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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기독교백년사 - 맺는 말 - 한국민족기독교의 과제와 전망

Joyfule 2007. 1. 6. 00:43

한국민족기독교백년사 - 맺는 말 - 한국민족기독교의 과제와 전망

I. '하나되는 한국교회'로의 희구
II. 토착화작업을 서둘러야
III. 애국 애족의 기독교로
IV. 순교교회로서의 사명 수행


바야흐로 한국민족 기독교의 역사도 100주년을 넘어섰다. 이 마당에서 지난 날을 돌이켜보고 거기에서 분석된 에너지를 발굴함으로 장래를 향한 한국교회 건설의 비죤으로 삼는다면, 새로운 한국 기독교의 역사 창조를 위하여 이에서 더 큰 보람이 없을 것으로 알아 몇 마디를 제언하고자 한다.

I. '하나되는 한국교회'로의 희구

한국교회의 교파의 시작은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라의 두 목사가 내한하여 선교를 시작함으로 비롯되었다. 언더우드 목사는 미국 북장로회 파송으로, 아펜셀라 목사는 미국 북감리교 파송으로 왔지만 그 뒤를 이어 카나다 장로회와 호주 장로회,미국 남장로회 등의 여러 교파의 선교사들이 도래하였다. 그들은 먼저 온 두 선교사에게 우호적으로 협조하였으므로 아무 마찰없이 선교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오직 한국의 기독교화 만을 목표로 하여 일하였다. 하나가 되어서 하는 선교의 성과는 세계선교 역사 상 유례가 없는 놀라움을 낳았다고 찬탄케 할 정도의 교회의 성장과 대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향한 일본 신사참배 문제로 인하여 선교사들 사이에 의견의 구별이 생겼는가 하면 한국의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도 분열이 드러났다. 조국의 해방과 함께 한국교회 기상도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으니 일제하에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한 교회와 거기에 순응한 교회 사이에 치열한 교권 쟁탈전이 야기되면서 드디어 교회는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였고,또한 갖가지의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삼분오열하여 오늘 날 장로회 교파만도 대소 열넷을 헤아릴 정도로 지리멸렬한 양상을 노정하게되었다.

하나의 교파가 타파를 중상 모략하므로 교회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것은 교사하고 한국교회는 선교 본래의 사명을 수행하는데도 일데 장애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또 다시 분열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고도의 자각과 최대의 경각을 배려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냉정한 자아 비판과 폭 넓은 재조정의 태도를 취하면서 교회의 하나되는 길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

주께서는 교회를 향하여 "하나가 되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은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교회 존재의 기본적 요건이 된다. 세계 교회가 한국교회에 대한 지대한 관심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러 한국교회의 하나됨에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와의 우호적 유대를 위하여도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II. 토착화작업을 서둘러야

민족기독교 100년을 지난 한국교회라면 토착화 작업에 그 어떤 성과를 거두었어야 함은 다언을 요치 않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인의 인식은 기독교를 서양인의 종교로만 규정하고 있는 경향이 농후하다. 1세기의 역사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념을 불식하지 못하고 있음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간에 오늘의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간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선교되었는 고로 한국의 기독교가 아는 사이 모르는 사이에 서양화된 모습으로 형성될 수 밖에 없었음을 부인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성숙될 한국기독교로서 하루 속히 튼튼한 기반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기독교 진리 자체의 변경 내지 왜곡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종래의 수입 종교로서의 베일을 벗어버리고 한국민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은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만약에 이러한 시도에 성과가 없다면 한국 기독교는 언제까지라도 기름과 물이 따로 도는 모습이 지속될 뿐으로 민족 복음화에도 성과가 어렵다.

기독교의 토착화한 세월이 해결하는 것이니 좀더 기다려 보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다. 타 종교와의 경합이 날로 심해가고 사이비 종파의 도량이 극에 달하고 있는 현 상태 하에서 어물어물하다가는 한국 기독교는 아주 뒤로 밀려나게 될런지 모른다. 한국 기독교의 토착화 작업은 교회적으로 행동화하는 구체적 방안을 작성하여 진첩에 박차를 기해야 한다. 여기에는 한국교회의 전위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신학자들 사이에 진지한 연구가 있어야 하겠고, 이에 따라 책임있는 방향 제시를 해야만 할 것이다.

III. 애국 애족의 기독교로

한국 기독교는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위하는 종교로 그 성격을 보다 더 뚜렷히 드러내야한다. 사도 바울이 동족을 사랑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한 고백이나 3.1운동의 주동인물인 이승훈장로가 "나라없이 천당에 가면 무얼 해"라고 한 말이나 주기철 목사가 일본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목숨을 바쳐 순국 순교한 사건 등을 통한 겨레 사랑한 충정의 마음을 한국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터득해야 한다.

기독교는 절대로 타계적 종교가 아니다. 초기 한국교회는 주일이 되면 집집마다 국기를 달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한결같이 표명하였다. 협성회나 독립협회의 정치적 활약이 기독교 세력하에 있었고 신민회나 국민회 등이 모두 기독교인 수중에 있었고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의 서명자 33인 중의 16인이 기독교 지도자이었고 또 그중의 11인이 기독교 성직자 즉 목사였다고 한다면 이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한국 기독교인들은 겨레의 확실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하며 나라의 방향 설정에 있어서도 기독교적 이념으로 관철되도록 튼튼하게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면에 강력한 발언을 함으로서 상당한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기는 하나, 실제적인 성과면에 있어서는 뚜렷한 공헌이 없이 공전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당을 통하여 사명을 다하는 길이 트여져 있다. 이제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사회 각 방면에서의 대거 활약과 함께 정계로의 진출을 위해 기독교정당의 구현을 권하고 싶다. 어서 속히 유럽 선진 국가에 있어서의 기독교정당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이의 실현을 서둘러주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IV. 순교교회로서의 사명 수행

'순교의 피는 교회를 자라게 하는 거름'이라고 하는 격언이 있거니와 복음의 씨앗이 순교의 피로 거름을 삼아 뿌려지고 개척되고 성장한 사실은 우리 한국교회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해서 잘못이 아니다.

우리 나라 개신교 도입에 앞선 천주교에 있어서 신유 (1801년),기해(1839년),병인(1866년)등의 대 박해에 즈음하여 약 1만명 가까운 순교자를 냄으로서 전 한국교회를 위한 희생의 역할을 수행하였음은 특기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이렇게 고귀한 '순교자의 얼'은 비록 한국 천주교인에게만 국한한 것이 아니고 온 한국교인을 위한 흠모의 的이 되었고 존경의 획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개신교에 있어서는 토마스(Robert J.Thomas)목사가 1866년 평양 대동강에서 참수 됨으로서 순교자의 효시가 되었고, 1893년에는 한국 민족 최초의 신자인 백홍준 장로가 사교를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옥사함으로 한국인 신도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한국교회 요람기의 박해는 일본 침략자가 아닌 한국인에 의한 양이 배타정책으로 빚어진 결과라 하겠으나 결국 이 희생 순교의 댓가는 한국의 개국과 개교 활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911년 105인사건과 3.1운동 당시의 수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의 흘린 피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억압과 탄압에 항거한,일종 민주운동의 소산으로서의 각성과 자유의 쟁취를 위한 희생이었다. 교회는 독립운동의 발상이 되었고 방방곡곡의 운동 추진의 중심이 되었으며 한민족이 끝가지 싸워 유종의 역할은 기독교가 반일 구국의 민족 족교임을 과시했다고 하는데 성과가 있었다. 교회가 3.1운동을 통하여 체질적으로 타고난 결속력과 통일력을 십분 발휘하였음은 통쾌한 일이었고 이토록 참혹한 식민정책 속에서도 절망을 모르는 신념으로 민족 운동을 영도하였음은 한국교회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데 상당한 플러스가 되었다.

일본 정치 말기의 한국교회는 신사참배 문제로 인하여 영광과 수치를 동시에 드러냈다. 주기철 목사를 비롯한 50여명은 순교함으로 일본의 신사를 우상 종교로 규정하여 교회의 참된 증언자로서의 민족을 대표한 희생 제물이 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교역자들은 신사참배에 굴복하는 범과를 저질러 그 결과와 영향은 너무나 비참하게 나타났다. 기독교가 박해 받는 국가에서 생활하는 신도들은 언제나 기독교 초기의 박해사를 명심해야 하고 참고해야 하고 구감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하나님께 수치를 돌리느냐의 양자 택일로서 하나님 교회의 사활은 결정적으로 좌위되기 때문이다. 해방 후에 무신론이 뚜렷한 공산치하에서 북한의 교회가 숨가쁘게나마 공산주의자의 탄압과 박해를 극복하였음은 다행한 일이었다.

"교회는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그 누구에게나 터 놓고 말할줄 알아야 한다."교회가 진정으로 교회의 구실을 다하고 사명 완수의 실을 거두기 원한다면 교회는 언제자 옳고 그릇됨을 분명히 선언할줄 알아야 하고 또 몸으로 행동할줄 알아야 한다. 반대해야 할 일이 있으면 반대하고 찬성해야 할 일이 있으면 찬성하는 태도가 민족기독교 100년의 현 시점에 처한 한국교회에 너무나 아쉽다. 전환점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할 한국교회는 역사의 방향 제시를 위하여 현실의 시비를 깨우쳐 주어야 하고,또는 역사 속에서의 교회의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서는 순교의 각오와 희생까지 다짐되어야 한다. 교회가 평은 무사주의로 나갈 때 우선 지금은 평안할런지 모르나 후세 역사에 부끄러운 기록이 남는다고 한다면 이에서 더 큰 수치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반면에 교회가 하나님의 정의를 위하여 사명을 완수하다가 핍박을 받는다면 이에서 더 큰 영광이 또 다시 없을 것이다.

앞을 향하여 전진하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의 사명과 책임은 서로 막중하다. 한국의 정치적 운명은 앞으로 얼마동안도 계속하여 민족주의 역사의 흐름을 따라 움직일 도리 밖에 없을 것으로 안다. 정말로 한국 기독교가 민족사 속에서의 중요한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한국교회는 민족으로부터 주어진 과제를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고 순교할 각오로 임하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서만이 '죽어도 사는 자'의 하나님의 축복을 이 민족이 넘치게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