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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이 말한 한국인의 마음 - 엄상익 변호사

Joyfule 2023. 2. 22. 08:36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펄벅이 말한 한국인의 마음



사막을 갔던 적이 있다. 사람을 태우는 낙타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땅에 엎드린 낙타는 지친 것 같아 보였다. 낙타를 일으켜 세우려고 주인이 고삐를 끌어당겨도 낙타는 고개를 흔들면서 싫다고 했다. 주인이 채찍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낙타는 주인이 아무리 맞아도 움직이지 않고 소리치며 울었다. 낙타의 눈 주위가 눈물로 젖어 있는 걸 본 순간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낙타는 인간과 함께 등짐을 지고 사막을 건넜다. 한 걸음 한 걸음 뜨거운 모래사막을 걷는 것이 낙타의 운명이었다. 사막에는 가시가 돋힌 관목들이 기듯이 나 있다. 낙타는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그 가시가 붙은 관목가지를 먹으면서 걷는다고 했다. 한 동영상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묻혀져 가는 하얀 낙타의 뼈를 본 적이 있다. 일생 짐을 지고 걷다가 어느날 푹 쓰러져 죽는 게 낙타의 운명이었다. 니체는 인간의 삶중에는 낙타 같은 그런 인생이 있다고 하기도 했다.

내가 어린 시절 방학이면 강원도의 깊은 산골 마을에 가서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초가집 무쇠 문고리에 서리가 하얗게 얼어붙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후 무렵 장터의 흙길 쪽으로 가면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사꾼들의 모습이 보였다. 빈 달구지를 타고 가면 편할텐데 옆에서 나란히 걷는 모습이었다. 어떤 농부는 땔 장작이 든 지게를 짊어지고 걷기도 했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면서 달구지에 올라타도 농군은 손을 휘저어서 아이들을 쫓았다. 내가 흔히 보았던 광경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까지 서울에도 마차들이 흔했다. 말이 끌고 가는 수레에 마부들이 올라타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은 말 옆에서 말과 함께 걸었다. 허름한 집 창고같은 구석에서 사는 말은 그 가난한 마부 집의 식구였다. 안암동 마부 동네를 지나가면서 맡았던 여물의 냄새가 칠십이 된 지금도 의식 깊은 곳에 남아 있다.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들도 수레를 끄는 짐승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한때 가족이 탄 마차를 끌고 가는 한 마리의 말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마차에 탄 사람들의 입장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치과의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환자가 줄어든다고 했다. 그는 은행 빚까지 얻어 아이들 유학을 보내면서 돈에 허덕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른 치과의사들을 보면 아내가 소개한 환자가 반은 돼.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단 한 명의 환자도 내게 데려온 적이 없어. 그렇다고 서울대를 나온 나를 돌파리 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아. 이가 아픈 사람을 보면 치과의사인 남편생각이 날텐데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 그러면서도 돈은 가져오라고 달달 볶아. 온 가족이 마차에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아내는 나를 채찍질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게다가 우연히 알았는데 십 년이 넘게 같이 일하던 간호사가 진료비를 자기 개인 통장으로 계속 보냈던 거야. 월급을 충분히 주는 데도 횡령을 한 거지.”

그는 사막 가운데서 채찍을 맞고 우는 낙타 같은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와는 정반대의 경우를 본 적도 있다. 신경외과 의사를 남편으로 가진 부인이 소송을 의뢰하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저는 가난한 집 딸이었고 얼굴도 못생겼어요. 남편이 저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 줬다는 것 만으로도 평생 감사해 왔어요. 남편 역시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 힘들게 의학 공부를 했죠. 남편은 천사같이 착해요. 우리 부부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작은 의원을 차렸어요. 남편은 하루종일 수술을 하고 저는 입원한 환자들 밥을 하고 피 묻은 빨래들을 빨았어요. 그렇게 해서 한푼 두푼 돈을 모았는데 그 돈을 다 사기당했어요. 어떤 사람이 이제 큰 병원을 하라고 권하면서 넓은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주겠다고 했어요. 그 사람을 믿고 저축한 돈에 대출까지 얻어줬는데 몽땅 사기를 당한거죠.”

그 부부는 하루아침에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셋집을 전전하면서 입는 옷도 변변치 못했다. 그래도 그 부인은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저는 남편만 있으면 행복해요.”

남편도 아내도 딸들도 모두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생명체는 자기 삶의 짐을 지고 간다. 천구백육십년 늦가을 한국을 방문한 펄벅 여사는 경주부근의 노랗게 물든 들판을 지나다가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 옆에서 소와 함께 걸어가는 걸 봤다. 안내인이 소가 힘들까봐 그렇게 간다고 했다. 펄벅 여사는 그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라고 나중에 글에서 썼다. 우리 한국인의 원형 속에는 이웃뿐 아니라 짐승과도 나누는 따뜻한 정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