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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나쁜 연애 - 문혜진

Joyfule 2008. 8. 15. 08:46
13. 문혜진「질 나쁜 연애」 (낭송 문혜진) 2008년 7월 28일 댓글 (5)
 
   
 

 질 나쁜 연애 - 문혜진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
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 가겠어
잠자리 선글라스를 끼고
낡은 오토바이의
바퀴를 갈아 끼우고
제니스 조플린의 머리카락 같은
구름의 일요일을 베고
그의 검고 단단한 등에
얼굴을 묻을 거야

어린 시절 왜 엄마는 나에게
바람도 안 통하는
긴 플레어스커트만 입혔을까?
난 다리가 못생긴 것도 아닌데
회오리바람 속으로
비틀거리며 오토바이를 몰아 가는
불량한 남자가 좋아
머리 아픈 책을
지루한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지껄이지도 않지
오토바이를 태워줘
바다가 펄럭이는
바람 부는 길로
태풍이 이곳을 버리기 전에
검은 구름을 몰고
나와 함께 이곳을 떠나지 않겠어?


 
● 출처 :『질 나쁜 연애』, 민음사 2004

 

 

● 詩. 낭송 - 문혜진 : 1976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1998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질 나쁜 연애』『검은 표범 여인』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함. 

 

 
   

피서철 방에 틀어박혀 낡은 책이나 읽고 있는 영혼이여! 시원한 소나기 같은 시 한 편 보내드립니다. 이 시의 불량한 속삭임처럼 당신도 회오리바람 속으로 떠나고 싶지 않으세요? 질 좋은 음식, 세련된 옷, 고상한 책, 지루한 음악, 엄격한 교육…… 그 숨막히는 일상을 다 벗어던지고 낯선 남자의 오토바이에 매달려 달려보고 싶은 여름날입니다. 바다에 가서 펄떡이는 푸른 심장 하나 낚아와도 좋구요. 매진(邁進)을 위한 탕진(蕩盡)이 아니라 인생을 그냥 써버리는 것,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는 것, 이 경지도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건 아닌 듯해요. 검은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한바탕 쏟아지듯이.

 

2008. 7. 28. 문학집배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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