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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기독교백년사 - 제 6 편 민족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협력 3.

Joyfule 2007. 1. 5. 01:11

한국민족기독교백년사 - 제 6 편 민족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협력 3.

제3장 전국 복음화운동의 박차 추진 1.


1.초교파 부흥집회의 성행

한국 기독교인들의 전도 활동이 이 8.15해방의 기회를 새 기점으로 하여 활성화하였음은 당연하였다. 감오게 갇혔던 교회 지도자들의 출옥과 동시에 강제로 출국 당했던 선교사들도 속속 돌아오게 되어 교회 부흥의 열은 크게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들기 시작하였으며 교회마다 새 신자를 채우는데 대성황을 이루었다. 조국은 곧 전면적으로 기독교와 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38선이 그처져 국토가 분단되었고 6.25동란으로 한국교회는 민족적인 대 수난과 함께 처참하리만큼 피해를 입었다. 교회당의 파괴 손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수한 성직자들이 북괴에 의하여 납치 억류되는 슬픔을 만났다.

휴전이 성립되자 한국교회는 폐허를 딛고 잿더미 위에 일어서 움직거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에서 한국교회 재건을 위하여 협력해 주었음은 고마운 일이었다. 더우기 6.25 동란의 체험은 한국 민족으로 하여금 환난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호를 절실히 깨닫게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살길이 없다고 하는 신념을 굳히게 하였다.

한국교회가 6.25동란 이후 총망라하여 재건 운동을 벌이고 있을 그때에, 세계적 대 부흥사들이 속속 내한하여 복음화 전도 운동에 일대 박차를 가해 주었음은 고마운 일이었다.

피얼스(Bob Pierce)목사가 6.25동란 전년에 내한한 것을 필두로 하여 계속 5.6차에 걸쳐 내한하여 대부흥회를 개최함으로 약 2만명의 결신자를 내었음은 상당한 성과였다. 미국이 낳은 세계 최대의 부흥사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는 1952년 12월동란 중에 찾아와 부산에서 집회하였으며 1956년 2월에는 서울에서 대전도집회를 가짐으로서 수 많은 결신자를 내는데 성공하였다.

한국교회 스스로의 전국적 복음화운동이 1964년 대두하였음은 괄목할만한 성과이다. 이는 김활란 박사의 주동하에 6.25동란이후의 교회분열을 저지하고 민족 복음화운동의 정초를 놓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으나 뜻밖에 호응도가 높아 1965년 한해 동안에 2,239회에 달하는 집회에 230만명이 참석하엿으며 무려 4만여명에 결신자를 내게 되었음은 놀랄만한 성과로서 경이의 적이 되었다. 이러한 전도운동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로 더욱 조직화되고 대규모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음은 한국교회사상 뚜렷한 양상의 변화로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빌리 그레함 목사는 1973년 5월에 그의 전도 생애에 있어서 최대의 인파를 기록한 집회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하였다. 초교파적으로 열린 이 전도 대회에 첫날에 40만명이 참석하였고 차차로 참석 수가 늘어나 마지막 날에는 120만명이 모여 들었다. 이 대회의 진행에 대하여는 빌리 그래함 목사 자신도 놀라리만큼 대규모 집회가 되엇으며 세계 교회는 한국교회의 잠재력 있는 너무나 뚜렷한 성장에 감탄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한국의 부흥사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한 77년 민족복음화성회가 1977년 8월 15일에 역시 여의도 광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 대회는 1907년 평양에서 한국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를 통한 부흥이 있은지 70년을 기념하여 1977년에 열렸다는데 의의를 드러내었다.

특히 외국인의 도움이 전혀 없이 한국사람들 자력에 의하여 대규모 집회를 연 것은 괄목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마지막 날에 운집한 참석자는 150만명이 넘는 사상최대의 인파를 기록하였으며,특히 이 대회에서 2만 4천여명의 새로운 결신자를 내었음은 이것도 큰 성과이었다.

이러한 대 전도집회의 성행은 일종의 전시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 비난의 소리가 높았으나,우선 수적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였음은 한국교회 성장의 척도를 드러내 주었다는 점에서 인식한다면 이해할 만 하다. 집회의 양상은 모두가 다 초교파적 거교회적으로 진행되었음이 바람직하였으며, 한결같이 민족을 복음화하고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대 전제를 과시하였다. 확실히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의 가슴마다의 심령 속에 영글을 씨앗으로 심겨진 모양으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있음에 흐뭇한 기쁨마저 금할 길이 없다.

한국민족기독교백년사 - 제 6 편 민족 복음화를 향한 교회의 협력 3.

제3장 전국 복음화운동의 박차 추진 2.


2. '오천만 민족을 그리스도에게로'

한국교회 전도 집회를 비롯하여 각 분야에서의 사업 활동의 목표가 대소를 막론하고 전 민족을 하루속히 복음으로 구원해야 한다는데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5천만 민족을 그리스도에게로'인도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음을 오늘의 한국 기독교인치고 절감하고 있지 않다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가.

다음에 각 교단에서의 장래 지향의 목표가 역시 이러한데 강력히 부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각종의 활동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1970년에 5천교회 150만 신도 획득을 목표로 하여
3차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1차 5개년,1970-1975년 자립 성숙한 교회로
2차 5개년,1975-1980년 한국사회를 위한 교회로
3차 5개년,1980-1985년 세계를 위한 한국교회로

그러면서 매년 3백교회의 증가 운동을 벌여 총회 산하의 전도부 교육을 사회부 농촌부 등의 모든 분야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총매진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과연 그 결과는 너무나 분명하게 나타났다. 1976년에 170여교회가 증가됐고 개척교회는 223개소로 늘어났다. 1978년 현재 전국에 3천 3백여 교회를 갖고 있으며 교인 수는 81만명에 도달하고 있다.

또한 동 교단에서는 전도운동에만 힘쓸 것이 아니라 분열된 교파의 합동운동을 과감히 전개하여 교회의 하나를 이룩하게 함과 동시에 한국교회의 신학과 선교론을 수립하는 문제를 예의 추진하고 있음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측)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에서는 1975년에 교세 확장을 위하여 10개년 계획으로 1만교회 증설운동을 설정하였다. 그 결과로 1차년도인 1976년까지에 351개 교회와 25,708명이 늘어났고 2차년도인 1977년에는 408개 교회와 53,965명이 증가하는 좋은 성적을 들어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1974년에 10개년 계획으로 교세확장을 위해 '2천교회운동'을 벌이기로 하였으며 교회마다 복지관을 신설하여 교회와 사회를 위해 공헌하도록 계획하였다. 특히 동 교단에서는 사회선언서 및 신앙고백선언서를 채택하여 교회 부흥과 발전에 따른 사명의 방향을 제시하였음이 특출하다 하겠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리교에서는 현 교세의 확장을 목표하여 5천교회 1백만 신도운동을 위해 3단계의 계획을 수립하였다. 1차년도인 1976년부터 1977년까지의 교회 개척의 목표는 1,700교회의 10퍼센트인 170개 교회인데 이미 171개 교회를 개척하는데 성공하였으며 1977년에는 210개 교회의 증가가 목표로 되어 있었다. 2차년 계획은 1979년부터 1981년까지이고 3차년 계획은 1982년부터 1984년까지로 되어 있다.

물량적으로 증가되는 교인들을 위한 선교 훈련의 실시, 교역자의 자질 향상을 위한 특별 수련회 그리고 거 교단적인 심령대부흥회의 개최 등을 위한 계획 수립은 적절한 대책이라 하겠다. 즉 1차년도에는 교단 주최로 전국선교대회를 2차년도에는 연회별 선교대회를 갖게되며 3차년도에는 지방 및 개개체 교회들의 선교대회를 모두 갖도록 계획되어 있다.

기독교에 대한성결교회

성결교회는 1977년도의 856교회를 기준으로부터 1982년에는 1,866교회로 그리고 1987년이 되면서는 3,351개 교회로 늘릴 계획으로 있다.

교인 수는 256,415명으로부터 1987년도에는 454,254명에 이르게 할 용의주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에 실천방안으로는 전교인 배가운동의 추진과 함께 십자군 전도대의 활발한 운영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