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국어 능통, 근데 글쓰기 장애 있다오”
‘쿼크’ 발견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머리 겔만 박사
어릴때 글쓰면 아버지에 혼나 주눅들어…
새·동전·진화론 등 관심은 참 다양했어요
‘물리학 천재’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같았다. 백발의 곱슬머리에 깐깐해 보이는 뿔테 안경. 구부정한 어깨엔 힘이 들어가 있었고, 꽉 채워진 양복 단추를 끝까지 풀지 않았다.
196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머리 겔만(77) 박사. ‘연세노벨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숙소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두 번이나 퇴짜를 놓은 후에야 간신히 인터뷰를 허락했다.
‘20세기의 멘델레예프(원소 주기율의 이론을 발표한 제정 러시아의 화학자)’라 불리는 겔만은 ‘쿼크’라는 물질의 기본 입자를 창안한 인물이다. 이전까지 근본입자로 알려진 소립자보다 더 미세한 입자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그의 연구 성과였다. 그는 “원자의 종류보다 훨씬 더 많은 소립자들이 모여 이뤄내는 이 세계의 다양성에 호기심을 느껴 이 분야를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영민했다. 14세 때 고등학교를 마쳤고, 15세에 예일대에 입학한 뒤 21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5세에 이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어린 시절, 꿈이 많았습니다. 날아다니는 새, 동전, 진화론, 역사… 관심이 참 다양했어요.” 그의 어릴 때 꿈 중 하나가 언어학자다. 지금 그는 9개 국어에 능통할 정도로 언어감각이 뛰어나다.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수백 개 언어에 조금씩은 관심이 있어요. 하지만 잘하진 못해요. 여기 있는 웨이터보다 못할걸요(웃음).” 뜻밖에도 그는 “물리학은 내 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물리학자가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물리학 팬이셨습니다. 특히 아인슈타인 이론에 관심이 많으셨죠. 전문 서적을 많이 읽으셨을 정도예요.”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그는 “음… 분야마다 다르다”라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는 가령 투자 같은 건 전혀 못하죠(웃음). 내가 가진 능력 중 하나는 ‘관계를 맺는 것’이에요. 꾸준히 연구하고 관찰해서 패턴을 발견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론엔 강하지만, 실험을 하면 꼭 망가져요.”
천재에게도 좌절은 있었단다. 그는 “예일대를 졸업했을 때 여기저기 원서를 넣었는데 프린스턴대학, 하버드대, 예일대 모두가 거절했다”며 “자살까지 생각했었다”고 했다. “때마침 MIT에서 조교로 일해달라고 요청이 와서, 일단 거길 가보고 나서 자살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결심했지요. 그게 내 인생 최초의 실패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실패가 아니었어요.”
이 괴팍한 천재는 아이러니하게도 학자에게 치명적인 ‘글쓰기 장애’를 가지고 있다. 예일대 졸업논문을 제대로 제출하지 못해 대학원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고, 노벨상 수상 기념집에 강연록을 제출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언어감각이 탁월한 그가 왜 글쓰기엔 약할까. 그는 “어렸을 때 글을 쓰면 아버지가 많이 비판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너무 노벨상… 노벨상… 하면서 상에 대해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를 통해서 ‘황우석 사태’를 알고 있다는 그는 “황우석 박사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도들이 기죽을 필요도 없고 열정이 꺾일 필요도 없다”면서 한국의 젊은 과학도들에게 말했다.
“순수한 열정으로 꾸준히 연구한 끝에 내가 발견한 게 옳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의 희열은 복싱 선수가 챔피언이 됐을 때 느끼는 희열 같은 거죠. 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세요.”
글=허윤희기자 조선일보 2006. 9.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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