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연구
7. 성경은 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는가?
사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묘사할 때 처음 이 용어를 듣는 사람은 그렇다면 하나님 어머니도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질문은 성경에서 쓰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묘사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 지 알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가능한 질문이다. 성경이 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묘사하는 지는 성경해석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시물(signfier)과 피지시물(signified)의 임의적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가령 '개'라는 단어는 '개'라는 실물을 지시한다. 여기서 '개'라는 단어는 지시물이 되고, '개'라는 실물은 피지시물이 된다. 그런데 '개'라는 피지시물을 지시하기 위해서 '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약속한다면 '바이'를 가지고 '개'라는 실물을 지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개'라는 피지시물과 '개'라는 지시물(단어)간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 공동체가 그렇게 하기로 임의로 약속하고 사용하는 것 뿐이다. '개'라는 단어와 '개'라는 실물 간에 필연적인 관계가 없고 임의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은 영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는 동일한 실물을 표현하기 위하여 'dog'을 사용하고 독어 공동체는 'Hund'를, 불어 공동체는 'chien'을 사용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것은 형태(form)와 내용(substance), 구조(structure)와 내용(substance), 또는 단어(Word)와 개념(Concept)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임의성이다. 구조와 내용 간의 임의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리용이 전형적인 예를 제시하였다. 조각가가 대리석 덩어리에서 조각품을 조각할 때, 그는 형태도 없고 내적으로 구별되지도 않은 덩어리를 취해서 조각을 하는 과정에서 선명하고 뚜렷한 형태를 준다. 그리하여, 그것이 아폴로나 페가수스의 조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언어 구조와 내용 간의 관계는 임의로 정해지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 언어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은 사회적인 인습들의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즉 지시물과 피지시물 간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 언어의 역사적 진전 과정에서 개념들 또는 피지시물 들은 그 경계선들을 바꾼다. 가령, 'cattle'이라는 단어가 재산 전체를 지시하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후에 네 발 가진 재산을 지시하다가 드디어 소과의 가축을 지시하는 것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고정된 보편개념들(signifieds)도 없고 고정된 보편적인 지시물(signifiers)도 없으므로, 피지시물 자체도 임의적이고 지시물도 임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언어에 있어서의 인습성(conventionality)이다. 언어에 있어서의 인습적인 인의성에서 금방 따라 나오는 질문이 있다. 임의적인 지시물과 피지시물의 선을 그어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무엇이 지시물과 피지시물을 규정하는가? 지시물과 피지시물은 순수하게 관계적인 것으로서 구조 속에서 규정된다.
언어라는 것은 그 개별적인 부분들이 전체와의 관계를 통해서 기능을 발휘하고 가치를 요구하는 하나의 독자적으로 완비된 체계이다. 말하자면, 언어는 하나의 망(a network)이다. 각 용어의 가치는 다른 용어들의 동시적인 현존으로부터만 발생하게 된다. 서양 장기의 기본 단위들은 왕, 여왕, 성장, 기사, 주교, 졸 등이다. 이들의 물리적인 형태와 이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하는 소재는 중요하지 않다. 왕의 크기와 형태가 어떠하든 그것이 다른 것들과 구분될 수 있는 한 문제가 없다. 뿐만 아니라, 성장 둘이 꼭 같을 필요도 없다. 다만 그것들이 성장들이라는 것과 다른 것들과 구별될 수 있으면 족하다. 그래서 장기를 두다가 어떤 조각을 잃어버리면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다른 것들과 혼돈되지 않고 구분만 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왕이냐 주교냐 하는 것은 그 자체의 물리적인 정체(identity)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체계 속에서 발휘하는 서로 다른 기능이 결정하는 것이다. 한 조각의 가치는 그것이 전체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존한다. 언어의 기능도 마찬가지이다.
약간 서론이 길어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 이 의미를 코란에서는 성경의 문맥 가운데서 그 의미를 도출해 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상황 속으로 끌고 들어와서 그 의미를 도출해 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경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묘사할 때 그 의미를 성경에서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여서 성적인 의미로 예수가 하나님과 마리아의 관계 속에서 난 자식이라고 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크리스챤도 예수가 하나님과 마리아의 성 관계 속에서 난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지 않아도 모든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이 성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는 분임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묘사하였을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조직 신학자인 서철원 교수에 의하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의 사용한 이유는 3가지이다. 예수는 본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이 하나님과 갖는 가장 친숙한 관계가 아들로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성령이 특별 역사에 의해 특별한 출생을 표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출생되었다는 것이다. 이 특별한 출생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지목되며, 초자연적인 출생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직접 출생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 격을 표시하기 위해 쓰여졌다. 특히 요한복음 17장 대제사장의 도고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영원한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와의 관계가 단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니라 바로 예수가 하나님과 근본 동체이며 같은 본질인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즉 신적인 존재인 것을 나타내는데 가장 적합한 단어이기 때문에 사용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코란의 반발이 역시 예상이 된다. 코란에서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강한 반발을 보인다.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하니 이는 너희에게 복이 되리라 실로 하나님은 단 한분이시니 그분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음이니라 천지의 삼라만상이 그분의 것이니 보호자로써 충만하시도다.
-4장 니싸-아 171-
하나님이 셋 중의 하나라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이라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한 것을 단념치 않는다면 그들 불신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벌이 가해지리라
-코란 5장 마-이다 76-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부분적으로 코란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코란은 성경이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을 삼신론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코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일신을 말한다. 삼위일체는 신적인 것이라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할 지라도 이 의미를 삼신론으로 생각하는 것은 마호메트가 삼위일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믿으며 예수가 지상사역기간동안 그 분의 종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성경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부분이 명백히 존재한다. 코란은 예수를 분명히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는 원천적으로 합일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코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신, 구약 성경뿐인 것이다.
8.코란에 나타난 예수의 제한적 독특성과 탁월성
코란은 예수를 다른 선지자 위에 놓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예수(메시아)는 마리아 아들로서 선지자일 뿐 이는 이전에 지나간 선지자들과 같음이니라. 그의 어머니는 진실하였으며 그들은 매일 양식을 먹었도다. 우리(하나님)가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전하는가를 보고 그들이 어떻게 배반하는가를 보라.
-코란 5장 마-이다 78-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란은 예수에게 전체적으로 다른 선지자들보다 다른 특성과 탁월성을 부여한다. 코란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한다. 그것도 반복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로 하여금 다른 선지자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놓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기준에서 본다고 한다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던 아담이 그 호칭을 얻기에 더 적합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란에 나타난 예수의 상은 여전히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태어나자 마자 요람에서 말을 하였고 또한 여러 이적을 베풀었다. 이러한 예수에 대한 기사는 아담이나 마호메트에게도 없는 코란에서 매우 독특한 기사이다. 코란에 나타난 예수가 행한 기적은 그가 하나님의 창조능력과 같은 신적인 특권을 행사하도록 허락 받았음을 코란이 의미한다고 논증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1)예수의 '창조'를 나타내는 동사는 칼라카(khalaqa)로서 이 동사는 코란에서 오로지 하나님의 활동에만 사용되는 동사이다. 2)예수가 사용한 물질은 흙인데 바로 그것은 코란에 따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사용한 것이다. 3)예수가 새에게 영혼을 불어 넣었을 때 사용되어진 동사 나화카(nafakha)는 하나님께서 창조 시에 아담에게, 그리고 수태케 하기 위해 마리아에게 숨을 불어넣었을 때 사용된 동사와 같다는 것이다. 4)코란에서 생명을 주시고 죽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코란의 많은 구절들이 있다.
예수는 각종 질병 든 자를 낫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음식으로 제자를 먹인 사건은 예수만이 행한 독특한 사건이다. 마호메트는 이적을 베풀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지자가 맞다는 표징을 보이라는 반복적인 요구가 코란에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이적에 대한 기사는 예수를 독특한 위치에 놓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다음 예수의 위치를 다른 선지자보다 위에 놓도록 만드는 것은 예수로 인해서 신약이 시작되었고 구약을 확증한 사실은 코란에서 마호메트를 제외하고 다른 선지자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코란에서 예수로 인하여 기존의 성경 -구약성경-을 확증하는 것은 마호메트에 의하여 기록된 코란이 기존의 성경-신, 구약 성경-을 확정짓는 것과 비슷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마호메트와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독특한 예수의 사역이 있는데 그것은 마호메트는 기존의 성경의 단순한 계승이었지만 예수는 기존의 하나님의 말씀 중에 금지되었던 몇 가지를 허용하였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코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치 아니한다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에 의하여 코란은 변조되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기존의 몇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하고 말았다.
서 철원 교수에 말을 들어보자.
"성경에서 예수는 자신이 모든 선지자들과 왕과 의인들이 보기 바란 이스라엘의 메시야요 구주임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가 전권의식을 가지고 누구도 할 수 없는 전권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오심이 곧 하나님 나라의 도래, 곧 하나님의 통치가 자기의 인격에서 영적 실재가 되었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설립자 곧 하나님의 통치의 구현자로서 신학사에서는 예수를 나라 자체라고 지목한다. 여기에 그의 전권 주장이 성립한다. 예수의 이 전권 주장은 그의 산상수훈에 남김없이 표출되었다.
『옛 사람 에게 말한 바...너희가 들었으나』(마 5:21,22,27,28,31,32,33,34,38,39,43,44)의 반 명제들에서 그는 옛 율법의 타당성을 지양하지 않았으나 자신을 율법의 완성자로서 밝히므로 자기의 말씀이 토라(Torah, 율법)의 능가함을 밝혔다. 자기의 권위가 모세의 권위보다 더 높다는 주장은 자기 말씀의 영감이 토라의 영감보다 월등하다는 주장을 하게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기존의 하나님의 말씀을 재해석하는 이러한 능력은 인간으로서나 선지자로서가 아니라 그의 독특한 신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볼 예수의 독특성과 탁월성은 예수의 승천과 재림이다. 마호메트도 코란과 하디쓰에서 분명히 그의 인간적인 죽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는 하늘로 승천하였고 최후의 심판 전에 그가 재림한다는 데에 있다. 예수의 재림은 최후의 심판의 전조로서 여겨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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