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
- 프레슬리(M. W. Pressly)는 말하기를, ‘감리교는 죄인 구원을, 침례교는 중생의 신비를, 루터교는 이신득구를, 모라비안교는 그리스도의 상처를, 희랍 정교는 성령님의 신비를, 로마교는 교회의 보편성을 주장함에 각각 치중함과 같이 칼빈주의자는 항상 하나님 사상에 치중한다’고 하였다.
- 이와 같은 프레슬리의 말은 칼빈주의의 핵심을 한마디로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는 하나님 사상에 치중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높이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 칼빈은 이 위대한 하나님 주권 사상을 성경에서 찾아내었다. 이로 인해 중세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암흑에 싸여 있던 성경은 다시 그 빛을 발하게 되었고, 사실상 전 성경의 최대 표현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 사상도 그 빛을 보게 되었다.
- 1. 하나님의 주권의 의미
- 주권(主權, Sovereignty)은 최고(Super)의 권세(Reign)라는 말이다. 이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독립된 권세이며, 절대적인 권세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주권이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할 때, 이는 인간을 포함하여 이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한 그 최고의 권세, 독립된 권세, 절대적인 권세가 하나님께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11:36)라고 하였다.
- 이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가장 명확하게 표현한 말씀인데,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므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그 만물에 대한 최고의 권세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전능하심으로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행하실 수 있는 독립된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뜻한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그 절대적 권세로 만물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셔서 하나님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야 만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만물은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이다. 그야말로 하나님은 만물에 대하여 전무후무한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씀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
- 이에 대하여 다윗은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29:11-13)라고 고백하였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이란 전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절대적인 자기 지배를 가리키는 사상체계의 술어이다. 이것은 위대하신 하나님 사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전 피조 세계에 완전하고, 절대하신 대권적 주도자이시란 말이다. 이것은 곧 인간이나, 또 다른 어떤 피조물에서 사상 체계를 출발시키지 않고 오직 하나님 자신께로부터 출발시키고, 진행하고, 끝맺는 사상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모든 만물과 권세들을 통치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의미한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과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칼빈(John Calvin)의 “예정론”과 바르트(Karl Barth)의 “하나님의 혁명”에서 매우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은 통치와 지배의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더 정확한 개념 정리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호칭과 관련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말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하나님을 ‘주’와 ‘아버지’로 고백한다. 구약성서는 상대적으로 주 하나님을, 신약성서는 상대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강조한다. 이 하나님의 호칭은 하나님의 주권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속성을 나타낸다. 하나는 주 하나님의 주성(Herrschaft)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하나님의 부성(Vaterschaft)이다. 하나님의 주성은 포괄적인 통치적 기능을 수행하며, 하나님의 부성은 자비로운 포용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분리되지 않으며 상호보완적이다.
1. 모든 피조세계에 대한 통치
하나님의 주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성을 확립하는 것, 곧 모든 만물과 권세들에 대한 통치와 지배를 의미한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은 특정한 영역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와 자연, 곧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성의 확립, 즉 “하나님께 대항하는 모든 권세들에 대한 통치이다.” 그것은 구원론적으로 죄로부터의 해방, 정치사회적 해방, 질병과 운명으로부터의 해방, 자연의 고통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포괄하는 “우주적 구원”을 의미한다(사25:8, 65:17, 시103편). 그러므로 개인의 영혼구원만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개인의 영혼에 제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피조세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만물의 회복을 지향한다(롬8:18~30). 둘째,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된 세계는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해방된 세계,” 곧 우주적 구원이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는 추상적 진리와 비현실적인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된 현실적 세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한다(마6:10).
그러나 통치와 지배로 이해된 하나님의 주권은 한편으로는 신격화된 세상의 모든 절대 권력을 상대화시키고 파괴하는 해방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역설적으로 세상의 절대 권력을 변호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통신학은 하나님을 왕, 지배자, 주와 심판자로, 하나님 나라를 왕국, 나라, 왕의 통치와 왕정과 같은 정치적 은유로 이해했다. 그 결과 교회는 몰트만(Jϋrgen Moltmann)의 지적처럼 전제주의 국가를 지지했고, 지배계층과 연합했고, 사회적 착취 구조를 인정했고, 자연을 착취와 정복의 대상으로 이해했으며, 또한 폭력적인 선교방법으로 피선교국의 문화, 전통, 종교, 영성과 생활양식을 파괴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정치적 개념은 융엘(Eberhard Jϋngel)의 제안처럼 수정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정치적 개념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 통치와 권력의 개념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교정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라라면 진리 안에서 권력이 무엇이며, 진정한 통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왕, 주인, 지배자, 통치와 지배라는 정치적 은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아버지 하나님의 부성과 관련해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2. 고난과 희생을 통한 통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했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마6:9~15). 하나님은 우리의 “아빠 아버지”이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자녀와 상속자”이다(롬8:12~17, 갈4:1~7). 이제 하나님은 왕이나 주인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다. 그것은 단순한 호칭만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질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왕과 백성, 주인과 종(혹은 노예),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주종관계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변화되었다. 그것은 어떤 세계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혁명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주권은 왕이 백성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들을 돌보는 권한과 책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명백하게 나타난 것처럼 통치와 지배가 아니라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 행사된다. “그것은 역사의 근본 법칙이다...그것은 모든 창조, 또한 세계 창조의 마지막 비밀이다...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강력한 힘과 악의 확실한 극복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투쟁하고 고난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상의 위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은 왕적 통치와 지배가 아니며, 그의 나라는 왕이신 하나님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지배하는 왕국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버지’ 하나님이 고난과 희생을 통해서 다스리는 어떤 상태, 정확히 표현하면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인간의 자녀됨(Kindschaf)과 형제됨(Bruderschaft)이 완성된 하나님의 가족공동체(Familia Dei)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실현된 세상, 곧 우주적 구원이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의미이다.
끝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인간을 선택하고 불러내어 공동체를 만들었고(Ekklesia),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제자들에게 위임했다(마10:1~8).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실현하는 일, 곧 구원론적으로 우주적 구원의 완성과 종말론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제자의 삶이다(마10:5~8).
류장현 교수 / 한신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 프레슬리(M. W. Pressly)는 말하기를, ‘감리교는 죄인 구원을, 침례교는 중생의 신비를, 루터교는 이신득구를, 모라비안교는 그리스도의 상처를, 희랍 정교는 성령님의 신비를, 로마교는 교회의 보편성을 주장함에 각각 치중함과 같이 칼빈주의자는 항상 하나님 사상에 치중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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