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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피치 못하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욕심 때문에 혹은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거룩한 성품을 추구해야 하는 크리스천도 예외가 아니다. 정직하게 말해주었다가는 후폭풍이 예상되기에, 선의의 거짓말로 일컬어지는 화이트 거짓말뿐 아니라, 상대방이 피해를 입지 않는 사소한 거짓말을 양심의 가책 없이 내뱉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오늘은 거짓말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부부는 거짓말을 한 죄로 참혹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 부부의 이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이다. 그런데 그 부부는 탐욕을 채우거나 치부를 감추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은 사도행전에 나온다. 초대교회에 교인들이 불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이부부도 기꺼이 동참을 결심했다. 그런데 재산을 팔아보니 난생 처음 만져보는 거액이었다. 그래서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산의 일부를 감추고 교회에 드렸다. 그런데 이 행위를 성령으로부터 알게 된 베드로가 사실 여부를 추궁하자, 그들은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즉사를 당했다. 그 죄목은 성령을 속인 죄이다.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고도 참혹한 죽음을 면치 못한 비련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지은, 성령을 속인 죄가 끔찍한 죽음을 당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죄인가?
그 부부가 성령을 속였다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령을 속일 생각이 아니라 베드로를 속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베드로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 성령을 속인 죄가 되는 것일까? 베드로가 하나님의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면 사소한 거짓말쯤은 해도 되는 것일까? 또한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 사소한 것쯤은 하나님도 눈감아 주지 않으실까? 그래서 사안이 조금 덜 중요한 사건을 생각해보자.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목욕을 하고 문둥병이 나은,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 장군의 예를 들어보자. 그를 괴롭히던 천형(天刑)이 기적처럼 깨끗하게 낫자, 그는 자신이 싣고 온 예물을 기꺼이 드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엘리사는 한 마디로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 광경을 본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예물이 탐이 나서 그의 뒤를 따라가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얻어가지고 돌아온다. 그러자 이를 알아챈 엘리사로부터 벌을 받아 영원히 그와 그 자손들이 문둥병을 앓게 되는 끔찍한 재앙이 내려졌다. 이 거짓말 사건은 하나님을 속인 죄는 아니었지만, 죽음보다 더 참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이자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인 라헬이다. 그녀의 신앙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별로 없다. 다만 그녀가 아기가 없는 것을 슬퍼하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셔서 나중에 아들을 낳는 축복을 내려주셨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불행하게 종말을 맺는다. 둘째인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가 심해서 그만 죽게 되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야곱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명문가의 가족 중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된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녀에 대한 사건은 성경에 별로 언급이 없지만 특이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친정아버지인 라반의 집을 도망쳐 나오듯 할 때 집의 수호신인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나왔고, 아버지가 그 사실을 추중하자 말 안장 밑에 숨겨두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사건이다. 성경에서 그녀에 대한 언급은 드라빔을 훔쳐 그 사실을 감추고자 거짓말을 하였다는 것과, 그녀가 아기를 낳다가 참혹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로 작정한 아브라함의 가계에서, 이런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의 거짓말과 불행한 죽음이 오버랩 되는 것은 필자의 생각뿐일까?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6)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창1:27) 지어진 피조물이다. ‘형상대로’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브찰렘’(in-image-of)라는 단어이다. 이 의미는 외모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하나님을 닮아 지었다는 말이다. 그 내면이란 다름 아닌 거룩한 성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대부분 거룩한 성품을 열거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 화이트 거짓말을 포함해서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하지 못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신다. 세상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고, 거룩한 성품을 추구해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조차 자신의 탐욕과 자존심, 그리고 감추고 싶은 치부 때문에 거짓말을 손쉽게 내뱉곤 한다. 사업가들과 자영업자들은 정부나 소비자를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 사업수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개인들도 어떻게든 정부를 속여 세금을 덜 내는 것은 능력이라고 여기고 있다. 또한 친구나 직장동료, 심지어는 가족들에게 내뱉는 사소한 거짓말을 죄라고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잣대는 세상의 기준이지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거룩함을 입어야 하는 자녀들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직하게 밝혀서 입게 되는 수많은 손해들과, 대인관계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거짓말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손실을 입게 되더라도 구차한 거짓말을 동원하지 말라고 하고 계시다. 왜냐하면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하게 되면 거룩한 성품에 때가 끼고, 악한 영이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다가 영혼과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지혜나 세속적인 방식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살아야 된다. 그래서 예견되는 손실이나 대인관계의 갈등을 회피하기위해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이는 쉼 없는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을 공급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평안과 형통함이 있고,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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