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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목자상 (The Reformed Pastor)

Joyfule 2018. 11. 21. 08:55
    

  참 목자상 (The Reformed Pastor) 

  리처드 백스터 / 최치남 옮김  

 

제1부 목회자의 자아 성찰


목회자들이 무엇을 자아 성찰해야 하는가? 구원의 은혜의 역사가 영혼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1. 구원의 은혜의 역사가 자신의 영혼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목회자들이 세상의 구주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정작 자신은 마음으로 주님을 무시하고 그로부터 떨어져 나와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어찌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겐 멸망당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멸망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의로 이끄는 자들에게는 별처럼 빛나는 상급을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지만, 이는 목회자들이 먼저 의로 돌아옴을 전제한다. 먼저 믿음 안에 신실히 선다는 조건하에 영광이 주어지는 것이다. 목회를 위해 수고를 많이 할수록 더 큰 영광을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조건은 불변하다.


 많은 목회자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고통의 처소에 가는 일이 없도록 경고하면서 자신들은 서둘러 그리로 달려간다. 많은 설교자들이 청중들에게는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라 촉구하지만 자신들은 지옥에 빠져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길을 제공하고도 자신은 그 길을 거부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구원해 주시겠는가?


 하나님은 누가 목회자라고 해서, 혹은 그가 유능한 설교가라고 해서 그를 무조건 구원하지는 않는다. 목회자가 의롭다 하심과 거룩케 하심을 받은 후에 주님의 사역에 신실하게 임할 때 비로소 그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다. 청중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고, 저들에게 믿으라고 권하는 바를 자신이 먼저 믿고, 저들에게 받아들이도록 권하는 구주를 자신이 먼저 진심으로 받아들이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은 그대가 자신을 사랑하고 그만큼 이웃을 사랑하여 함께 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성화되지 않은 신자가 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성화되지 않은 설교자가 되는 것은 더욱 무서운 일이다. 목회자가 양들에게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과 은혜를 설파할 때, 정작 자신은 이를 거부함으로써 불법을 조장하고 은혜의 부족으로 인해 불행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
 은혜를 얻지 못한 경험 부족의 설교자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한 피조물 중 하나이다.


 중생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설치고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설교자가 된 자들이 많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위험과 재앙에 처해 있다. 제단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제로 성결하게 세움 받았지만, 아직 마음의 헌신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결하게 세움 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를 설파하며, 알지 못하는 성령을 통해 기도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고 그와 교통하여 영광과 행복을 취하라고 권하지만, 자신들은 이를 전혀 알지 못한다. 무정한 설교자가 되어, 자신들이 설파하는 그리스도와 그 은혜를 마음속에 갖고 있지 못하다. 하나님 자신에 관해 알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그를 경배하는 법도 모르고, 속사람을 새롭게 하는 행복의 비결도 배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헛된 광대놀음이나 하고 비몽사몽간에 세월을 보내는 셈이 된다. 만약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통해 저들을 깨우치신다면, 저들은 예전에 자신이 꿈속을 헤매었음을 고백하고, 성화되지 못한 공부와 논쟁보다 진지한 지식과 경험을 얻는 데 더욱 주력하게 될 것이다.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시작과 끝이신 주님을 무시하고 만유 안에 충만하신 그를 찾지 않는 자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다. 깨어진 음절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과 분리되면, 아무 의미가 없다. 하나님과 분리되면 존재의 가치가 없다. 분리는 곧 멸망이다.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방식으로 피조물과 자신을 알고자 하고 사랑하고자 할 때, 피조물과 창조주에 관한 지식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의 무대에서 헛되이 행하고 있다. 그들이 분주함은 정녕 헛된 것이다(시39:5-6)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예전에 우리가 누리던 하나님과의 사귐과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다. 피조물들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를 사랑하며 그와 동화되는 것이 올바른 인간이 행할 본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본연의 상태로 되돌리러 오셨다. 그러므로 가장 성결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일을 가장 충실히 배우는 사람이며, 성결한 사람만이 그 일을 온전히 배우고 익힐 수 있다. 그 안에 있는 즐거움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를 열심히 추구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를 위해서이다.


2. 자신이 은혜의 상태에 있음에 만족하지 말고, 그 은혜가 활기차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보라


 자신이 준비한 설교를 다른 사람 앞에서 외치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 전하라. 자신만을 위해 이 일을 한다 해도, 이는 헛된 수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설교자가 이 일을 행할 때 교회에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설교자가 성결하고 천국에 합당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양들도 그 열매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설교자가 하나님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양들은 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다. 설교자의 마음에 가장 좋은 것이 양들의 귀에 가장 좋은 것이다.


저자의 경험담: 설교자가 마음이 냉랭할 때, 설교도 냉랭해진다. 설교자의 영혼이 혼란할 때, 설교도 혼란해 진다. 그리고 설교를 열심히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 곧 그 영향들을 발견한다. 설교가 냉랭할 때, 저들의 반응도 냉랭했다. 설교 후에 드리는 저들의 기도 소리는 내 설교처럼 냉랭했다.


 설교자는 그리스도의 양들을 양육하는 유모들이다. 설교자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설교를 듣는 양들도 곧 굶주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사랑을 키우지 않는다면, 양들의 사랑도 커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거룩한 염려와 두려움을 버린다면, 설교 안에 그런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설교 내용에 나타나지 않으면, 설교 태도에 나타날 것이다. 자신이 상한 음식을 먹는다면, 예컨대 잘못된 사상이나 헛된 변론에 빠진다면, 말씀을 듣는 자들은 더욱 잘못된 길로 빠질 것이다. 반면에 설교자가 믿음과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면, 회중들에게도 활기가 넘치게 될 것이요, 저들 안에서 동일한 은사들이 더욱 크게 증가할 것이다.


 명심할 점은, 설교자가 의무를 게을리 할 때 자기 혼자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겪게 된다. 그러므로 양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늘 돌보아야 한다. 영적 교만이 자신을 덮치고 자신이 위험한 오류에 빠지며 엉뚱한 발상으로 인해 제자들이 다 떠나버린다면, 돌봐야 하는 교회는 얼마나 큰 상처를 입겠는가? 설교자는 교회의 축복이 되기는커녕 교회의 재앙이 되며, 사람들은 그대의 얼굴도 보기 싫어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판단과 기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 허영과 오류는 교묘하게 침투하며, 늘 화사한 치장을 하고 다가온다. 크나큰 병폐와 배교도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되는 법이다. 어두움의 왕자는 종종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나타나 빛의 자녀들을 다시금 어두움으로 끌어들이려 획책한다. 헌신과 첫사랑은 얼마나 쉽게 병마에 사로잡히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관심은 얼마나 쉽게 사그라지는가? 그러므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조심하라.


설교자의 마음이 냉랭하다면, 어떻게 청중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나아가서 목숨을 걸고 매달리라. 정신을 일깨우는 책을 읽고, 전해야 할 말씀에 관해 깊이 묵상하라. 양들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해, 열정을 갖고 주님의 집에 들어가라. 이런 식으로 그대 안에 은혜의 생활을 유지하여, 강단 위에서 외쳐지는 모든 설교 안에 그것이 드러나게 하라.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왔던 모두가 따뜻한 감동을 안고 돌아갈 수 있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