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란은 과연 진리인가?
‘코란이 진리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무슬림들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나는 단순히 코란이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단지 코란에 있는 내용을 소개하고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슬림들이 코란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코란을 읽어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란을 자세히 읽어 보면 진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순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첫째 코란의 가변성을 살펴보자. 코란은 영원히 불변하는 창조주의 말씀이라고 무슬림들은 믿고 있다. 물론 코란은 ‘알라께서 실로 그 메시지를 계시했으니 알라께서 그것을 보호하리라’(Q15:9 최영길 역)고 말하고 있다. 알라께서 내린 계시인 코란을 알라께서 보호할 것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것이 변할 수 있다 말인가?
“그대의 주님의 말씀이 진리와 정의로 완전함이니 그분의 말씀을 변경할 자 아무도 없노라. 그분은 모든 것을 들으심과 아심으로 충만하시기 때문이라.”(Q6:115 최영길 역) “그대의 주께서 하신 말씀은 진실과 공정에 있어서 완전하다. 누구도 그 말씀을 변하게 할 수 없다. 알라께선 모든 것을 들으시고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Q6:115 김용선 역)
주후 630년 무하마드의 군대가 메카를 점령하고 이 구절을 외우면서 카바 신전의 우상들을 차례로 부수어버렸다고 한다. 코란의 말씀은 완전하기 때문에 절대로 변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코란의 말씀은 변할 수 없다’는 진리를 코란이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무슬림들은 많지 않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아마 어떤 사람이 ‘코란의 말씀은 변할 수 있다’고 했다면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살펴 보자. 이슬람에서 가장 강한 형벌이 가해질 때는 배신했을 때이다. 모든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배신하면 죽여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개종하기를 두려워하고 개종을 했더라도 주변의 다른 무슬림들에게 밝히기를 꺼리는 것이다.
“일단 신앙을 가지고서 배신하는 태도를 취하고 더 불신의 도가 높아지는 자는 이미 후회를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자는 사도(邪道)를 헤매고 있는 구할 수 없는 자이다. 신앙을 버리고 배신자로 죽는 자는, 가령 대지에 넘치고 있는 황금을 몸값으로 바친다 해도 결코 받아 주시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자에게는 고통스런 징벌이 있고 돕는 자는 누구도 없다”(Q3:90-91 김용선 역)라든가 “배신자를 단호하게 처단하고 무덤가에도 서성거리지 말라”(Q9:84)고 하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그런데 코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들이 배신한다 하더라도 알라께서는 너희들과는 관계없이 스스로 충분한 분이시니라. 그러나 그 종들이 배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시느니라. 너희들이 감사함을 느낄 때 그 분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여기시느니라.”(Q39:8 이슬람국제출판국역) 이 구절에서는 이슬람을 배신하는 것을 알라께서 좋아하지 않지만 강제하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슬람 외의 종교를 믿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코란을 통해서 살펴 보자. 지금 어떤 무슬림들에게 물어보더라도 이슬람 외의 종교를 믿으면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물론 코란에 보면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구하는 자는 아무 것도 받아 주시지 않으신다. 그런 자는 내세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Q3:85 김용선 역), “이슬람은 너희를 위한 유일한 종교이며 내가 너희의 주님이거늘 나만을 경배하라”(Q21:92 최영길 역), “알라의 종교는 이슬람뿐이며 이전에 성서를 받은 이들도 달리하지 아니하였으나 그 후 그들에게 그른 지식이 도래하였더라. 알라의 말씀을 불신하는 자 알라의 심판을 곧 받으리라”(Q3:19 최영길 역)고 한다. 다시 말해 이슬람만이 알라께서 인정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코란에는 이와 같은 생각을 뒤집어엎는 구절이 있다. “진실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유대교도, 기독교도, 사비아교도, 누구든지 알라와 최후의 심판 날을 믿고 좋은 일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의 주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이며 두려움도 없고 슬픔도 없을 것이다.”(Q2:62 김용선 역)
이 구절은 분명히 기독교인들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과도 모순되는 구절이 있다.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써 택하지 말라 그들은 서로가 친구들이라. 그들에게로 향하는 너희가 있다면 그는 그 무리의 일원이거늘 알라께서는 우매한 백성들을 인도하지 아니하시니라.”(Q5:51 최영길 역)
진리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위의 구절들은 도대체 기독교인들을 구원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혼동된다. 우리의 판단을 흔들어 놓는 것들은 이 뿐만이 아니다. 술을 마시는 일은 분명히 사단의 소행이라고 했는데(Q5:90) 예배드리지 않을 때는 마셔도 된다(Q4:43)고 하며 천국에서는 술을 마음껏 마신다(Q76:15)고도 한다. 또한 간음하지 말라(Q17:32)고 하고 노예나 전쟁 포로(오른손이 소유하는 것)가 된 여자들에게는 남편이 있더라도 그녀를 아내로 취해도 되며 매춘도 허용(Q4:24)하고 있다. 남편 있는 여자를 아내로 취하는 것은 간음이 아니라는 말인가.
또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해 놓고(Q45:7) 거짓말로 맹세를 했을지라도 진심으로 한 것이 아니면 책망하지 않으신다(Q2:225)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알라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을 먼저 창조했다(Q41:9~12)고 주장하다가 하늘을 먼저 창조했다(Q79:27~32)고도 하고 하늘의 하루는 땅의 천년에 해당한다고 했었는데(Q32:5) 하늘의 하루는 5만 년에 해당한다(Q70:4)고도 한다. 또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Q2:256)고 하다가 나중에는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는 죽이라(Q8:12, Q9:5)고 하니 어찌 혼동이 없겠는가?
이런 모순들이 너무 많으니 자연히 질문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쇄도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궁해지니 알라께서는 ‘질문 금지령’을 내리셨다고 한다. “믿는 사람들이여. 여러 가지의 일을 물어서는 안 된다. 너무 분명히 알고 보면 오히려 해가 될 것도 있다.”(Q5:101)
그러나 원래 의심이란 강제로 막을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결국 무하마드는 코란의 모순을 해결할 최후의 해결책을 교리화해서 발표한다. 그것은 처음 계시와 나중 계시가 상호모순이 될 경우에는 나중 계시에 의해서 이전 계시는 자동으로 취소된다는 것이다.(Q2:106, Q5:15) 이것을 이슬람의 ‘만수크(Mansukh) 교리’라고 한다.
곧 많은 무슬림들은 만수크 교리에 의해 이미 취소된 코란의 평화로운 구절들만 믿고 있는 것이며, 무슬림 학자들은 취소된 코란의 평화로운 구절들을 이슬람 포교를 위해 의도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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