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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와의 재회 - 김병규

Joyfule 2015. 1. 28. 01:21

 

 

하루살이와의 재회 - 김병규

 

 

하루는 내 테이블 위에 아주 작은 점 같은 것이 보였다. 하얀 종이 위가 아니었다면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맹랑하다 싶었다.
안경을 끼고 자세히 관찰했다. 그건 하루살이였다. 보통의 하루살이는 그래도 좀 큰데 이건 뭐 이런가 싶었다. 그런 꼴로 용케 움직이다니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이상야릇한 상념에 잠겼다. 그게 달포 전 제주도 가는 바다위에서의 비행기 창문에 있던 것과 동류란 것이었다. 하계(下界)를 내려가 보다가 유리창에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하마터면 닦아 버릴 뻔했다. 설마하니 생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이하다 싶어 자세히 보았다. 몸뚱이는 극히 작은 데 날개는 날씬하고 길었다. 어쩌면 연미복처럼 멋졌다. 이놈은 제법 뽐낼 만하다 싶었다.
나는 짐짓 훅 불어 보았다. 그만큼 얕잡아 본 셈이었다. 그러나 놈은 꼼짝도 않았다. 항의라도 하듯 움직이지도 않았다. 놈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또 전후 좌우로 기어다녔다. 아니 신사처럼 점잖게 배회한다고나 할까. 가관이었다.


나는 아래에 펼쳐지는 구름이랑 더러는 섬이랑 바다 위로 둥둥 떠가는 배들에 이젠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 목전에 전개되는 하루살이가 나의 시선을 독점하였다.
내 눈에 비친 배는 하루살이보다 크지도 않을 것 같았으며, 속도에 있어서는 하루살이가 훨씬 빨랐다.
그러나 이놈은 도대체 어쩌자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비행기 속으로 기어든, 아니 날아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허공을 날다가 기상으로 들어갔거나 사람에 붙어 들어갔거나 간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놈이 나보다는 선참자였다. 선참자니까 그렇게 의젓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어디로 다니는가 싶어 살펴보았는데, 창문의 유리 위만 왔다갔다 했다. 다른데는 가지도 않았다. 나 보란 듯이 그런 성도 싶었다. 조그만 창 안에만 왕래하고 있었다. 어쩌면 갇혀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것도 무엇을 짐짓 보여주려고 하는 것같이 여겨졌다. 날 수 있을텐데 날지도 않았다. 기어다니기만 했다. 그게 연민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적어도 연민의 정은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가 갖는 것이다. 내가 진정 대언장어(大言壯語)할 수 있을까.


그도 모처럼 비행기를 탔고, 나도 그랬다. 그나 나나 동승자며 동행자였다. 크게 말하면 이 세상에서의 동반자였다. 그래서 인생을 흔히 부유 인생이라 하며 하루살이 삶이라고 하는지 모른다.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도 나도 기상에서 부유하고 있다.


그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인생인들 마찬가지다. 공연히 우월감을 갖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기내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공항에 내려야만 했다. 나는 하루살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저 빙빙 돌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잘 있거라’라고 이별인사를 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별이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반문하는 듯 했다.


백지 위를 기어 다니는 하루살이가 비행기 창문에 있던 하루살이를 상기하게 했다. 같은 하루살이일 리야 없지만, 우연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떤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이별 인사를 했기로 다른 하루살이에게 라도 이어진 것일까 여겨지기도 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것이, 그렇게 새로운 감명으로 들이닥치는 것이 예사로운 것 같지가 않았다.
그가 의도적으로 내 앞에 나타났을 턱은 없었다. 나도 부유하고 그도 부유하다가 만났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것도 인연인가 싶었다. 꼭 이유를 붙이려는 인간의 습성이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른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원고지 위에 나타난 것이 어찌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까. 글쓰는 허무한 짓을 비아냥거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게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고 빗대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의 인간살이가 문제로 되어 있다고 함을 그 하루살이가 인간이 자기에게 붙인 부당한 명명을 의식하기라도 하듯 나에게 인식시키려고 하는 것같이 보였다.


하루살이는 나중에 내가 쓰고 있는 원고 위를 설치고 다녔다. 종이 위를 횡단해선 모서리 끝까지 오갔다. 더러는 날기도 했다. 뛴다는 표현이 나을지 모르겠다. 가만히 바라보니 더듬이가 두 개 있고, 날개는 제법 길었다. 암만 작다고 날지도 못한다고 핀잔할까봐 훌쩍 날기도 하였다.


한참 있다가 그는 어디로 사라졌다. 이번엔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렸다. 별볼일 없다고 여겼을까. 나는 허전해졌다. 그도 갈 곳이 있을 것이었다. 그것조차 무시한다면 너무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확실히 나에게 무슨 시위나 항의를 할 셈치고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처음에 나는 도대체 어쩌자고 이러느냐의 투로 큰소릴 쳤다. 그 잘못을 깨치게 하기 위하여 다른 하루살이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나를 야유해도 좋다. 그러나 분명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눈에도 잘 보이질 않는 하루살이가 네가 나에겐 그지없이 반가웠으며, 훌쩍 떠난 뒤 되레 네가 내 동반자다 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김병규 경남 고성 출생.(1920~2000)

중앙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졸업. 법학박사. 동아대학교 대학원장. <부산매일신문> 논설위원. 현대수필문학대상 수상. 저서로 <법철학의 근본문제>, <퇴계사상과 정의>, <목탄으로 그린 인생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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