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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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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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그리스도인의 전인적인 삶
이렇듯 예배가 하나님과 및 이웃과의 관계를 모두 포함하는 ‘전인적인 삶’이라고 할 때, 성경은 이 두 관계를
묶는 공통의 요소로서 '찬양'을 소개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어떻게 ‘찬양’이 전인적인 삶과 연결될 수 있나?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찬양'이 단순히 ‘노래한다’는 의미에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위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찬양이 하나님과 및 이웃과의 관계를
한데 묶는 전인적인 삶의 예배의 공통요소일 수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 히브리서 13장 15절과 에베소서 5장 19절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의 말씀은 찬양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하고 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과연 찬미의 제사는 교회나 어떤 집회에서 드리는 찬양 예배만을 의미하는가?
에베소서 5장 19절은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하는데 마음이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입으로 드리는 노래나 찬송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히브리서의 말씀도 노래하는 것 이상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서로 화답하라
우선 히브리서 13장 15절의 이해를 위해서 에베소서 5장 19절을 앞서 살피면 찬양은 하나님께만 향해 있지
않고 그리스도인들 서로에게도 향해있는 것을 발견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라는 말이 그 증거이다. 여기서 ‘서로
화답하라’는 말씀은 ‘서로 시나 노래에 응하여 대답하라’는 뜻인데 노래로 대답하는 것이야 찬양의 범주이지만 ‘시’로 화답하는 것은 어떤 뜻인가?
'시'로 번역된 말은 '시편' 곧 찬양의 시를 의미한다. 그래서 시로 화답하는 것도 결국 찬양으로 서로에게 말하는 것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면
찬양으로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신령한 노래’로 말하는 것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오페라로 얘기하라는 것인가?
에베소서
5장 19절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는 말씀 뒤에 나온다. 앞뒤 문맥을 이어서 생각할 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연스러운 표현일 수밖에 없다. 성령의 충만함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그분의 온전한 모습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다 나타내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 스스로의 서로를 향한 표현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표현이시다. 자기 기분에 내킨다고 서로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령으로(in
spirit)’가 아니고선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는 것’이며, ‘한 성령’ 안에서 나누는 대화, 권면,
기도, 사귐 등이 없이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 찬양으로 서로 화답함이다.
이는 예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란 말씀과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주께 노래하고
찬송하는 것은 방탕한 삶과 정반대로 생활 전반에서 질서가 서 있어야 가능할 수 있다. 곧 성령이 지배하는 질서 있는 삶이 서로 화답함의 무대인
것이다. 그래서 성령 충만의 열매인 서로 화답함은 교회 예배 중의 찬양을 통해 서로 기쁨을 나누는 협소한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속에서 형제들 서로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상호간에 삶을 나누면서 누리는 기쁨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찬미의 제사
이런 관점에서 히브리서 13장 15절의 ‘찬미의 제사’도 예배에서만의 얘기가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써 고난을 받으신 것이 언급된 후에(히 13:12) 나온 말씀이다. 예수님이 드리신 단번의 제사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은 더 이상 율법의 제사를 드릴 이유가 없어졌다. 유일하게 드릴 수 있는 제사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를 ‘찬양하는 제사’이다.
그래서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는 말씀이 따라 나온 것이다. 이 찬양은 ‘항상’ 드리는 제사이다.
‘항상’이란 말이 ‘찬미의 제사’ 앞에 붙어 나온 것은 이 찬양이 모든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증거이다.
위의 두 구절의 의미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그리스도인의 ‘찬양’이 예배하는 ‘삶 자체’라는 것이다. 찬양은 예배의
부속물이 아니다. 예배와 찬양은 두 개의 이중 개념일 수 없다. 예배와 찬양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의 전인적인 삶을 나타낸 표현인
것이다.
삶에서의 예배와 찬양
이제 우리는 예배와 찬양이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어디에서부터
예배하는 삶을 시작해야 하는가? 먼저 어떤 삶의 모습에서부터 예배를 회복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가장 큰 틀의 답을 주는 곳은
하박국서(書)이다. 하박국 2장 14절과 20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결론이 우리가 찾는 답이다―‘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14절),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20절). 어떤 결론이 이 두
말씀에 담겨있는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
불의가 판치는 세상을 보면서 깊은 회의와 번민 속에 빠져있던 하박국 선지자는(합 1:3-4,13) 하나님의
묵시를 받고 난 후(2:1-3),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는 믿음의 선포를 하며, 자신의 감정과 처해있는 환경을
향해서만 아니라 온 천하에게 ‘잠잠할 것’을 명하며, 궁극적으로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고 고백한다(합
3:17-19). 이 고백은 하박국이 수금에 맞춰 부른 노래였다(합 3:19). 하박국서 전체는 ‘삶의 정황’과 ‘찬양의 노래’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 예배로 드려지는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예배는 상황이 변하여 평안해질 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상황이 여전하다 해도 예배는 모든 삶―내 삶뿐만 아니라 온 땅의 삶―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삶에서 예배가 시작될 수 있는 동기를 찾는다면 그것은 처해있는 어떤 삶의 정황이 아니다. 내 삶 가운데 절대자로 임하여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 예배 시작의 동기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한 자에겐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것에 순복하는 삶이 따른다. 하박국 선지자가 온 천하를
향해 잠잠할 것에 대한 이유로서 ‘여호와는 성전에 계신다’(20절)는 사실을 내세운 배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가 담겨있다. 본래 장막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르실 모든 계시를 선포하는 것이다(출 25:22).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모든 곳에 계실 수 있지만 굳이 ‘성전에 계시니’라고 언급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한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라고 한 것은 정적(靜的)이지 않고, 매우 동적(動的)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시(啓示)를 베푸시는 성전에서
말씀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다. 그 말씀 앞에는 모든 사람이 침묵할 수밖에 없으며 그 분께 순종할 수밖에 없다.
전도서는 이러한 경외의 자세와 그분의 말씀에 순복하는 자세가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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