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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굼(타르굼)이란 무엇인가?

Joyfule 2022. 12. 9. 11:36



 

 

     탈굼(타르굼)이란 무엇인가?

 

Ⅳ. 타르굼의 특징

 

1. 바벨론 타르굼과 팔레스타인 타르굼의 특징 비교

<바벨론 타르굼, 팔레스타인 타르굼>은 각각 다른 특징을 갖는다.

​전자는 후자에 비해 문자적인 번역에 충실하다.

​후자 중에는 문자적 번역을 한 것도 있지만 미드라쉬적이고 설교적 특성을 갖고 있는 것들도 있다.

​각 타르굼의 특징을 잘 알면 성경을 연구할 때 타르굼을 필요에 따라 잘 활용할 수 있다.

 

1) 바벨론 타르굼 : 성경을 쉽고 명확하게 해석

바벨론 타르굼은 문자적 번역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성경 중 어렵거나 애매한 표현의 명확한 뜻을 알고자 할 때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바벨론 타르굼이 문자적 번역의 성격이 강하다는 말은 팔레스타인 타르굼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뜻이며 실제로 이 타르굼들은 의역에 가깝다. 즉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청중들의 시대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맞게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한 것이다.

랍비들은 바벨론 타르굼의 쉽고 명확한 해석이 성경을 아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들이 예루살렘에 귀환한 후 백성에게 성경을 가르칠 때에 성경과 타르굼을 낭독하던 방식이 회당의 예배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또한 이 타르굼들은 탈무드에서 공식적인 타르굼으로 권위를 인정받았고 주석가들도 많은 곳에서 이 타르굼을 인용했다. 유대인들은 성경의 기초적인 교육 자료로 바벨론 타르굼을 사용했고 랍비 아키바도 초기에 이 타르굼을 성경 연구에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벨론 타르굼은 구약 성경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2) 팔레스타인 타르굼 : 예수님과 사도들이 공유한 성경 해석

팔레스타인 타르굼에 속하는 슈도-요나단 타르굼은 해석적인 내용이 많이 추가되어 그 양이 히브리어 원문의 두 배에 달한다. 학자들 중에는 이 타르굼이 1-2세기부터 기록되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타르굼은 그 시대에 성경과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능통한 학자들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성경 해석과 적용에 대한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학자들은 타르굼이 그 시대 랍비들의 성경 해석인 미드라쉬적인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시대는 바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대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유대 문헌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예수님은 유대인 랍비들이 사용하던 언어와 비유와 가르침의 방식을 많이 사용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타르굼의 해석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해석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신약 성경에서 타르굼과 연결되는 부분들을 찾아볼 수 있다. 계시록 6장에 나오는 일곱 인에 대한 내용은 슈도 요나단 타르굼의 십계명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바울이 모세를 대적한 자들로 말한 ‘얀네와 얌브레’(딤후 3:8)도 이 책의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다. 슈도-요나단 타르굼은 구약 성경의 해석과 적용뿐만 아니라 신약의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과 함께 연구할 가치가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 타르굼이 지닌 특징들

 

1) 하나님을 의인화하는 표현을 피함

타르굼에서 변경된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경의를 보이려는 목적으로 삽입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신체를 가진 존재처럼 행동하시는 것으로 묘사했다. 예를 들면 ‘내가 손을 펴서’(출 9:15)라는 표현이 있다. 타르굼이 무조건 의인화를 피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기 위해 다소 과장된 문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창 3:5네오피티 타르굼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 그것이 나타나
알려졌기 때문이다
창 11:5네오피티 타르굼주님께서 그 도시와 그 탑을 보시려고 내려오셨다
주님의 세키나(현존)의 영광이 그 도시와 그 탑을 보시려고 나타나셨다
창 26:3슈도 요나단 타르굼이 땅에 거주하라.(그러면)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 땅에 거주하라.(그러면) 내 말이 너를 도우리라
출 3:20네오피티 타르굼내가 내 손을 뻗어 이집트 사람들을 칠 것이다
내가 내 벌의 역경을 보내어 이집트 사람들을 죽게 할 것이다
출 15:8슈도 요나단 타르굼당신의 콧숨으로 물이(한쪽으로) 쌓여졌다
당신 앞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물이 겹겹으로 쌓여 변해 있었다

 

타르굼 번역자들은 의인화를 피하기 위해 본문에 ‘메므라’라는 용어를 삽입했다. 타르굼 번역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을 초월한 절대자이다. 따라서 이들은 히브리 성경에 나타나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인동형론적 표현을 극도로 절제하여 사용했다. 하나님과 사람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하기 위한 매개체로 하나님의 ‘메므라’를 삽입했다.

창 3:8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에 대한 육체적 언급을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소리’가 옹켈로스 타르굼에 의해 ‘하나님의 메므라의 소리’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소리는 실제 목소리가 아니라 ‘명령’을 의미한다.

‘메므라’의 삽입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의 역사를 운행 하시는 분이 여호와의 ‘메므라’라는 사상을 만들었다. 옹켈로스 타르굼 창세기에 따르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의 ‘메므라’이다. 히브리어 동사 “아마르(רםא)”에서 파생한 명사 ‘메므라’는 우리말로 ‘말씀’으로 옮길 수 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λογος)” 주석가들은 옹켈로스 타르굼에서 ‘여호와의 메므라’가 단순히 여호와의 ‘말씀’의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요한복음에서 태초에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 ‘로고스’를 ‘메므라’에 대한 그리스어 번역으로까지 주장한다. 여기서 요한의 로고스에 대해 자세히 살필 수는 없으나 타르굼의 번역이 신약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 동시대화

타르굼은 성서를 동시대화 하는 경향이 있다. 타르굼은 기록될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잊혀진 지명을 그 당시 지명으로 전환시켜 이해를 도왔다.

창 10:2
슈도 요나단 타르굼


야벳의 아들은 고멜, 마곡, 메대, 야완, 두발, 메섹, 다라스이다.


야벳의 아들은 고멜, 마곡, 메대, 야완, 두발, 메섹, 다라스이며,
그들이 사는 곳은 프리기아, 게르마니아, 메디아, 마케도니아, 비티니아, 아시아, 그리고 트라스이다.


3)특정 단어, 구문 첨가 혹은 삭제

호세아 1:2-3,6을 보면, 탈굼은 원문에는 없는 새로운 내용을 보충하거나 삭제하기도 한다.

개역개정 호 1:2-3,6탈굼 호 1:2-3,6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2 호세아에게 임한 야훼 말씀의 시작. 그리고 야훼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가라. 우상숭배하는 도시의 주민들에 대하여 예언을 예언하라.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죄를 지었다. 왜냐하면 그 땅의 주민들이 야훼를 섬기는 것으로부터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리고 그는 갔다. 그리고 그들에 관하여 예언했다. “만일 그들이 돌아온다면 그들에게 용서가 주어질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무화과 잎들이 떨어지듯이 그들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악한 일들을 행했다.


6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죄를 지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의 이름을 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라 르히민’이라고 불러라. 왜냐하면 내가 이스라엘 집에 더 이상 자비를 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온다면 그들에게 용서가 주어질 것이다.”

 

2-3절에서 고멜이란 인물의 언급이 사라지고, 6절에는 용서받지 못할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언급된다. 타르굼 호세아 1장에서 고멜의 죄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대치되고, 회개에 따른 용서가 3절에 첨가되고, 6절, 부정문이 긍정문으로 뒤바뀐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은 당시 탈굼 번역자가 하나님의 종이 창녀와 결혼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음란한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이를 금하는 할라카와 전적으로 모순된다. 따라서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을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대체하는 것이다. 여기서 타르굼이란 ‘번역’임과 동시에 ‘해석’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타르굼은 히브리 본문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들에 대한 주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