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운의 본질이 하얀 밥그릇 아니라면
동아일보 - 이 은택기자
미국 대통령은 취임 때 왼손을 성경에 얹고 선서를 한다.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한 뒤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라고 끝맺는다.
한국 대통령도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로 시작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로 끝나는 선서를 한다.
선서를 하는 다른 직업도 있다.
간호대 학생들은 임상 실습에 나서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촛불과 휘장이 갖춰진 가운데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라고 맹세한다.
소방관에게는 복무 신조처럼 내려오는 ‘소방관의 기도’가 있다.
1958년 미국 소방관 스모키 린이 쓴 시(詩)에서 비롯됐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방화 현장에서 순직한 고 김철호 소방관의 책상에 이 기도문이 남아 있었다.
선서를 하는 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뛰어넘는 희생과 헌신,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야 그 자리와 업무를 감당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국가 공동체 유지에 없어선 안 되는 일.
그래서 이들의 선서는 때론 비장하고 뭉클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직무 선서는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데 보통 의과대학 본과 3학년 학생들이 임상 실습을 앞두고 한다.
교수와 학부모까지 모여 의사 가운을 입혀 주는
‘화이트 코트 세리머니’를 한 후 청진기를 수여하고 선서문을 읽는다.
청진기를 주는 이유는 환자의 고통과 절망을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제(20일)부터 전국 병원 전공의 중 상당수가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항의하는 의미로
진료를 중단하고 환자 곁을 떠났다.
폐암 앓는 어머니를 둔 아들, 신장 이식 대기자, 제왕절개 날짜를 받아 놓은 임신부 등은
날벼락 같은 수술 연기 통보를 받았다.
환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나는 아직 연락을 못 받았는데,
어디 병원인가요’ 등의 절박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선서를 읊던 의대생과 환자를 외면하고 사직서를 던진 전공의,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7일 의사 집회 중 단상에 오른 내과 1년 차 전공의는 말했다.
“중요한 본질은 내 밥그릇을 위한 것이다.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라고 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밥그릇 선서로 수정돼야 마땅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의사들이 잘했다고 박수 치는 사람이 없다.
국민이 왜 싸늘하고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전공의들은 성찰해야 한다.
병원을 뛰쳐나간 전공의 중에서 혹시 하얀 가운의 본질이
‘하얀 밥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여전히 환자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당신의 가장 강력한 우군, 바로 당신의 의술에 생명을 맡겼던 환자들이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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