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첫번째 귀출라프 선교사는 유대인이었다
충남 고대도 교회…174년전 첫 복음씨앗 뿌려진 선교 기착지 (조선일보 2006.02.06)
한국선교의 첫 사랑과 첫 헌신을 간직하고 있는 섬이 있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는 복음의 첫 씨앗이 떨어진 복음의 기착지이다. 174년 전 귀츨라프 선교사(1803∼51)가 미지의 땅 조선에 대한 사랑으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땅에 찾아와 성경책과 전도지를 나눠주며 복음을 전한 곳이다. 이는 한국의 첫 순교자인 토머스 선교사의 선교사역보다 34년 앞선 일이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보다 53년 앞선 것이다.
대천항에서 하루 3회 왕복하는 페리호를 이용해 고대도를 대면할 수 있었다. 고대도는 여의도 면적의 9분 1 정도인 작은 섬이다. 주변의 장고도 삽시도 원산도 등과 달리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섬이다. 자동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흔한 식당 하나 없다. 귀츨라프 선교사 기념 고대도교회와 전교생이 6명인 초등학교,보건진료소,경찰초소,여객터미널 외엔 60여 가구의 민가뿐이다. 바람이 거센 선착장에 내려서서 174년 전 이곳에 정박했을 거대한 배 한 척을 떠올렸다.
“뿌∼웅”
1832년 7월26일. 고대도 안항에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의 1000t급 로드 암허스트호가 나타났다. 이 배는 대만과 한국,일본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통상개척선이었다. 선장 린제이는 중국어에 능통한 의사인 귀츨라프 선교사를 통역관 겸 의사로 임명했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이 항해를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에 복음의 씨앗을 뿌릴 절호의 기회로 보고 한문성경과 각종 물품을 마련했다. 고급 천과 망원경,유리그릇,사자무늬 단추,성경전서,지리천문학 과학책 등을 준비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귀츨라프 선교사가 이곳을 방문했던 것은 작은 섬이었지만 고대도가 배를 정박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도는 인근 여러 섬들의 가운데 위치해 있어서 수군들이 관리하기 좋은 위치였기 때문에 이곳에 배를 정박하도록 허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귀츨라프 선교사는 25일 동안 섬에 머무르며 조선 국왕에게 통상청원서를 제출했으며 주민들에게도 전도문서와 성경책을 나눠주며 감자 재배법을 가르쳤다. 어학에 탁월한 자질이 있던 그는 짧은 체류 기간에 주민에게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게 했을 뿐 아니라 직접 한글을 배워서 이듬해엔 중국 선교잡지를 통해 한글 자모를 소개했다. 하지만 조선 정부가 통상을 불허하고 떠날 것을 요구하자 뒷날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훗날 그날의 심경을 ‘조선서해안항해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에 뿌린 하나님의 진리가 없어질 것인가?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조선 백성을 은혜롭게 방문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있을 것이다…성서에는 하나님께서 이 보잘 것 없는 시초까지도 축복하신다고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는 조선에 곧 먼동이 터 좋은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선착장에서 고대도에서 하나뿐인 교회의 십자가 탑을 찾기는 쉬웠다. 이 십자가탑은 마을에 등대가 세워지기 전까지 어부들에게 등대 역할을 해주었다고 한다. 고대도는 처음 복음이 전해진 곳이지만 이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귀츨라프 선교사가 다녀간 150년 후였다.
1982년 4월30일 곽길보 목사에 의해 세워진 고대도교회엔 그동안 8명의 목회자가 사역했고 현재 김국중 목사가 담임하고 있다. 이 교회는 2001년엔 제86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신 총회에서 귀츨라프 선교사 기념교회로 지정됐고 2003년 10월24일 기념교회 기공예배,2005년 4월19일 헌당예배를 드렸다.
귀츨라프 선교사 기념 고대도교회를 방문한 뒤 뒷산에 있는 고대도선교 기념교회를 찾았다. 17평 남짓한 옛 교회는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피아노 1대와 강대상이 전부지만 아직까지 교회학교 수련회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귀츨라프 선교사는 1803년 독일 발트해 연안 포메라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폴란드계 유대인 의사이자 최초의 중국선교사로 한자 이름은 곽실렵이다. 성경번역자인 모리슨의 중국 선교담을 듣고 중국 선교를 결심한 그는 네덜란드선교회에서 훈련 받은 뒤 영국선교회부터 파송을 받아 50여개의 섬과 나라에서 전도했다.
한반도의 고대도를 비롯해 서해안과 제주도를 거쳐 일본 해안까지 선교여행을 다닌 그의 흔적은 홍콩의 ‘귀츨라프 스트리트’,중국 조우산 열도의 ‘귀츨라프 섬’,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기념비,한국 충남 보령군 원산도의 기념비 등에 남아 있다. 그가 전도한 수많은 믿음의 후예들이 지금도 아시아 곳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고대도=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조선일보 2006.02.06
귀플라프(Dr. Karl.A.F. Gutlaf, 1803~1851)
독일 퓌리츠 경건주의 전통 집안 출신. 네델란드 선교회의 부름을 받고 루터교 목사로 안수 받음. 태국, 중국에서 종신토록 선교사로 활동. 도인도회시 소속인 영국 상선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호의 통역자격으로 1832년 7월 한반도를 방문, 한 달 가량 머물면서 지방 관리와 주민들과 접촉, 순조에게 통상 요구서와 성경 2권을 전달했으나 거절당함.
‘양이’라는 사람에게 한글도 배움. 주민들에게 쪽복음서와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은나 주민들은 냉담. (양화진 외국인 선교묘원 자료)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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