역경을 자연스레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일이다.
얼마 전에는 대전근교의 자연을 찾아 기도와 휴식을 하던 차에 무전여행을 하는 대학생들을 만났다. 과일을 건네주면서 말을 시켜보니, 대학시절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려고 배낭을 둘러메고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전국을 걷고 있는 참이란다.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여러 번 터지는 고통과 모기와 싸우며 노천에서 자야하는 고생이 견디기 힘들겠지만 그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계기가 된다.
필자도 대학시절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한 기억이 새로웠다. 자녀가 방학을 이용해 막노동을 하는 것도 노동의 어려움을 깨닫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고, 할 수 있다면 편의점이나 PC 방 알바를 해보는 것도 좋은 것이다. 힘든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어려움을 직접 겪으면서 피상적으로 해오던 기도에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의지하는 기도로 바뀌게 될 것이다.
또한 그렇게 어렵게 벌어들인 돈을 보람차게 사용하는 마음가짐을 배우게 된다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젊어 고생은 사서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온상 속에서 자란 자녀는 삶의 고단한 현실을 배우기도 어렵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아직 어린 자녀를 고난 속으로 내보내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런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산교육이다. 하나님과의 신뢰는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저절로 쌓이는 것이 아니다. 삶의 폭풍과 지난한 어려움 속에서 갈증을 느끼고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게 되는 것처럼 자녀에게 이런 어려움을 일찍 경험하게 하는 것이 견고한 신뢰와 탄탄한 믿음을 쌓는 척도가 될 것이다.
실패와 좌절 또한 견고한 신뢰의 밑거름이다.
삶의 전투에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지연과 학연으로 얽히고설킨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실패와 좌절 속에서 충격을 받아 상처를 입고 절망하며 몸부림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밤을 새워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원하는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고등학생들은 부지기수이다.
수없이 보낸 이력서가 묵묵부답을 경험한 입사 지원자들 역시 수도 없이 많다. 첫사랑이 결혼의 결실이 이루어지는 일은 참으로 드물다. 대부분은 이별의 아픔으로 중도에 막을 내리게 된다. 나이가 먹을수록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쌓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사람은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되기도 한다. 실패와 좌절에서 얻어지는 빛나는 교훈인 셈이다.
마 5: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성경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을 소유하는 복이 있다고 말한 이유는,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교만한 마음이 낮아지고 대자연의 위력과 거대한 세상 제도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절대자 하나님을 바라고 찾게 되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과학 문명의 금자탑을 세운 현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이성의 탁월함에 자부심을 지나쳐 하나님과 성경을 무시하며 경멸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계기를 만드는 것이 실패와 좌절이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자신의 무능함과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는 순간 비로소 교만과 자만에서 비롯된 무지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을 발견하는 영적인 눈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실패와 좌절의 괴로움을 겪는 것을 곁에서 보는 것처럼 안타깝고 힘들 때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기회를 통해 형식적이나 막연하게 섬기던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견고한 믿음을 갖는 계기가 된다면 인생에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훌륭한 성적으로 명문대학에 들어가거나 소원하는 직장에 입사하는 것이 형통하고 평안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자녀가 실패와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절망할 때 같이 마음을 나누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신앙으로 인도해주어야 한다. 좋은 성적으로 명문학교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많은 인생의 역경이 기다리고 있으며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입사하였다 할지라도 인생이 늘 순탄대로가 아니다. 어쩌면 또 다른 시련과 역경의 문에 들어선 지도 모른다. 돈과 직장, 학교를 의지하는 마음이 부질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또한 이 땅에서의 삶은 유한하고 일시적이며 영원한 천국의 삶을 바라보고 사는 소망을 갖는 것이 참된 지혜라는 것도 어린 시절부터 깨닫게 해주어 할 일이다. 입에 쓴 것이 몸에 좋은 보약이 되듯이 자녀 역시 삶의 실패와 좌절을 통해 하나님과 견고한 신뢰를 형성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같이 불안에 떨고 두려워하기보다 세상을 지으시고 자연을 다스리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녀에게 새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견고하게 신뢰하는 능력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숱한 실패와 역경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고 있다. 막대한 재산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은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에 나가면 돈이 주는 능력을 의지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돈을 믿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 같아도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돈보다 더욱 신뢰하게 되는 계기는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돈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위대한 믿음이 형성되는 것이다. 자녀가 그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자녀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같이 경험할 일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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