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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입’ 요한 크리소스톰

Joyfule 2015. 11. 7. 08:52

 

 

 

‘황금의 입’ 요한 크리소스톰

 

크리소스톰의 저작들

크리소스톰은 사변적인 사상가도, 조직적인 신학자도 아니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목회자요, 설교자요, 개혁자였기에 설교가 많이 보존되어 있다. 더불어 서신이나 논문과 성례전에 관한 예식서들도 포함되어 있다.

크리소스톰은 안디옥 학파 학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신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당시 교회 정치, 사회, 문화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된다. 크리소스톰의 저서들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도덕과 성직자의 사역을 포함한 수도, 금욕 생활에 대한 논문들이다. 이 분야의 논문에는 ‘사제직에 관하여’, ‘참회에 관하여’, ‘재혼에 반대하여’, ‘세례 지원자에 대한 교훈’ 등이 있다. AD 386년에 저술한 ‘사제직에 관하여’는 목회에 대해 지극히 높은 표준을 제시한 책이다. 이는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어 출판된 책이다.

 

둘째, 600여개의 설교와 주석들이다. 현존하는 그의 설교는 창세기 67편, 시편 60편, 이사야 6편, 마태복음 91편, 요한복음 87편, 사도행전 55편, 로마서 32편, 고린도전서 44편, 고린도후서 30편, 에베소서 24편, 빌립보서 15편, 골로새서 12편, 데살로니가전서 11편, 데살로니가후서 5편, 디모데전서 18편, 디모데후서 10편, 디도서 6편, 빌레몬서 3편, 히브리서 34편, 여기에다 독립된 성경 대목에 대한 설교를 추가할 수 있다.

 

그의 설교 강론은 두 가지 형태로 전해온다. 하나는 초고 형식으로, 속기사들이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직접 기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후대 사람들이 이 초고를 다듬어서 일관성 있게 재편집한 것이다. 크리소스톰은 전례축일이나 특별한 기회에 맞추어 신구약 성경에 어떤 제목을 발췌하여 강론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신자들의 교육을 위해 성경을 처음부터 연달아 강론한 것도 있다.

 

셋째, 교리적인 저술들이 있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반대한 그리스도가 하나님임을 증명했다. 예언의 성취로 말미암아 드러난 그리스도의 신적 메시아 성을 증명한 것이다.

넷째, 크리소스톰의 서신(편지)들이 있다. 그의 서신은 236편이 전해진다. 이 서신들은 22차 유배기인 AD 404-407년 사이에 쓰여진 것이다. 대부분의 서신들은 유배지에서 기록했는데, 자신의 유배로 인해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짧고 간결한 것들이다.

 

크리소스톰 설교의 특징

크리소스톰이 활동하던 시대의 설교는 체계가 없는 초기의 교훈적 설교와 치밀한 논리구성과 세밀한 분석을 특징으로 하는 스콜라 학파와 청교도 시대의 중간에 위치한다. 이 시기의 설교는 성경적 동인과 논조 그리고 초기 설교의 친밀감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동시에 스콜라적 설교의 지루한 분석과 세분을 피하면서 고전적 연설 형태에 근접한 것이다.

이 시기에 설교의 체계를 갖추었고 내용도 충실하였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후세들은 당시를 ‘설교의 황금기’라고 부르고 있다

안디옥 학파의 영향을 받고 자란 크리소스톰이기에, 설교는 항상 성경의 문자적, 역사적, 문법적인 해석 방법에서 얻은 영적 통찰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강해는 윤리적 권면으로까지 폭을 넓혔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를 현존하는 상황 속에 적용시키는 예언자적 능력에서 밝히 드러난다. 그 시대 청중들의 어려움에 대한 예리한 자각이 그의 설교 저변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가 얼마나 복음을 선한 행실에 대한 능력으로 생동하게 하려고 했던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그의 설교는 세상과 연결 짓지 않고는 이해되기 어렵다.

크리소스톰의 설교 구성은 그리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본문의 순서를 따라 단순한 전개 형식을 취해 간다.

무엇보다도 그의 설교가 출중한 것은 ‘황금의 입’이라고 불릴 만큼 달변이었다는 사실이다.

 크리소스톰의 웅변술은 세 가지의 커다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성경에 대한 풍부한 이해력이 있었다.
둘째, 신학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과 이것들을 실생활에 연관시키는 능력을 가졌다.
셋째, 설교를 불붙게 하는 정열이 넘쳐 흘렸다.

 

여기에 자유로운 언어 구사력과 성경에 관한 뛰어난 지식은 회중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당시 교회는 웅변술의 실제를 보기 위해 참석한 청중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am로 크리소스톰이 설교할 때마다 발휘되는 웅변술은 당시의 청중들에게 지대한 관심사였다.

 

크리소스톰이 주석에서 예화로, 성경 원리에서 실제적인 호소로 설교를 전개시켜 갈 때는 말의 속도가 차츰 빨라지며 제스처가 활발해지고 목소리는 점점 강렬해진다. 그러면 기대감에 부푼 청중들은 숨을 죽이고 긴장하다가 경우에 따라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황금의 입’을 꿈꾸는 21세기 설교자들에게
크리소스톰은 21세기 설교자들에 다양한 교훈을 제시해 준다.

 

첫째, 그에게는 훌륭한 멘토들이 있었다. 어머니 안투사는 그에게 철저한 신앙의 기반을 닦게 했고, 경건훈련의 실제를 가르쳤다. 크리소스톰이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경적인 기반에 굳건히 설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그가 영적 스승 디오도루스(Diodorus)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 디오도루스는 성경을 문자적, 문법적, 역사적으로 면밀히 연구하는 법을 가르쳤다. 지금 복음주의에서 시행되는 강해설교의 기원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런 성경연구 방법으로 당시 시대를 휩쓴 알레고리 해석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둘째, 크리소스톰은 당시 학문에도 탁월성을 드러냈다. 그는 어렸을 때 그 당시 이교도의 대변자요, 당대 최고의 수사학자인 리바니우스(Libanius)로부터 헬라 문학과 수사학을 배웠다. 리바니우스는 탁월한 크리소스톰을 후계자로 지목했으나, 그는 신앙적인 이유로 거절했다. ‘황금의 입’이란 별명을 갖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어려서부터 최선을 다해 학문에 정진한 까닭이다.

설교자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크리소스톰이 보인 학문적 탁월성은 21세기 설교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셋째, 크리소스톰은 무엇보다 청중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과다한 세금 문제로 안디옥 시내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흥분한 시민들이 황제와 황후의 동상을 부수면서 격렬한 항의를 벌였다. 동시에 안디옥 시민들은 황제에 대한 보복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때 크리소스톰은 시의적절하고 진실한 설교를 했고, 무엇보다 심각하게 침체된 시민들의 영혼을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그러자 회중들은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영적 체험을 경험했다.

설교자는 험한 세상에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존 스토트(John R. W. Stott)는 “참된 설교는 성경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리 한쪽은 하나님의 거룩에, 다른 한쪽은 성도의 삶의 한복판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크리소스톰은 그 누구보다 청중의 필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넷째, 크리소스톰은 불의와 절대 타협하지 않고 시대의 개혁을 외친 거침없는 선지자였다. 그는 믿음의 고향 안디옥이 경박한 생활과 성적 문란으로 물들어갈 때 솔직하고 설득력 있는 신앙운동을 펼쳤다.

정치적인 술수와 교직의 타락이 난무하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는 부패하고 타락한 수하의 성직자들을 한 치의 용서도 없이 치리했고, 사회 개혁을 촉구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의 성도들을 향하여 도덕적이고 검소한 삶을 살아갈 것을 설교했다. 부패한 성직자와 알렉산더의 데오빌로 주교와 황후 유독시아 같은 개혁의 반대자들이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적 타락과 불의와 압제에 과감히 맞섰다. 급기야 정의를 외치다가 고통당하고 생명까지 빼앗겼다.

하지만 크리소스톰의 하나님은 30년 후 그의 유해를 옛 도시로 조용히 개선시키셨다. 이로써 수많은 크리스천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승리의 선포를 남기게 되었다.

 

다섯째, 크리소스톰은 청중들의 박수갈채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환호를 받은 크리소스톰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강단에 섰을 때 갈채를 받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잠깐의 전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를 칭찬했던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수갈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그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설교자가 박수갈채에 대한 생각으로 압도된다면 자신뿐 아니라 회중에게 해(害)가 미칠 것이다. 왜냐하면, 칭찬에 대한 열망 때문에 설교자는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설교보다 그들을 즐겁게 해 주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설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