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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 - 이것은 효과가 있습니다.

Joyfule 2005. 11. 27. 00:55


채찍 - 이것은 효과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스위치블레이드]라는 저서로 명성을 떨친 데이비드 윌커슨은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엄격한 훈계를 인정하는 뜻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아이에게 매질하는 일은 시대가 뒤떨어진 행위입니다. 
그것은 아이의 성장방식에 해로운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범죄하지 못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저들을 때려서 
저들의 본성으로부터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우리 가정에는 다섯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우리들은 각자 큰 못에 매달려 있는 
아버지의 면도용 가죽끝을 귀히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실 때는 
나를 때려주시는 일이 결코 없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이젠 아빠는 내가 순종치 않은 것을 깡그리 잊어버렸을거야."하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데이비드야,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순종에 대한 교훈을 배우자'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를 부르시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당신의 무릎에 울려놓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한대 때리시기도 전에 나는 뱀처럼 몸을 비비꼬면서 
금방 숨이 넘어갈듯이 발악하여 울곤 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큰 소리로 울어봤자 
아버지는 조금도 놀라시거나 당황하시는 기색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벌을 호되게 받았습니다 
다음에 아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나의 완악함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나는 양팔로 아버지를 끌어안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완악하고 어리석으며 불순종하는 어린 아이가 자라서 깽단의 두목이 되는 대신에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된 것은 바로 그때의 훈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진실로 엄한 벌을 주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한 
성경의 권고를 생각한 나머지 이를 삼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노엽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지 잔소리 심하고 우유부단하며 마지못해 하는 훈계를 자극하는 훈계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녀를 노하게 하고 반항케 할 만큼만 때려준다면, 
여러분은 성서적인 훈계를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때려주는 일은 노여움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것은 아이에게 건전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아버지의 권위와 훈계에 대한 순수한 두려움이 아이의 마음을 지배할 때, 
아버지에게는 노여움이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찐저..(히10:31). 
만일 우리의 매질이 그리스도의 매질과 비슷하다면 그것은 공존해야 합니다. 
그것은 확고하고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동시에 가혹함이 있어서는 안되며 동일한 경우, 한번 쯤 관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잘못의 중요성에 비례되어야 합니다. 
손해의 화폐가치는 우리의 표준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일 어떤 아이가 거짓말이나 동물학대와 같은 실제적인 죄를 범했는데도 
아이가 여전히 무관심하고 있다면 그러한 죄는 적절하게 엄중히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크리스찬으로서 그리스도의 훈계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훈계를 필요로 하는 만큼 종종 엄하게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주님의 목적은 우리에게 고통을 덜어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육신(정욕)의 죄를 죽이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가 허리를 굽히고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때, 
주님은 우리에게 위안을 가지고 다가오십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지극히 친절하시다는 것을 느끼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그와 같이 우리들은 대하시므로 
우리도 우리 자녀들을 그와 같이 대해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이 말씀은 다음과 같은 말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훈계하시는 것처럼 저들을 훈계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권면하시는 것처럼 저들을 권면하십시오. 
자신을 허락하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참된 훈계의 엄격함과 친절함을 배우십시오. 
주님을 본받아, 주님이 귀히 쓰시는 도구가 되십시요. 
주님은 그 도구를 통하여 친히 여러분의 자녀를 가르치실 것입니다 
매질이 필요할 때 호되게 매질을 하십시오. 
그러나 신랄한 욕설이나 격정은 절대 금물입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20). 
자연적같이 보일지라도 그것이 목적하는 도덕적인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진노는 진노를 일깨우고 격정은 격정을 낳습니다. 
징벌의 모든 이익은 그것이 우수하고 거룩한 계율을 계속 적용하지 않을 때, 
그리고 죄의 기질이 노출될 때 상실됩니다. 
노여움을 죽게 하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여러분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여러분이 주는 벌을 통하여 
축복이 있을 수도 있는 시기는 바로 그때 뿐인 것입니다.
꼬마 데이비드는 어머니로부터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았음에도 
하루종일 칭얼거리면서 어머니를 괴롭혔습니다. 
데이비드는 지금도 다리미질에 한참 땀을 흘리고 있는 
어머니의 스커트자락을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 혼자 놀 시간이야, 엄마는 바쁘단다."하고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수분쯤 되어서 꼬마는 다시 어머니의 스커트자락을 잡고 칭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어머니는 꼬마의 아랫도리를 가볍게 한번 찰싹 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엄마를 성가시게 굴면 한대 맞는다"는 약속을 이행했습니다. 
데이비드는 도망치듯 나가버렸지만 몇 분이 멀새라 다시 들어와서 
어머니의 스커트를 또 움켜잡았습니다. 
그는 계속 우는 소리를 했습니다.
"데이비드야, 엄마는 바쁘단 말야! 어서 나가 놀지 못하겠니! " 
이번엔 꼬마의 아랫도리를 두번 찰싹하고 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아이를 그렇게 다루는 것은 학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번만이라도 크게 혼내주도록 하렴, 
때려주는 일은 일종의 '시합'이란 말야." 어머니는 이를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데이비드의 손을 잡고 침실로 들어가서 
두 모자는 소위 "시합"이란 것을 진행했습니다. 
그것으로 일은 간단히 끝났습니다. 
다시는 꼬마아이의 칭얼거림이나 우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또 잔소리도 꾸지람도 아랫도리를 찰싹 때려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단 한번 호되게 가하는 매질은 
잔소리와 고함과 언쟁과 위협의 불필요한 시간을 없애 줄 것입니다. 
더우기 이러한 부모의 확고한 입장은 다른 자녀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며 
가정에 권위정신을 심어줄 것입니다. 
에스델 카버는 어느 어머니와, 혼란 가운데 이성을 잃고 있었던 
그녀의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실수로 오랜지 쥬스를 팬케이크 반죽에 쏟았습니다. 
그녀는 반죽이 아까와서 버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오랜지 쥬스가 섞인 팬케이크를 계속 구웠습니다. 
식탁에 식구들이 모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열 다섯살 된 딸아이가 팬케이크를 한 입에 넣고 먹다가 코를 찡그리면서 
"어머! 맛이 이상해요 신 오랜지 맛이나잖아!"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다소 엄격한 어조로 
"의견을 말해주어 고맙구나, 메리야, 이건 너의 엄마가 
이번에 시도해 보는 새 요리법이란다."하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열두살 된 아들이 입에 문 팬케이크를 
다시 포오크에다 내뱉으면서 "정말 오랜지 냄새가 나는 걸요, 
난 팬케이크는 먹지 않을래!"하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얘야,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가 인간답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망아지처럼 행동해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오늘 이 시간도 바로 그러한 시기 중 한 순간이야 
너희들이 오늘 아침 식사 전에 몹시 분별없는 짓들을 했기 때문에 너의 어머니가 
마음이 산란해져서 오랜지쥬스를 팬케이크반죽에 쏟아버리는 실수를 저지르신거다. 
이제 너희들이 이 팬케이크를 먹지 않을 작정이라면 밖에 나가 외식할 수 밖에 없겠다." 
다섯살 된 꼬마아이는 잠자코 앉아서 이 모든 상황을 눈여겨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줄 알았습니다. 
꼬마는 연방 "아, 참 맛있다!"하고 탄성을 지르며 
자기 몫의 팬케이크를 모두 먹어치웠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또한 가정에서의 기본적인 훈계원칙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협력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떤 주어진 일이 하나의 의지(결의)를 가지고 있을 때 
자녀들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만일 저들이 의견이 맞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러한 문제는 개인적으로 한 쪽이 다른 쪽에서 시작한 것을 아이들 앞에서 
도전하기보다는 그것을 찬성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이것이 집안에 권위의 정신을 확립해 줍니다. 
아이들이 한 쪽 부모를 다른 쪽 부모 앞에서 창피를 줄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할 때, 
저들은 그렇게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순종치 아니하는 아이들로 가득찬 가정을 보는 경우, 
우리는 그 가정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반대하거나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또는 아버지의 뜽 뒤에서 
그것을 무효케 하는데 익숙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어머니는 자기가 남편에게 불순종하는 것처럼 
자기 자녀들이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보복을 받아야 합니다.
여자는 자기에게 속해 있지 않은 권위를 갈망했으며 그래서 그녀는 
자기에게 합법적으로 속해 있는 것을 상실해 버립니다. 
여자는 자기의 권위를 변태적인 방법으로 유력하게하고 싶어하는 동안, 
그 권위가 모순없이 유력해야 할 때 그녀는 그것을 차례차례 상실합니다. 
아내는 그녀의 권위가 남편에게 의지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고서는 남편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아이들 앞에서 아버지를 반대하지 않는 것을 
가정의 근본적인 법도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에게 자기의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이 
아이들 앞에서 아내의 권위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 남편의 성결한 의무입니다. 
만일 그가 어떤 심각한 문제로 아내의 반대를 억누를 필요가 있다면 
온유하고 친절한 태도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만일 그가 자기의 권위에 몹시 마음을 쓰고 아내를 무례하고 가혹하게 대한다면,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아내의 마음만이 아닙니다. 
자녀들도 역시 저들을 지배하는 도덕적인 힘이 야고하된 거을 느낄 것입니다. 
만일 아이들 앞에서 저들의 어머니가 어리석다거나 고집이 세다는 비난을 듣는다면
(이로 인하여 그녀는 자녀나 가정부와 동일한 등급으로 격하됨) 
아이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와 어머니의 머리를 공통으로 에워싸고 있는 
신성과 존엄이 즉시 사라질 것입니다. 
훈계를 하는 기본적인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그가 집에 있을 때, 자녀를 돌보고 자녀를 훈계하는 것이 그의 책임입니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 있어서도 아내는 보필자입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훈계할 때, 그러한 경우는 남편이 부재 중이거나 
사소한 문제들을 다루는 등 남편의 권위를 위임받고 행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 보여주는 기본원칙이기 때문에 
자녀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양육되어야 합니다. 
직관적으로, 아이들은 어머니의 권위보다는 아버지의 권위를 더 존중하고, 
아이들은 어머니의 권위보다는 아버지의 권위를 더 존중하고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포기하는 아버지나 그것을 빼앗는 아내는 정확한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올바른 훈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어머니가 즉시 스스로 실행에 옮겨 놓아야 합니다. 
중요한 일은 남편에게 맡겨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아낀다는 생각으로 그러한 일들을 숨겨두어서는 안됩니다. 
아버지는 짐을 짊어져야 합니다. 
그의 짐은 그가 스스로 물러나거나 그만 둘 수 없는 성질의 능력과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그로 하여금 그가 자녀들에게 
무서운 사람이나 폭군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하십시요. 
만일 그가 가정의 중심이 되는 아버지로 산다면, 그는 벌을 주는 슬픔 뿐 아니라 
저들의 좋은 행실의 기쁨을 같이 나누어 갖게 될 것입니다. 
만일 심한 벌이 필요한 경우, 
그 벌은 가능한한 자녀의 자존심을 아껴주는 방향에서 실행되어야 합니다. 
매를 때려주는 일은 형제자매들이 보는 앞에서나 
낯선 사람들 앞에서 실행되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이 남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반발과 적의가 움트기 쉽습니다. 
이는 그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자존심이 손상되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