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서 배우는 돈의 지혜
제1장 마음과 주머니 사이의 진실한 거리 보기
“가장 긴 길은 우리 가슴에서 주머니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유대 격언이 있다. 우리가 삶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삶이 주는 의미를 보지 못한다면 가슴에서 주머니까지 도달할 수 없다. 돈이란 흔히 더러운 대상으로 간주된다. 또한 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은 부끄러워한다. 사람들은 섹스에 관하여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데는 별로 어려워하지 않으면서 예금을 얼마나 하며 월급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아이들도 부모의 수입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돈은 ‘악한 것’이 아니다. 유대인은 돈을 존중한다. 다만 그 돈은 생존의 가능성을 다양화시키고 영적인 공부와 학습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게 하는 부패하지 않은 진짜 돈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돈이 신성한 주제가 될 수 있는가? 어떤 돈이 내세 혹은 천국에서 화폐로 사용될 수 있는가?
잘 차려진 식탁 앞에서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
한 랍비가 연옥과 천국을 방문하도록 허락되었다. 처음에 그는 연옥으로 인도되어 괴로움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들은 고급스러운 은 식기와 사기 그릇에 최고의 음식물이 담겨진 호화로운 연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좀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팔꿈치가 바깥쪽으로 굽어 있어 음식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갈 수 없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랍비는 다시 천국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연옥에서 보았던 똑같은 음식으로 차려진 연회석상과 밖으로 팔이 굳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천국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옆 사람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연옥은 시장이 없는 세계이며, 굽어 있는 팔, 그 단 하나의 어려움도 연회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회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곳이다. 천국은 먹을 수 있는 즐거움 이외에도 음식물을 옆 사람의 입에 넣어줌으로써 연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낭패감을 덜어주는 곳이다. 이렇게 서로를 먹여주는 통찰력을 알아내는 것과 그렇지 못함 사이의 간격은 매우 크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땅을 갈고 돌보는(창세기)’ 임무가 주어지는데 이것은 삶의 질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세계와 정직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계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부를 확장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며, 결핍을 만들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최대의 부를 창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부의 획득은 인간의 요구이며 결핍에 대항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제2장 부를 가로막는 장애물
자기 만족을 위한 시간낭비를 하지 마라
랍비들은 잠언의 “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개미의 방법을 연구하고 배우라!”라는 구절을 해석할 때 개미를 ‘낭비된 일’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즉 개미가 일 년을 살기 위해 필요한 낱알은 두 알이면 족한데 개미들은 불필요한 재산을 모으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유대 전통에는 시간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의 모범답안이 있다. 그것은 공부다. 일단 기본적인 생계와 생리적 욕구, 일에 대한 요구가 충족되면 모든 자유시간은 공부에 헌신되어야 한다. 유대교에서 공부가 의미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토라에 대한 공부이며, 통찰력으로 실재를 인지하고, 타인에 대하여 동정을 느끼고, 우리 자신의 속성을 통하여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 속에서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가치의 공부이다.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일할 때 우리는 ‘비툴 제만’(시간의 낭비, 혹은 공부시간의 낭비)을 산출한다.
진짜 부자의 조건
랍비 메이르는 진실로 부자인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결핍을 야기하지 않으며, 최고의 삶의 질을 얻는 자이며, 책임을 지고 살아가고 시간낭비를 피하고 진실로 필요한 것 이외에는 자연으로부터 생계를 끌어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재산에서 근원하는 ‘내면의 평화’라고 표현했다. 다른 말로 이것은 참으로 부자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처음에 왜 부자가 되려고 했는지를 잊지 않는 순수함을 요구하는 예술이며, 결국 부의 축적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타인의 삶의 질을 증가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어야 한다.
삶에서 우리는 최고가 되기를 요구하고 요구받는다. 이 ‘최고’는 많은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고’라는 요구는 여전하다. 삶에는 환경 속에서 사람과 사물에 대한 최고의 부와 존경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균형은 내면의 평화를 가져오고 시장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고 주변세계를 향상시킨다.
제3장 보이지 않는 돈의 사이클 이해하기
“어리석은 자는 이를 알지 못하노라.
악한 자들은 풀처럼 돋아나고, 못된 자들이 꽃처럼 피어나지만 그들은 영원히 망하게 되리라.” - 시편
유대 전통에 존재하는 윤회론적 접근을 사용하는 랍비는 모든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즉 회귀가 있다고 말한다. 비록 그 순환의 범위가 너무 커서 육안의 경험으로는 원이 아닌 하나의 긴 선으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이 거대한 회귀의 사이클은 불교의 카르마 개념과 비슷하다. 이것은 악한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가까운 미래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좀더 교묘한 해석이다. 따라서 참된 부는 복잡한 과정이며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더 늘어난 회귀 사이클과 관련되고 존재하는 생계와 관련된다.
원시시대 이후 줄곧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힘든 삶과 함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과 번영으로 축복받는 사악한 사람이 있다.’는 역설, 즉 삶의 모순을 푸는 열쇠는 바로 회귀 사이클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참하고 몰상식해 보이는 실재(현실)는 거대한 질서의 한 단계를 일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실이라는 순간적인 스냅사진을 근거로 삶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역동적인 현실(실재) 한가운데서 우리는 진실된 삶의 상황을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 접근법은 확실히 더 긴 영역을 가지는 회귀 사이클에 대한 엄청난 신뢰와 이해를 요구한다.
“왜 내가 그것을 가지지 못하지?” 혹은 “왜 내가 이것을 가지지?”와 같은 질문은 생계의 다양한 세계에 걸쳐서 우리 잠재성의 배분을 고려하는 답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가지는 것’은 긍정적 가치만이 아니며 생계의 다른 차원에서는 심각한 손실을 반영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이 우리가 그것을 효과적으로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유하지 않는 것이 반드시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계의 여러 차원은 자신을 이 물질계에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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