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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기독교백년사 - 제 6 편 민족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협력 2.

Joyfule 2007. 1. 4. 01:14

한국민족기독교백년사 - 제 6 편 민족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협력 2.

제2장 특수분야에서의 일치한 교회활동 1.


1.산업선교

과거 시대에 있어서는 기독교 복음이라 하면 교회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있었으나 급속도로 산업화되고 도시화한 현재 시대에 있어서는 사회구조나 특히 산업구조의 변천으로 공장이나 그 주변 사회에서 특수하게 형성된 산업 사회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달하여 기독교화하는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산업 선교가 우리나라에서 본격화 한 것은 1960년도 부터라 하겠다. 즉 195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전도부에 미국 연합장로회 해외선교부 아시아지역 산업선교 담당자가 내방한 것을 계기로 출발을 보게된 것이다.

영등포에서 조지송 목사에 의하여 산업전도회가 발족함으로 그 효시가 되었다. 1962년에는 인천에서도 오명걸 목사에 의하여 시작이 되었다.

산업선교를 위한 초교파적 기구로는 로마 카톨릭교회까지 포함된 "한국 산업선교 도시협회"가 있으며 그 밖에도 여러 기구가 있다. 이들은 처음에 산업인을 위한 예배,성경 연구, 신앙 훈련 등의 개인적 관심에서 출발을 보았지마는 현재에 있어서는 임금 문제, 작업 조건,노동조합 운동, 산업평화와 인권 침해, 부당해고 등의 갖가지 문제에까지 관심을 확대하여 그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

1974년 한국 노동총연맹 산하에서 2만 여명으로는 근로자 조합을 조직할 당시에 산업선교 활동의 영향을 받은 조합원의 수는 약 1만 6천명이 되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그 힘의 상당한 분포라고 보아 당연하다. 그때 산업선고에 종사한 실무자 수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8개 도시에 프로테스탄트 측이 32명, 카톨릭 측이 14명으로 모두 46명이 일치한 보조로 활약하고 있었다.

2.군종업무

대한민국 국군의 군종 제도는 1950년 12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에 의하여 창설되었다. 이보다 앞서 해군에서는 1948년 11월 이래 해군 참모총장으로 있은 손원일 제독에 의하여 채택되었다. 그후 1950년 11월에 해군 본부에 군목실이 설치되었고 육군은 1950년 12월에, 해병대는 1951년 5월 5일에 공군은 1952년 2월 10일에 각각 설치를 보게 되었다. 1952년 5월 29일에는 국방부 군종실이 설치되므로써 그해 12월에는 육.해.공군.해병대가 합동으로 창립식을 갖었다.

군목은 군 내에서의 종교 도덕에 관하여 지도하고 있으며 예배 인도는 물론이고 성찬 세례식의 거행과 결혼, 장례식 등도 관장하고 있다. 특히 개인적인 상담을 통하여 사상 무장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군목의 중요한 임무이다.

처음에는 군목을 설치하는 문제에 대하여 군 내에서의 반대하는 기세가 상당히 높았으나 6.25 동란과 같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불붙는 전투 속에서 보수나 신분의 보장도 없이 장병들의 몸과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사생을 결단하여 희생함으로 군의 정신무장에 크게 기여하여 드디어 인정을 받게 되었다. 현재 굼고의 총 수는 11개 교파를 망라하여 3백명 정도가 되며 군인 교회의 수는 약 320개소가 된다.

1970년대에 들어와 '전국 신자화운동'이 강력하게 벌어지게 되었고 일시에 세계를 베푸는 세계교회사상 최대의 합동세례식이 전방의 한 부대에서 거행되었음은 실로 장관이었다. 매년 군인 신자의 증가는 4만 내지 5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러한 군인 전도의 후원을 위하여 1972년 4월 11일 교파가 한데 뭉쳐 '전군 신자화 후원회'가 발족되었음은 바람직한 일이었다. 이러한 일에 뜻을 같이하여 그해 재향군인회 군종회가 또한 창설되었다. 3. 경목 제도

1966년 경찰 선교를 위한 경목 제도가 발족되었다. 이 경목 제도는 감리교의 조선일 목사가 1960년부터 부평 경찰전문학교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일방, 각 경찰서의 유치원들을 찾아 다니면서 전도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 그후 1965년 5월에 감리교에서 2명,성결교에서 1명, 합하여 3명의 목사가 서울시경에 파송되어 경찰 선교에 적극적인 참여를 감행한 것이 좋은 성과를 올리게 되어 1966년에는 서울시경과 경상북도 충청남도의 경찰국등에서 각각 정식으로 경목을 위촉하게 되어 경목 제도의 확립을 보게 된 것이다.

1966년 5월 26일에는 서울시 경목위원회가 발족됐고 1968년 1월 4일에는 서울특별시경찰국에 비로소 경목실이 설치됐다. 그리고 1969년 1월 22일 서울 중부경찰서 관내에 경찰교회가 설립되었음은 한국교회 역사의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으로서 기록을 보았다.

경찰 선교사업은 1974년 2월 22일이래 '전경 신자화운동'의 일대 표어를 내걸고 힘쓴 끝에 1975년에 248명,1976년에는 435명의 경찰관을 신자화하는 뚜렷한 성과를 올렸다. 오늘도 약 1천명에 가까운 겨목이 경찰관 정신교양과 개인 상담의 시행등으로 경찰관 선교에 주력하고 있으며 또 한편 유치원들을 위한 위문과 교화 전도를 위하여 보람있는 성과를 올리고 있음은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이라 하겠다.

4. 의료선교

한국기독교인에 의한 의료 선교단체는 1948년 5월에 발족한 대한 기독교여의사회가 그 시초가 된다. 그후 1963년 3월 9일에 한국 농촌 의료봉사회가 조직되었으며 10월 5일는 한국원목협회가 창립되었고 또 11월 20일에는 한미의료선교회의 조직이 되었다. 그리고 1967년 1월 25일에는 대한 기독간호원회가 1969년 1월 10일에는 한국기독교 의료선교회가 그리고 그후 이들 모든 기독교인 단체들은 1973년 3월 2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로 일치 연합하여 의료선교위원회로 발족하였다. 그후에 조직을 본 한국약사회와 기독교 한의사회 등도 모두 이 원회 안에 들어 있다.

여기에 가입한 기독교 의료인들은 모두 의료 봉사를 통하여 복음전도에 힘쓰고 있으며 특히 농촌 순회전도를 통한 성과는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기독교 의료선교위원회에서는 1977년 1월 20일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시에 기독교 의료인 다수를 파견하여 도시와 변두리 주민들을 위해 질병 치료와 전염병 예방 등에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므로 한국교회 선교역사상에 빛나는 업적을 남기게 하였으며 한국 민족의 국위 선양을 위해서도 막대하게 기여하였다.

5. 학원선교

한국의 기독교 학교는 중학교가 95개소,고등학교는 94개소가 있으며 대학교는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숭전대학교,게명대학교 등 4개소가 잇으며 그빡에 10개소의 단과대학과 3개의 전문학교 고등교육기관이 있다. 이들 학교에는 모두 교목 제도가 있어 교목들은 종교교육 행정과 학생들에게 성경을 교수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학원 선교단체로는 각 교단마다 산하 조직체가 있는가 하면 기독학생총연맹과 그리고 한국대학생선교회(CCC),대학생성서읽기회(UBF),한국기독교학생연맹(IVF) 등의 외원 선교단체에 의한 기구의 세가지 유형이 있다. 이들은 직접 간접적으로 학생들의 기독교화를 위해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여 꾸준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6. 방송선교

옛날의 선교 방법은 노방 전도나 부흥전도회 등 대중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하여 왔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보다 더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라디오나 T.V를 통한 설교와 찬송의 전달로 얻어지는 효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선교 목적에 부응하여 우리나라에서는 1954년 12월 15일 기독교방송국(HLKY)의 개국을 보았다. 이 기독교 방송국은 감의도(E.Otto DeCamp),목사에 의하여 설립되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음영위원회 방송 선교사업의 일부로 발족하였으며 한국에 있어서의 민간 방송의 효시가 되었다.

또 하나의 기독교 방송으로는 1956년 12월 23일 화도선(Tom Watson)선교사에 의하여 인천에서 시작된 팀 밋숀(Team Mission)의 극동방송국(HLKX)이 있다. 이는 주로 특수하게 소련을 비롯한 중공과 북괴 지역 등 공산권에 복음을 전달할 목적을 갖고 있다. 1973년 6월30일에는 미국의 F.B.B.C.(Far East Broadcasting Company)에 의하여 제주도에 아시아방송국(HLDA)이 개국되었는데 이 두 방송은 현재 운영체제를 단일화하여 강력한 대공 방송 선교활동으로 열을 뿜고 있음이 특색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