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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 2.

Joyfule 2007. 4. 29. 06:08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 2.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벤치마킹 대상이자 라이벌 
정몽구(MK) 회장을 지켜보면 그 내면에 아버지 정주영 회장에 대한 벤치마킹과 함께, 
‘아버지를 라이벌로 설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주영 회장은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여러 동생과 자식에게 근검을 가르쳤다. 
정몽구 회장은 수많은 삼촌과 형제 사이에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고 뛰었다. 
정몽구 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내 나이 예순을 앞둔 터여서 아버지가 옛날처럼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의 한 측근은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일념으로 사업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정 회장의 스타일은 그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외모는 물론 선이 굵으면서도 세밀하고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것도 닮았다. 
솥뚜껑만한 손에다 ‘삼국지’를 애독하는 것도 비슷하다. 
부하를 관리할 때 믿고 맡기긴 하지만 상호경쟁을 시키는 방법도 비슷하다. 
하지만 아버지를 베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5년 전 벌어졌던 ‘왕자의 난’은 한편으로 아버지로부터 정통성을 받고 
다른 한편으론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2000년 9월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독립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일반인에게 ‘뚝심 경영인’과 ‘보스형 경영인’으로 각인됐다. 
회사 임직원들은 초기의 정 회장을 ‘보스형 오너’로 불렀다. 
임직원에 대한 장악력과 통솔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시작한 ‘10년, 10만마일 무상 보증수리’의 경우 
회사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초강수를 두었고 결국 오늘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엔 일관제철소 사업 진출을 시도했으나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INI스틸을 통해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를 성공시키고, 
이곳에 일관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더 깊은 생각을 하자고 그는 결심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외환위기 직후 적자였던 현대차를 맡은 지 1년 만에 
4000억원대 흑자를 기록했고, 해마다 기록을 경신했다. 
환차익(換差益)을 감안해도 대단한 수치다. 
현대차는 2004년 국내외에 167만7818대를 팔아 
1조7846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4년 연속 순이익 1조원을 넘어섰고 조만간 순이익 2조원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기아차도 2005년 3월 수출 500만대 기록을 달성하는 등 
현대차에 못지않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그룹 안팎에서는 정 회장을‘전략가형 CE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부하를 몰아붙이는 데서 벗어나 장기 비전을 세우고 향후 이슈를 예측하여 
이를 추진력있게 실행하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측은 “품질경영, 현장경영, 뚝심경영 등 세 가지가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 요체”라고 말한다. 
정 회장은 이를 통해 ‘지옥의 카레이스보다도 더 치열하다’는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톱5로의 진입 가능성을 노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