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편지 - 최승자

Joyfule 2009. 1. 29. 02:21
      편지 - 최승자 이제는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물의 뒤, 詩集과 커피잔 뒤에도 막막히 누워 있는 그것만 바라봅니다. 정처 없던 것이 자리잡고 머리골 속에서 쓸쓸함이 중력을 갖고 쓸쓸함이 눈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볼 수 있습니다 꽃의 웃음이 한없이 무너지는 것을 밤의 달빛이 무섭게 식은땀 흘리는 것을 굴뚝과 벽, 사람의 그림자 속에도 몰래몰래 내리는 누우런 황폐의 비 그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발바닥까지 어떻게 내 목구멍까지 적시는지를 눈 꼭감아 뒤로 눈이 트일 때까지, 죽음을 향해 시야가 파고들 때까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에서 커가는 이 치명적인 꿈을. 그러면서 나의 늑골도 하염없이 깊어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