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루왁 - 安貴順
(수필문학 6월호 역대수상자 신작)
막내아들 내외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밤, 오붓하게 가족끼리 티 파티를 열었다. 해외 주재원으로 있는 큰 아들이 귀한 차라며 가져온 ‘커피루왁’으로.
새 며느리를 환영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집안을 말끔히 치우고, 안방에는 부드러운 레드카펫을 깔았다. 조명등도 켜고, 조심스레 원두도 갈고 맑은 물로 차를 우려내는 동안 둥근 상에 예쁜 찻잔을 올렸다. 커피메이커에서 보글보글 김이 피어오르면서 방안에 야릇한 향기가 자욱하다.
수십 년 차를 마시고 살면서도 제대로 된 차 맛을 모른다. 좋은 사람들끼리 마주 앉으면 그냥 분위기로 마시고, 식후에 입가심 정도로 생각하는 게 고작이다. 가끔 다기에 녹차를 우려내어 다도의 분위기에 젖어보지만 번거롭다는 생각뿐이다. 오래 길들여진 인스턴트커피 맛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가보다.
새 애기가 조심스레 차를 따른다. 입맛을 보기 전에 감미로운 향기가 먼저 후각을 자극하여 차 맛이 더욱 기대된다. 유별난 향기도 좋지만 뽀얀 찻잔에 담긴 빛깔이 너무 곱다며 가족들이 탄성을 지른다. 깊은 바다에서 천년을 견디어낸 호박 빛이랄까.
두 손으로 찻잔을 받쳐 들고 음미하려는 순간, 갑자기 “우웩! 똥차?” 도영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나가버린다. 커피 겉봉에 있는 사진과 깨알 같은 설명서를 번역해가면서 외삼촌이 일러주었으니 아이로선 그럴 만도 하다.
커피루왁에 있는 사진을 보면 붉은 열매가 달린 커피나무 가지에 긴 꼬리 사향고양이가 걸터앉았고, 옆에는 원두가 그대로 보이는 똥이 한 무더기 있다. 지금 우리가 마시려는 차가 바로 그 짐승의 똥에서 추출한 것이니 똥차가 맞다. 어른들은 왜 하필 고양이 똥을 먹으며 좋아하는지. 11살 어린 것은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다.
‘루왁’이란 것은 사향고양이 이름으로 인도네시아 몇 섬에서만 자생하는 야생동물이다. 이들은 아예 커피농장에 빌붙어 무전취식하더니 이제는 똥으로 농장주들에게 보은하는 모양이다. 아무리 사람이 영악하기로 서니 어찌 짐승의 똥을 먹을 생각을 했는지. 자료를 찾아보니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좀 게으른 편인데 커피열매를 따고 원두를 추출하려면 상당한 노동을 요구한다. 하여 열매를 먹고 단단한 원두는 그대로 배설하는 고양이 생리를 알고는 똥을 거두어 씻고 볶아서 먹어보니 향기도 맛도 더 좋더라는 얘기다.
똥차라는 선입견으로 약간은 찜찜하던 차에 아이가 소리를 질러버리니 차 맛이 달아나버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는 예술이다. 향기도 좋지만 호박 빛 액체는 가히 매혹적이다. 당나라 임금 현종을 유혹했던 양귀비가 저리 고왔을까. 마시는 차가 아니라 무작정 삼키고 싶은 유혹의 화신이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짐승의 똥이 아니라 신성한 열매를 뱃속에 삼킨 채 혼신을 다해 창조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열매 중에 가장 좋은 것만 골라먹고, 침과 위액을 적당히 버무려 발효되면 커피 속의 아미노산이 분해 되어 향기와 맛을 살린단다. 커피로 보면 짐승의 뱃속에서 과육을 빼앗기고 뼈다귀만 살아남은 꼴이고, 고양이로 보면 자신의 피와 액을 쏟아 부어 혼신을 다하여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실제로 이 루왁 커피는 짐승의 장에서 숙성되면서 사람에게 해로운 카페인은 모두 삭혀내고 순하고 부드러운 맛을 담았으니 커피를 못 마시는 임산부나 환자가 먹어도 탈이 없는 모양이다.
차를 야금야금 마시다보니 커피루왁이야 말로 고양이가 쓰는 수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뒤집어보면 수필가가 쓰는 글이 똥이라는 얘기다. 작가의 오장육부와 뇌관을 관통하여 쏟아내는 배설물이 수필이다. 쓰는 이의 마음이 맑고 투명하다면 그의 글에도 맑은 향기가 날것이요. 이기와 모순으로 가득하면 악취만 풍길 것이다. 사랑 한줌, 욕심 한 사발, 선과 악을 분류할 틈도 없이 무작정 받아들인 소재들이 내 안에서 부대끼며 바글바글 끓다가 수필이란 이름으로 드러나기까지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도 걸린다. 잘 숙성하여 작품이 되는 것도 있지만 마음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우면 뒤엉키어 소통이 안 된다. 그럴 땐 변비증 환자처럼 답답하다.
고양이 똥차라는 루왁은 커피 마니아들의 광적인 사랑을 받는 모양이다. 세계의 유명백화점에서 한 잔에 오 만원, 십만 원에 팔리지만 매물이 없다는 얘기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고양이 똥은 나날이 몸값이 치솟는데 어찌 사람의 정신이 깃든 수필은 매양 푸대접만 받는지. 배설하는 똥마저 사람에게 사랑받는 루왁이 부럽다.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막내 내외도 루왁처럼 좋은 향기를 풍기는 귀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들의 빈 잔에 슬며시 차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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