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최종 승리를 얻는 길

Joyfule 2024. 8. 20. 03:27

 
최종 승리를 얻는 길

< 최종 승리를 얻는 길 >

 본문 마지막 구절인 18절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처럼 영광의 면류관으로 상징된 최종 승리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아무리 사랑이 많고 친한 사람도 나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고 나 자신의 즐거움에 온전히 동참할 수 없다(10절).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라. 물론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라는 삶이 자신의 책임을 망각하라는 삶은 아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오히려 더욱 책임적으로 열심히 땀을 흘리게 된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그 말은 물질을 의지하지 말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평생 내 집 마련에 매달려 가족 간의 대화 한 번 못하고 살다가 막상 내 집을 마련할 때쯤에는 자녀들이 다 커서 내 곁을 떠나버린다. 그때는 큰집도 필요 없게 되고 자녀들이 그렇게 원하던 외식과 여행을 시켜주고 싶어도 곁에 없다. 영화관이나 연주회나 여행을 거의 가지 않고 좋은 일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 모은 돈은 내가 죽자마자 인정사정없이 나를 버린다. 불행한 삶이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은 더 중요하다.

 바르게 벌고 바르게 쓰라.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물질의 주인이 되면서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당당하게 살라. 손을 벌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립을 추구하면 하나님은 자립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과 기회를 허락하신다. 우는 소리를 하면서 더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필요한 것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서라. 남에게 얹혀살려고 하지 않고 책임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야 결국 승리한다.

2.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

 잠언 기자는 정직하지 못한 것을 악한 것으로 여겼는데 결국 정직하지 못한 자의 가정은 망하지만 정직한 자의 가정은 흥한다(11절).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는 바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바르지 않아서 결국 사망의 길이 된다(12절). 사람 앞에서만 정직하고 바르게 보이려는 위선적인 삶은 사망을 낳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보이는 정의로운 삶은 생명을 낳는다.

 사람의 정직함은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정직하게 살다가도 때로는 거짓된 언행이 나온다. 그러면 누가 정직하고 바르게 살 수 있는가? 구원을 위한 회개와 더불어 생활 중의 회개를 앞세우는 사람이다. 결국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는 말은 회개를 앞세워 살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살겠다는 눈물의 다짐이 내포된 것이다. 회개가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죄가 영혼을 막으면 복과 은혜가 막힌다. 그것을 알면서도 죄에서 벗어나기는 너무나 어렵다. 특히 소유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높이려는 탐욕을 정당하게 제도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탐욕의 죄를 이겨내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 게다가 수많은 광고를 통해 사람간의 비교의식을 부채질하면 세상 사람은 돈을 신처럼 숭배하게 된다. 돈은 잘 쓰면 요긴한 것이다. 문제는 돈을 벌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더 가치 있는 사랑과 행복과 천국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탐욕의 죄를 극복해야 돈이 진짜 가치 있게 되고 정직하고 바른 삶이 회복된다.

3. 마음을 잘 다스리라

 기쁘게 웃고 즐겁게 사는 사람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내면에 슬픔과 근심이 있을 수 있다(13절). 늘 웃는 사람에게 슬픈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람의 죄성과 본성과 연약성을 이해하지 못한 미숙한 생각이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보이는 스타도 내면에 아프고 상한 마음을 가진 경우가 많다. 역설적이고 긍정적으로 보면 그런 아프고 상한 마음이 있었기에 더 지혜와 창조성과 스타성이 발달된 것이다.

 웃음을 주는 개그맨과 어릿광대에게 깃든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라. 너무 웃는 삶만 좋아하지 말고 비웃는 삶은 더욱 좋아하지 말라. 사람의 웃음은 일시적이다. 특히 남을 울리면서 누리는 잘못된 웃음은 악하고 천박한 웃음이다. 근심을 지우려는 억지웃음은 슬픔을 치료하지 못하고 그런 웃음 뒤에는 더욱 강도 높은 슬픔이 스토커처럼 따라온다. 영혼의 아픈 종기는 웃음의 가면으로 결코 가려지지 않는다.

 슬픔의 치료제는 웃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써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시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행위를 좌우하고 그 행위로 인한 결과까지 좌우한다. 그래서 마음이 굽은 자는 자신의 행위에 따른 보응을 받고 마음이 선한 자는 자신의 행위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14절). 성공한 기업가는 고객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처럼 상대의 마음을 읽고 그가 원하는 것을 해 주면서 마음을 잘 다스려야 결국 승리한다.

4. 바른 믿음을 갖추라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고 잘 미혹되지만 슬기로운 자는 아무 말이나 믿지 않고 행동을 삼가고 절제한다(15절).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약자와 서러운 자를 살피는 바른 믿음을 가지라. 편안한 침묵보다 침묵의 헌신을 즐기라. 남의 슬픔과 고통을 이용해 자기 잇속 차리는 데 급급하지 말라. 탐욕으로 몸집을 불리지 말고 탐욕이 정의를 이기는 상황을 방치하지 말라. 불의한 세상에서 편안한 침묵을 즐기며 잇속 챙기기에 골몰하면 세상은 더 어두워진다. 나도 살고 남도 사는 바른 믿음을 추구하고 기복적이고 과시적인 믿음은 버리라.

 예전에 9살 어린이가 조기에 수술하면 낫는 림프종 암에 걸렸는데 부모가 하나님의 신유를 믿는다면서 수술을 거부해 아이가 죽었다. 그런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통전적인 시각을 가지라. 성경도 종합적으로 보라.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다고 하셨다(마 9:12). 그 말씀은 병들면 병원과 의사를 찾으라는 말씀이다. 잘못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서 믿음을 배반하는 이단 교주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이다. 바른 믿음을 가져야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사회도 점차 복되게 변화된다.

 교인이 많은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바른 성도가 많아야 한다. 러시아가 공산화될 때 국민의 98%가 예수님을 믿는 러시아 정교회 교인이었다. 르완다에서는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는 가톨릭 교인인 후투족과 투치족이 서로 무섭게 증오하며 전쟁과 학살을 벌였다. 잘못된 믿음으로 인한 비극이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면 내가 속한 사회도 점차 선하고 아름답게 변할 것이다.

 예전에 한 영국인 부흥 강사가 한국 교회를 보고 교인 수는 많지만 말씀대로 사는 성도가 적다고 했다. 특히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는 뜨겁게 경배와 찬양을 드리면서 교회 밖에서는 세상 사람처럼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도록 힘쓰라.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린 후에 세상에서 삶으로 예배를 잘 드리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바른 믿음을 갖춰야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5. 끝날 때까지 인내하라

 노하기를 속히 하면서 성취 지향적으로 사는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행하면서 악한 계교를 꾀하다 결국 미움을 받지만 슬기로운 자는 노하기를 더디 하고 끝날 때까지 인내함으로써 결국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다(17-18절). 시련 중에도 끝까지 인내해야 하나님이 통찰력과 지혜를 주시면서 마침내 길을 열어 주신다.

 일이 안 된다고 금방 낙심하지 말라. 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끝날 때까지 인내하며 나아가라. 꿈과 비전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패배는 결코 패배가 아니다. 왜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 때문이다. 나를 끝까지 사랑하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인내하면 반드시 반전의 역사가 나타난다.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번성 계획은 가인의 아벨 살해로 무산된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아담 부부에게 셋을 주셔서 하나님의 번성 계획이 이어지게 하셨다. 하만 때문에 유대 민족이 멸절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하나님은 준비해 두신 에스더를 통해 민족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번성의 사명을 품은 셋의 비전과 구원의 사명을 품은 에스더의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앞세워 끝까지 인내하라. 문제와 고난 중에도 거룩하고 찬란한 꿈을 포기하지 말라. 꿈이 있으면 쇠하지 않고 기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요셉은 옥중에서도 어릴 때의 꿈과 환상이 실현되는 그날을 확신하면서 끝까지 인내했기에 최종 승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그처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와 세계 선교의 사명이 멋지게 이루어지는 날까지 믿음과 인내로 전진하라. 성도는 땅에 속해 살면서 하늘의 뜻을 이루어 내야 한다.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더욱 성숙하고 정직하고 인내하는 믿음으로 최종 승리를 이루어 내는 복된 심령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