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진리는 주님과 사귐을 갖는 회복력이다.

Joyfule 2023. 6. 29. 13:40






    진리는 주님과 사귐을 갖는 회복력이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요일1장8-10절)

 

자신이 어둠에 빠지지 않는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어둠에 간적이 없고 오직 빛 가운데만 있다고 하면 스스로 속는 겁니다.

진리가 그 안에 없다는 것을 자백하는 모양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귐(교제, 섞음)을 통해서 그의 형상으로 끌어올리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성령을 통해 생명의 접속으로 자신에게 까지 끌어올리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바로 이 말씀대로입니다.

다만 이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에 대한 말씀인지

새 언약으로 제2의 성육신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신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신지는 본인의 계시에 따라 읽혀지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 말씀과 사귐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배어들어 체화가 됩니다.

말씀은 성령으로 성령은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이끄십니다.

그로인해 생각이 바뀌고 삶의 방법이 바뀌고,

목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는 것은 진리가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말이 중요한 것은 자신 안에 있는 사고방식화 된 가치관이

얼마나 변했는가의 그 척도가 말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신앙의 종합적인 열매입니다.

내가 진리 안에 있다 진리를 깨달았다 하면서 세속적인 가치를 가지고

세속적인 욕망과 목표를 말하고 있는 것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날마다 빛과 어둠을 왔다 갔다 하는 걸 고백해야 합니다.

영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빛과 어둠의 영역을 예민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둠에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주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빛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 바로 자백입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회개는 한 번이지만 자백은 천번 만번입니다.

찬송가의 가사 대로 곧 회개하는 마음으로... 깨닫고 그 길을 되돌아오는 겁니다.

또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하고 찬송하잖아요?

이런 찬송을 부르는 동안에 저절로 어둠에 있었던 죄를 자백하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죄를 사하시고 생각까지 깨끗하게 하시므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주님께 자신을 자백하며 나아가기만 하면 그 피가 역사하십니다.

그 때에 우리의 죄의식이 없어집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빛과 생명으로 나타나시면

죄의식이 없어지고 깨끗하게 되면 불의를 싫어하게 됩니다.

어둠에 있을 때는 불의가 더 좋았는데 빛 가운데서는 싫어집니다.

죄의식이 없어짐과 동시에 불법과 불의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식이 있으면 주님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모셔 들이지 않으므로 불의와 불법과 하나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된 자는 거룩하게 되고 불의한자는 계속 불의하게 됩니다(계22:11)

거룩한 자는 불의가 싫기 때문에 거룩한 길을 가게 되는 것이고,

불의한자는 불의와 짝꿍이 되었기 때문에 그 길을 계속 가게 됩니다.

 

주님이 빛이면 그와 하나가 된 자도 빛이기 때문에

그 빛이신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성향이 됩니다.

빛이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주 편안하고 좋아야 하는데

그 사이에 껄끄러움이 있는 것은 죄의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빛이 된 사람은 그 빛이 나에게 따지고 책망해도 결국 빛이 좋아집니다.

실컷 당하고도 또 빛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빛들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빛은 계속 거룩한 길을 가게 되어 있고,

어둠은 계속 불의한 길을 가게 되어 있는 겁니다.

불의한 사람들은 빛 가운데에 오면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안 옵니다.

그 쪽 동네가 불의한 자들에게는 더 편해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빛이 우리 속에 비추어져야만 비로소 주와 하나가 된 빛들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빛 가운데 스스로 들어갈 수 없는

어둠이었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백이 필요한 겁니다.

빛 가운데서 주와 사귐이 있을 때에 우리는 기쁨이 있고

그 기쁨이 점점 넘치고 풍성해지므로 사랑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자들의 복입니다.

 

말씀이 임하면 우리가 이중적인 존재임을 뚜렷하게 인식합니다.

한쪽은 죄인인 옛 사람이고 한쪽은 의인인 새 사람(롬8:10)

이 양쪽에 끼어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탄식과 함께 의에 대한 영광이 우리 속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이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진리의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도덕법과 상관이 없이 늘 어둠에 속한

죄성으로 인하여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덕성의 죄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들키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속에 있는 어둠은 나로 인해 죄의식을 느끼도록 합니다.

만일 그 어둠이 없다고 딱 잡아떼면 지금의 일부 정치인들과 같아집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 나아가서 주님과 사귐을 회복하고자 하면 자백을 해야 합니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하고 찬송을 매일 부를 수밖에 없는 한쪽과

또 주님의 그 의로 말미암아 그 영광을 보면서 찬송하고 감사하는 다른 한쪽이

우리에게 항상 병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걸 알아야만 비로소 우리가 신령한 신앙생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다 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됨을 회복하므로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믿음이니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보다 더 크심이라(요일5:4, 4:4)하는 말씀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날마다 죽임을 당하고 사단의 억압을 당하지만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 겁니다(롬8:37)

우리는 항상 넘어지지만 주 안에서 다시 일어나 이기는 승리입니다.

이런 싸움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주를 더 사모하고 갈급해 하므로 주의 생명이 더 풍성해지고 충만해져서 

드디어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완성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내 속에 죄의식이 있고, 불의를 만지고 있는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지적입니다. 

본질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순간 믿음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가운데

그 빛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들어와서 우리도 빛 가운데서 행하면서

진리 가운데서 남을 사랑하고 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